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아동청년법’ 시행 12일… 현실 드러낸 과제들

시사위크|국회=이민지 기자 # 할아버지의 간병이 길어지자 엄마는 '주간병자'가 됐고, 의료비와 간병비를 마련하기 위해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하나뿐인 중학생 딸은 보조 돌봄자이자, "그냥 같이 죽자"고 말하는 엄마의 정서적 지지자 역할까지 떠안았다.
돌봄 커뮤니티 'N인분' 조기현 대표가 최근 만난 이 가정의 사례는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위기아동청년법')의 공백을 여실히 드러냈다.
◇ 영케어러 신청 못하게 만드는 지원대상자 선정
'효자‧효녀'로 불리며 가족의 간호‧간병을 떠안은 채 자신의 삶을 희생해 온 34세 이하 아동‧청(소)년을 위한 '위기아동청년법'이 지난 3월 26일 시행됐다. 이 법은 가족돌봄 아동 및 청(소)년을 발굴하고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국내 최초의 입법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다만 지원대상자 기준이 이들의 다양한 현실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 채, 오히려 또 다른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7일 오전 국회에서는 '영케어러 관점에서 본 위기아동청년법 시행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가 진행됐다. 법 시행 2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보완 필요성을 점검하는 논의가 공식적으로 이뤄지는 게 이례적인 만큼, 이날 현장에는 영케어러 문제에 관심을 가진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해 제도의 한계를 짚고 개선 방향 모색에 목소리를 더했다.

함선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고령화연구패널을 활용해 부모에게 돌봄을 제공한 34세 이하 청년 30명을 분석한 결과, 이 중 한부모가정은 30%에 그쳤다"며 "대다수는 부돌봄자이거나 복수의 돌봄자 중 한 명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 경우 35세 이상 다른 가구 구성원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한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가족돌봄청년을 주돌봄자이자 단독돌봄자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가족 돌봄에 따른 어려움이 있는 이들을 상당수 누락할 가능성이 있다. 돌봄이 위기의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급여 및 가구 구성 등 행정적인 정보 외에도 가구를 직접 방문해 가구의 상황을 사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통적인 가족'의 범위에 한정된 돌봄만을 인정하는 데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가정위탁아동의 가족 돌봄처럼 비혈연관계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영케어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자립준비청년의 경우 정서적으로 취약하거나 건강상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사실상 이들은 서로를 돌보고 있거나 비교적 건강한 청년이 다른 청년을 돌보는 경우가 많다"며 "민법상의 가족 개념을 그대로 준용할 경우, 오랜 기간 부모처럼 자신을 양육해 온 비혈연 가정위탁 부모를 돌보는 아동‧청소년의 현실을 과연 포섭할 수 있는지 질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청년미래센터 광역체계, 실효성 '물음표'

김송이 신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영케어러의 발굴‧지원은 지역사회 중심의 지원체계들을 갖춰야 한다"며 "그들이 생활하는 학교 등 생활권 중심부터 동네 중심의 발굴 체계들을 갖춰야 하는데 지금의 전담조직은 광역 단위 중심의 체계다"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정부는 영케어러를 약 1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모든 광역단체에 하나씩 센터를 두더라도 이를 모두 포괄하기는 어렵다"며 "전담인력 대비 적정 관리 규모를 검토해야 하고, 제대로 된 사례관리를 위해서는 전담인력의 전문성 역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함선유 부연구위원 역시 "영케어러 사례관리는 단순한 급여 신청‧연계를 넘어, 가구가 복지급여를 실제로 수급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고난도 사례관리가 필요하다"며 "이같은 사례관리를 현재 전달체계와 인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또 광역 단위 조직이 밀착 사례관리와 가정방문을 수행하기에 적절한 구조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이화영 보건복지부 청년정책팀장은 "청년들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시‧군‧구와의 유기적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 협력방안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며 "센터가 확대돼야 청년들이 원스톱으로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늦어도 2027년까지 센터 전국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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