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전기차 보조금? 아니 '국산차 보조금'

◆ 내연차 전환지원금1,775억 신설···예산 속 숨은 변화
기후부는 지난 1월 2일 2026년 전기자동차 보급사업 보조금 업무처리지침을 행정예고했습니다. 올해 사업비 총액은 1조 5,953억 7천만 원으로 전년 1조5,057억7천만 원 대비 896억 원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예산 내부 구조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자치단체자본보조는 1조 4,010억 5천만 원에서 1조 1,927억 원으로 2,083억 5천만 원 감소한 반면, 민간경상보조(법인 대상)는1,047억 2천만 원에서 4,026억 7천만 원으로 3.8배로 급증했습니다.
특히 전기승합 민간보조 1,750억 원이 새로 편성됐습니다.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교체하는 개인에게 지급하는 '전환지원금' 예산 1,775억 원도 신설됐습니다. 출고 후3년 이상 경과한 내연기관차(하이브리드차 제외)를 판매 또는 폐차하고 전기차를 구매하는 개인에게 국비 최대 100만 원을 추가 지원합니다. 해당 차량을 3년 이상 보유한 경우에 한하며, 가족 간 증여·판매는 제외됩니다.
소형·경형·초소형으로 한정되던 전기화물차 지원도 올해 대형(최대 6,000만 원)과 중형(최대 4,000만 원)으로 확대됐습니다. 지방자치단체 보조 예산이 줄고 중앙 정부(기후부·한국환경공단) 관할 민간보조 예산이 늘어난 것은 보조금 집행에 대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조치로 읽힙니다.

올해 대구에서는 친환경차 4,325대가 보급됩니다. 차종별로는 3,542대, 전기 이륜차 694대, 수소차 89대 등입니다. 보조금은 정부 지침에 따라 차종별로 차등 제공됩니다. 승용차는 최대 754만 원, 화물차는 최대 1,365만 원, 버스(중형) 최대 6,500만원입니다. 수소차는 승용차 기준 3,250만 원으로 책정됐습니다. 경북은 포항시에서 승용차는 최대 1,070만 원, 화물차는 최대 1,875만 원 지원됩니다. 안동시의 경우 승용차 1,148만 원, 화물차 2,050만 원입니다. 경주시는 올해 총 19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해 전기차 2,926대에 대한 구매비용을 지원합니다.

◆ 7명의 전문가가 수천억 보조금 생사 결정
이번 지침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신설된 '전기자동차 보급사업 수행자 선정 평가' 제도입니다. 지난해까지는 차량이 인증·평가시험을 통과하고 배터리 필수정보를 제공하면 어떤 제작·수입사든 보조금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여기에 별도의 사전 관문이 추가됐습니다. 매년 3월까지 기후부가 평가 기준을 공개하고 5월까지 제작·수입사가 신청서류와 증빙자료를 한국환경공단에 제출합니다. 이후 7인 이상의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위원회가 정량·정성 평가를 벌이며,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한 산술 평균이 80점 이상인 업체만 보급사업 수행자로 선정됩니다. 탈락한 제작·수입사의 차량은 아무리 성능이 우수해도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평가 항목에도 의문이 제기됩니다. 지침에 명시된 항목은 '사업능력, 지속가능성, 기술개발 노력, 산업 및 일자리 창출 기여도, 안전 및 사후관리 역량' 등입니다. 이 중 '산업 및 일자리 창출 기여도'는 전기차 보조금의 본래 목적인 대기환경 개선 및 탄소 감축과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구체적 배점표가 지침 본문이 아닌 '평가 기준 별도 공고'로 위임돼 있다는 점입니다. 100점 만점 중 정성 평가의 비중이 높을수록 7명의 평가위원이 행사하는 재량의 폭도 커집니다. ESG 경영이나 공공 서비스 차량 개발 같은 정성적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한국에 연구소를 두고 오랜 사업 이력을 가진 국내 제작사가 구조적으로 유리합니다.
◆ 수입차 중 BMW만 통과 가능성
기후부가 공개한 평가기준을 종합 적용하면 한국에 법인 신용도와 국내 R&D 및 특허 보유, 10년 이상의 사후관리(A/S) 이력 등을 갖춘 현대·기아·KGM은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면 글로벌 본사 중심으로 운영되는 테슬라, BYD, 볼보 등은 탈락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입차 가운데 통과 가능성이 있는 브랜드는 BMW밖에 없습니다.
특히 테슬라의 경우 국내에 슈퍼차저 충전기를 대규모로 설치했지만, 이번 지침에서 충전인프라보조금 산정 기준이 '한국산업표준(KS R IEC 62196-3)에서 정한 표준 규격(콤보1 방식)'으로 한정됐습니다. 테슬라의 NACS(북미충전표준) 방식 충전기는 이 기준에서 배제됩니다. 지난해 지침에서는 단순히 '표준 급속충전기(공용)'로만 규정했던 것에 비해, 특정 기업의 충전 인프라를 겨냥한 변경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소비자 관점에서는 테슬라 등 특정 수입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높지만, 기업 평가에서 탈락하면 해당 차량에는 보조금이 전혀 지급되지 않습니다. 이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정부가 사실상 제한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 전기차 가격 하락 동력 약화


수입차 대부분이 보조금 대상에서 빠지면 국내 전기차 시장의 경쟁 강도는 현저히 낮아집니다. 경쟁이 줄면 제작사의 가격 인하 유인도 사라집니다. 지난해 지침에는 제작사가 자체 가격을 인하하면 할인 규모에 비례해 보급목표이행보조금 등을 추가 지원하는 한시적 제도가 있었습니다. 올해 지침에서는 이 제도가 완전히 폐지됐습니다. 제작사 간 가격 경쟁을 보조금으로 보상하는 유인 구조가 사라진 셈입니다.
정부가 내세운 2030년 전기차 보급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그러나 경쟁 없는 시장에서 가격 하락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보조금으로 특정 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이 오히려 전기차 대중화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전기차 보조금은 납세자의 세금으로 조성됩니다. 그 목적은 특정 기업의 보호가 아니라 탄소 배출을 줄이고 소비자가 합리적 가격에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 현대·기아 해외 판매에 부메랑될 수도
한국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북미 조립 요건 등을 내세워 한국산 전기차를 차별한다고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습니다. 그런데 한국 스스로가 국내 R&D 이력, 국내 법인 신용도, 10년 이상 A/S 이력 같은 사실상의 로컬 요건을 보조금 체계에 도입하면, 미국이나 유럽이 '한국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논리로 반격할 명분을 얻게 됩니다. 현대·기아가 미국과 유럽에서 대규모로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책이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에 미치는 부메랑 효과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특정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국내 장벽이 오히려 국내 기업의 해외 시장 접근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국산 저가 전기차의 급속한 시장 침투에 대한 우려가 정책 배경에 있을 수 있습니다. EU도 배터리 규정을 통해 사실상의 무역 장벽을 운용하고, 미국도 IRA를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와 방식이 문제입니다. 차량의 성능과 안전을 기준으로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기존 방식도 충분한 품질 관리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특정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벽을 세우기보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국내 전기차가 보조금 없이도 전 세계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산업 정책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