[칸트는 어떻게 생각할까? : AI 일자리의 경제학②] 로봇은 성실 납세자가 될 수 있나
인간 본질의 사유를 일자리에서 찾은 칸트의 소망은 AI 시대를 맞아 산산조각났다. 이제 중국의 식당에서는 로봇이 조리하고 서빙하며 청소한다. 물류센터에서는 자동화 로봇이 분류와 포장을 처리하고 자동차 공장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용접과 조립 라인에 투입됐다. BMW와 테슬라, 벤츠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인간과 협업하는 로봇을 이미 시범 운영하거나 본격 도입하고 있으며 중국에는 인간 없이 24시간 가동되는 이른바 '다크 팩토리'까지 등장했다.
빅테크의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이 발전하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로봇도 보편화되고 있다. 단순 노동을 넘어 고숙련이 요구되는 인간의 기술까지 대체될 위험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로봇세 백가쟁명
로봇세는 로봇이 인간 근로자의 일자리를 대체하면 그만큼 세금을 부과하자는 개념이다. 인간이 일하면 소득세와 사회보험료가 걷히지만 로봇이 대신 일하면 해당 세수가 사라진다. 그리고 로봇세는 이 공백을 메우면서 동시에 실직자 재교육과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 개념은 2016년 유럽의회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유럽의회 법사위원회는 로봇에 '전자인간(electronic person)' 지위를 부여하고 사회보장 분담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듬해 2017년 빌 게이츠가 "공장에서 5만달러를 버는 노동자가 소득세를 내는데 그 일을 대신하는 로봇에는 비슷한 수준의 세금이 부과돼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로봇세는 세계적 의제로 자리잡았다.
일론 머스크는 로봇이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고 있지만 당장 노동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일자리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
찬성 측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대체해 만들어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확보된 재원은 실직자 재교육과 기본소득에 투입해 기술 혁신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2030년까지 전체 일자리의 약 30%가 AI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재원 마련이 필수적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도 이런 논리에 힘을 싣고 있다. 실제로 미국 할리우드 노동자들의 시위나 한국 콜센터 노조의 구조조정 반대 시위 등 AI 도입으로 인한 마찰이 현실화되고 있다.
반면 산업계를 중심으로 한 반대 측은 로봇세가 기업의 기술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세금 부담으로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 도입을 주저하게 되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로봇은 그저 도구일 뿐인데 세금을 매기는 것은 이중 과세라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세 부담을 피해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0년 가까이 논의가 이어졌지만 로봇세를 공식적으로 도입한 국가는 아직 없다. 혁신 저해를 우려하는 목소리와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2017년 세계 최초로 '로봇세'에 가까운 조치를 시행한 적이 있다. 자동화 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축소해 간접적으로 로봇 도입에 제동을 건 것이다. 다만 이는 직접적인 로봇세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2026년 중반으로 나아가는 지금, 피지컬AI가 부상하는 상황에서 로봇세 논의에 불을 지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드는 중이다. 당장 비즈니스포스트는 6일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로봇이 보편화되면서 로봇세 도입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보도했다.

"사람을 구하라"
로봇세 논의와 별개로 각국은 AI 시대 노동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독일은 2019년부터 '역량강화기회보장법'을 시행해 나이와 기업 규모의 제한 없이 재직자가 디지털 전환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비와 임금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소속 근로자가 인증된 외부 교육과정(최소 120시간 이상)에 참여할 때 기업 규모에 따라 교육비 보조금 30~100%와 임금 보조 수당 30~80%를 지급한다. 교육 기간 중에는 근로자 평균 임금의 60%(유자녀 67%)를 국가가 임금 대체 수당으로 지급하는 '역량강화수당' 제도를 운영해 기업은 비용 걱정 없이, 근로자는 생계 걱정 없이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이중 안전망을 구축했다.
일본은 리스킬링과 인력 재배치를 양대 축으로 삼고 있다. 기업 주도 훈련 비중을 줄이고 근로자 개인의 자발적 교육 비중을 5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문실천교육훈련 수료 시 비용의 50%를 기본 지원하고 1년 내 자격 취득 및 취업 성공 시 20%를 추가 지급하는 성과 연동형 보상체계를 운영 중이다.
45세 미만 이직 준비자에게는 실업급여가 끊겨도 훈련 종료(최대 3년) 시까지 구직급여일액의 80%를 '직업교육훈련지원금'으로 지급해 소득 공백을 줄이고 있다. 소속 근로자를 다른 기업에 파견해 새로운 기술을 익히게 하는 '재적형 출향' 제도도 특징적이다.
유럽연합은 2024년 8월 'AI법(AI Act)'을 발효하며 규제 체계를 구축했다. 노동조합 가입 여부 등을 추론하는 시스템은 '금지된 AI'로 규정했고 채용과 승진, 근태 평가 등은 '고위험 AI'로 분류해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4월 'AI 활용을 포함한 근로자 숙련 향상 행정명령'을 통해 업스킬링과 리스킬링을 국가 차원에서 확대했다. 캘리포니아주는 AI가 교사 역할을 대체하는 사례를 제한했고 뉴욕주는 채용이나 인사평가 과정에서 AI 활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차별을 금지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6일 'AI 시대 고용안정 시리즈' 보고서를 통해 고용정책의 패러다임을 기존의 '고용 보호'에서 '고용능력 유지'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국민내일배움카드(고용부)와 평생학습계좌제(교육부) 등 부처별 사업의 연계를 강화해 전 생애주기에 걸친 통합 학습 계좌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고 스웨덴의 사례처럼 노사정 협력을 통한 고용안정기금 조성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