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공적 언어’의 타락 [아침햇발]


이봉현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부활하신 예수는 숨어서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첫 복음으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 했다. 그 평화와 위로의 부활절 아침,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썼다. “빌어먹을 해협 당장 열라고, 이 또라이 ××들아, 아니면 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다. 두고 봐라! 알라에게 찬양을.” 이 문구를 읽으며 시엔엔(CNN) 앵커 제이크 태퍼는 시청자에게 경고했다. “자녀가 보고 있다면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미국 대통령의 공개 발언을 전하면서 아이들이 들을까 걱정해야 하는 기막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트럼프의 입이 거친 거야 익히 알지만, 지난 한달 남짓 이어진 이란과의 전쟁에서 그가 쏟아낸 막말, 위협, 변덕은 들어주기 힘든 지경이었다. 이란 국민이 아닌데도 트럼프의 말에 모욕감을 느끼는 이유는, 모든 인간 존엄에 대한 멸시로 들려서일 것이다.
트럼프의 이런 모습은 그의 임기 내내 이어진 공적 언어의 타락이 임계치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공적 지위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언어는 달라야 한다. 진실성, 진정성, 정당성, 책임성 같은 공적 언어의 핵심을 존중하는 건 그래야 공동체가 유지되고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 목숨이 오가는 전쟁 상황에는 한층 절제된 언어가 필요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정확히 반대로 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이란·레바논에서 수천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는데도 인명에 대한 연민이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이란 해군은 끝났다. 지금 모두 바다 밑바닥에 누워 있다”고 했다. 함정을 나포하지 않고 침몰시키는 것이 ‘더 재밌다’(more fun)고 한 부하의 말을 긍정했다.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인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미국 핵 잠수함이 이란 군함을 격침한 것을 “조용한 죽음”이라 표현했다. 전쟁을 게임이나 오락인 양 홍보한다. 인간의 고통을 하찮게 보는 태도다.
상대 사회 전체를 멸시하고 심지어 종교를 모독하기도 한다. 트럼프는 이란을 “석기 시대로 되돌리겠다”고 했다. 제이디 밴스 부통령이 이란을 ‘거세’(neutered)해야 한다고 한 것도 상대를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무력화해야 할 존재로 묘사한 것이다. 힘과 이권이 정의란 걸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헤그세스는 “우리는 폭탄으로 협상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해협을 열고, 석유를 가져오고, 큰돈을 벌자”고 했다. 뒷골목 건달이 싸울 때도 금도가 없으면 ‘양아치’가 된다. 헤그세스는 말한다. “우리는 그들이 쓰러졌을 때 두들겨 패고 있고, 그게 옳은 방식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은 달랐다. 전쟁 중이라도 적을 인격적으로 모욕하거나 과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는 2011년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뒤 “미국이 작전을 수행해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고 사실만 건조하게 전달했다. 이어 “미국은 이슬람과 전쟁하는 것이 아니며,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41년 진주만을 기습당한 뒤 참모들이 써준 긴 연설문을 서랍에 넣고, 적에 대한 모욕도, 화려한 수사도 없는 500단어 내외의 짧은 연설문을 작성했다. 피해 상황도 “유감스럽게도 매우 많은 미국인이 희생됐다”는 담담한 추상어로 처리했다. 웅변적이지 않아서 더 강력한 연설이었다.
“원래 트럼프는 그런 사람인데, 뭘” 하는 건 위험하다. 그 익숙함이 ‘규범 파괴자’ 트럼프가 노리는 지점이다. 대통령사 전문가 바버라 페리는 말한다. “다른 대통령들도 욕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공식 석상에서는 피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의 수사를 전반적으로 저열하게 만들었고… 한때 금기였던 이 표현(f×××)은 이제 미국 사회 모든 영역의 일상어가 됐다”고 개탄한다.
공적 언어의 타락은 길고 깊은 상흔을 남긴다. 작가 고명섭은 “언어의 수준에 따라 공동체의 질이 결정된다”며 “특히 정치 언어는 압도적 위력을 지녔기에 그 언어의 타락은 나라 전체의 타락을 가져온다”고 했다. 타락한 언어에 무감각해진 사회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선의를 보호하지 못한다. 아이에게 “착하게 살아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미국과 트럼프 개인의 일탈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정적, 장애인, 이주노동자, 난민을 어떤 언어로 부르고 있는가? 유튜버와 얼치기 정치인이 조롱과 막말을 뱉어내도 내 편이면 ‘사이다’라고 추켜세우는 흐름 속에 우리 안의 트럼프는 자라고 있을 것이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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