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블랙핑크 부탄 오는 상상하죠”···소탈한 국왕은 빗속에서 6km를 함께 걸었다
겔레푸서 국내 순례단과 트레킹
“부탄이란 나라 방문해 직접 느껴봤으면
‘행복의 나라’ 비결은 신뢰와 안정”

“저는 해외를 방문할 때 왕이라고 소개하지 않아요. 카페나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물어보지요. ‘부탄을 아느냐’고요.”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 부탄. 지난달 23일 인도 접경지인 남부도시 겔레푸에서 만난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은 소탈하고 친근했다. 겔레푸는 부탄 불교의 기틀을 세운 파드마삼바바(구루 린포체)의 여정이 시작된 곳이다. 그 여정을 되짚기 위해 한국 순례단이 찾은 겔레푸는 왕실이 주도하는 미래 도시 구상 ‘GMC’(Gelephu Mindfulness City)의 거점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 현장 점검을 위해 겔레푸에 온 국왕은 한국 순례단을 만나 즉석에서 함께 걷자고 제안했고, 일행은 국왕과 함께 비를 맞으며 숲과 들, 계곡을 따라 6km를 걸었다. 다소 늦은 점심식사 자리에도 국왕은 취재진이 포함된 순례단을 초청했다. 식탁 위엔 렌틸콩수프 달(dal)과 말린 돼지고기 요리 씨캄(sikam), 부탄식 만두 모모(momo) 등이 차려졌다.
부탄 국왕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탄의 젊은이들이 K팝을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 국왕은 “한국의 젊은 세대가 부탄을 더 잘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블랙핑크 제니, 지수 등 멤버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BTS나 블랙핑크같은 세계적인 K팝 아티스트들이 부탄을 방문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부탄을 잘 알게 되길 바란다고 했는데, 어떤 부탄의 모습을 알리고 싶습니까.
“직접 부탄을 찾아와 우리 문화와 삶의 방식을 경험해보길 바랍니다. 스노우맨 트레킹(히말라야를 가로지르는 고난도 트레킹 코스)이나 마라톤 같은 특별한 경험도 좋고, 부탄 사람들의 일상과 자연, 문화를 몸으로 느껴보는 것도 중요하지요. 미디어와 홍보 활동도 부탄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지만, 직접 경험한 것은 훨씬 오래,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고 생각해요. 한국인 100명 중 단 2명이라도 진정으로 부탄을 알고 이해한다면 저에게는 의미있는 성공이자 진전입니다.”
-행복의 나라로 알려져 있는 부탄 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뢰는 안정과 조화의 토대지요. 사람들은 지도자를, 정부를, 이웃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하나로 결속되고 회복력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가치가 젠가 게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각각이 서로를 떠받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만 제자리를 벗어나도 전체 구조가 흔들리죠. 신뢰가 약해지면 사회의 모든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신뢰가 강하면 공동체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AI시대 교육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클 것 같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모든 것을 전례없는 속도로 바꾸는 것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큰 기회라는 생각도 들어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배우느냐가 아니라 AI시대에도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킬 것인지, 어떻게 우리의 가치와 연민, 지혜를 잃지 않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왕은 왕세자 교육에 대해 “수학, 화학과 같은 기초과학의 기본기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한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를 두루 경험하며 시야를 넓힐 수 있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소셜 미디어와 함께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소셜미디어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이 취미를 갖도록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취미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고, 삶의 중요한 가치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저 역시 스포츠를 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성장했고 그런 경험들이 저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부탄 왕실이 추진하는 GMC, 즉 ‘겔레푸 영성도시’ 프로젝트는 보통의 신도시 개발과는 다르다. 불교 문화를 바탕으로 영성과 자연, 공동체의 균형을 도시의 출발점에 놓고 자연 보전과 장기적 삶의 질까지 함께 설계하겠다는 도시 실험에 가깝다. 국왕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영성의 가치, 부탄이 간직해 온 삶과 문화를 세계인에게 제시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외부 자본 투자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개발의 성과와 가치 상승을 부탄 국민이 함께 누리고 소유하는 구조로 설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탄의 가치와 삶의 방식에는 종교적 전통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종교가 오늘날에도, 앞으로도 여전히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저는 종교가 사람의 성품과 삶의 관점을 형성하는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든 기독교든 어떤 종교든 간에 종교는 삶의 방향과 목적의식을 주고 정신적 안녕을 지탱해 줍니다. 물론 서로 다른 믿음과 관점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 종교는 올바르게 이해될 때 연민, 절제, 책임감같은 가치를 키울 수 있습니다.”
-내년은 한국과 부탄이 수교 4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앞으로 다방면에서 더 큰 교류를 기대합니다. 한국 방문도 고려해보겠습니다.”


겔레푸 | 박경은 선임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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