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공기관, CM에 품질미흡통지서 남발 ‘제동’
法 “행정처분 해당, 항고소송 가능”
처분성 첫 인정… CM사 손들어줘
“부실벌점과 동일” 중복제재 지적
부실사유 없어 통지서 위법 판결
[대한경제=이승윤 기자]공공기관이 건설사업관리(CM) 용역사업자에 발급하는 ‘품질미흡통지서’도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품질미흡통지서는 내부 조치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처분성’이 부정돼 왔지만, 이번 판결을 계기로 관련 분쟁의 구제 수단이 행정소송까지 확대될지 주목된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양상윤 부장판사)는 A사 등 CM사 2곳이 “품질미흡통지서 발급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B공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사 등은 컨소시엄(공동수급체)을 구성해 B공사와 약 100억원 규모의 CM용역계약을 맺었다. 문제는 일부 공정이 한 달가량 지연되면서 불거졌다. B공사는 공정 지연 등에 따른 준공ㆍ입주 차질 등을 이유로 A사 등에 품질미흡통지서를 발급했다.
통지서를 받은 회사는 B공사가 발주하는 CM용역의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나 종합심사낙찰제 심사 등에서 감점을 받게 된다. 건설기술 진흥법상 부실벌점 부과 처분에 따른 불이익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기존 하급심 판결들은 B공사의 통지서 발급을 단순한 내부 행위로 보고 처분성을 부정했다. CM사들로서는 민사집행법상 임시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신청 이외에는 마땅한 불복 수단이 없었다.
재판 과정에서 A사 등은 “해당 공정 지연으로 부실공사가 발생할 우려가 없다”며 통지서 발급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B공사는 통지서 발급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통지서 발급은 품질관리를 위한 내부 지침에 따른 사법상 행위에 불과해 행정소송 대상인 처분이 아니라고 맞섰다.
이번 사건의 결론은달랐다. 법원은 A사 등의 손을 들어줬다.
우선 재판부는 “B공사의 품질미흡통지서 발급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못박았다. 통지서 발급은 공공기관인 B공사가 우월적 지위에서 거래상대방인 CM사에 중대한 불이익을 주는 조치로, 건설기술 진흥법상 부실벌점 부과 처분과 사실상 목적ㆍ절차ㆍ효과가 같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통지서 발급과 부실벌점 부과 처분에 따른 중복 제재 가능성도 지적했다. 통지서 발급이 행정처분이 아니라면, 동일한 사실관계로 통지서 발급과 부실벌점 부과 처분이 동시에 이뤄질 경우 하나는 민사소송, 다른 하나는 행정소송으로 다퉈야 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B공사의 통지서 발급 자체도 처분사유가 없어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건설기술 진흥법상 ‘부실공사’란 건축법 등 각종 법령ㆍ설계도서ㆍ건설관행ㆍ건설사업자로서의 일반 상식 등에 반해 공사감리ㆍ건설공사를 수행함으로써 건축물 자체 또는 건설공사의 안전성을 훼손하거나 다른 사람의 신체ㆍ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통지서 발급 원인인 공정 지연으로 부실공사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B공사와 비슷한 제도를 두고 행정제재를 남발하는 다른 공공기관들의 관행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A사 등을 대리한 법무법인 율촌의 조희태 변호사는 “B공사의 CM사에 대한 품질미흡통지서 발급의 처분성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자, 통지서 발급의 실체적 요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판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이 판결의 법리가 그대로 확정될 경우, CM사로서는 행정소송법상 집행정지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돼 민사집행법상 가처분보다 훨씬 신속하고 효율적인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게 조 변호사의 설명이다.
특히 조 변호사는 부실벌점 부과 처분에 대한 위법성 판단 기준인 부실공사 관련 요건이 통지서 발급의 위법성 판단에도 그대로 적용되면, 앞으로 공공 발주 CM 시장에서 행정제재에 대한 사법적 통제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B공사 외에 다른 공공기관들도 자체 내부 규정에 따라 CM사 등에 이른바 ‘경고카드’나 ‘주의카드’ 등을 발급하고 각종 사업 평가 등에서 감점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런 조치에 대해서도 처분성을 인정받아 효과적인 권리 구제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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