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은 총재 지명…李대통령의 승착인가? 패착인가?

김기훈 기자 2026. 4. 7. 1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기훈의 생각]
대학 교수·BIS 국장 등 화려한 이력에도
중앙은행 통화정책 실무 경험은 없어
중동발 고유가 인플레이션 진행 중에
한은 장악하고 물가안정 성공할지 불확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월 22일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을 임기 4년의 새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청와대는 “(신 후보가) 학문 깊이와 실무적 통찰력을 모두 갖춘 국제금융과 거시경제의 세계적인 권위자”라는 점을 지명 배경으로 꼽았다. 이어 “중동 사태로 인해 국제경제의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으며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물가안정에 더해 국민경제 성장까지 조화롭게 이룰 수 있는 적임자”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경제학자 출신인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지난 4월 6일 서울 중구 한화금융플라자에 마련된 인사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뉴시스

신 후보자는 지명 이후 고공행진 중인 달러 대비 원화 환율에 대해 느긋한 발언을 하면서 현장감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보유 재산의 큰 부분이 환율 변화의 영향을 받는 해외 자산이라는 점 때문에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금리 정책 책임자로서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적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중동 전쟁으로 고환율과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진행되는 위기 상황에서 소방수 역할을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통화정책의 실무 경험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선택이 패착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신 후보자의 이력을 살펴보자.

연구 경력은 풍부, 정책 경험은 부족

신 후보자는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나 고교와 대학을 모두 영국에서 나왔다. 옥스퍼드대에서 정치경제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땄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와 런던정경대 교수,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다. 연구자로서 매우 좋은 경력을 쌓았다.

신 후보자는 이후 미국 뉴욕연방준비은행 금융자문위원과 IMF(국제통화기금) 상주학자로 재직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때는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을 지냈다. 통화 정책에 관여하기는 했으나 직접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고 조언자 역할을 맡았다.

신 후보자는 2014년 BIS의 경제자문역 겸 조사국장에 임명됐다. BIS는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한 국가의 통화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며 결과에 책임을 지는 정부기관은 아니다. UN(국제연합)과 IMF(국제통화기금) 등 다른 국제금융기구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현장에서 한 발 떨어져 있다.

스위스 바젤에 있는 국제결제은행(BIS) 본부. 신현송 한은 총재 후보는 후보 지명 당시에 BIS 간부로 일했다./BIS

전문가들은 중앙은행 총재가 통화정책을 능수능란하게 운용하려면 ①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중앙은행 ②외환정책을 담당하는 재무부 ③경제 전반을 총괄하는 청와대 ④한은의 통화정책 영향을 직접 받는 금융기관에서 오랜 기간 실무 경험을 쌓아 금융시장 작동 방식과 중앙은행의 조직 운영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신 후보자가 한은 조직 장악에 필수적인 통화정책 실무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국의 사례와 비교해 보자.

비교 사례① 폴 볼커 전 미국 연준 의장

폴 볼커(1927~2019)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중앙은행 수장으로 널리 존경받는다.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학사를 마친 뒤 하버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재학 중에 뉴욕 연준의 연구자로서 통화정책과 인연을 맺었다.

볼커는 1952년 뉴욕연방은행의 이코노미스트로 첫 직업을 시작했다. 이후 시장으로 옮겨 체이스맨해튼 은행에서 금융분석가로 일하다가 재무부 금융분석국장으로 이동했다. 1963년 재무부 차관을 지냈고 다시 체이스맨해튼 은행의 부행장으로 복귀해 시장 경험을 쌓았다.

역대 중앙은행 총재 가운데 물가안정에 가장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연준과 재무부와 금융시장에서 오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연준 의장이 됐다./미국 연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볼커를 재무부 국제문제 담당 부장관으로 임명했다. 5년간 일하면서 그는 1971년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달러 금태환 제도 폐지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2차대전 이후 정립된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를 가져온 매우 중요한 정책 경험이다. 볼커는 “나의 경력 중에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중요했던 사건”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재무부 부장관으로 일하면서 각종 금융 정책 실무를 집행하고 이견을 조정했다.

볼커는 재무부를 떠난 뒤 1975년에 뉴욕연방은행 총재가 됐다. 그리고 1979년 8월에 미국 연준 의장에 취임했다. 뉴욕연방은행에서 첫 직장 생활을 한 이후 27년간 연준, 재무부, 금융시장에서 풍부한 실무 경험을 쌓은 셈이다.

볼커는 1964년 8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이후 불거진 전쟁 인플레이션과 그 여파가 이어진 1970년대의 만성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초고금리 정책을 썼다. 풍부한 실무 경험과 경륜은 두 번의 경기침체와 정치인·농민들의 반발도 무릅쓰는 뚝심과 어우러지면서 장기간의 사투 끝에 물가를 안정시켰다.

비교 사례② 제롬 파월 현 미국 연준 의장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1953~ )은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뒤 조지타운 로스쿨을 마치고 5년간 변호사로 일했다. 이후 투자은행과 사모펀드 업계로 진출했다. 그리고 대형 사모펀드인 칼라일의 파트너가 되어 8년간 일하면서 금융시장의 실무 경험을 쌓았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의장이 되기 전에 재무부와 연준에서 오랫동안 실무 경험을 쌓았다. 금리 결정 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파월은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1990년 미국 재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뒤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그를 연준 이사에, 6년 뒤인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연준 의장에 임명했다. 연준 의장이 되기 전 재무부에서 12년, 연준 이사로서 6년 등 모두 18년간 정책 집행의 실무 경험을 쌓은 것이다.

비교 사례③ 라구람 라잔 전 인도준비은행 총재

신현송 후보자와 비슷한 경력의 사람으로는 라구람 라잔(1963~ ) 전 인도준비은행 총재를 꼽을 수 있다. 라잔은 인도에서 태어나 전기공학으로 대학 학부를, 경영학으로 석사를 마친 뒤 미국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IMF(국제통화기금)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라잔은 2007년 인도 국가계획위원회 금융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2013년 9월 라잔을 3년 임기의 인도준비은행 총재에 임명했다. 인도는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를 넘는 등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다.

라구람 라잔 전 인도준비은행 총재는 경제학자 출신이었으나 중앙은행 총재가 된 이후 고금리 정책을 잘 유지해 인도의 물가를 잡는데 기여했다./미국 시카고대학

라잔은 재임 기간 동안 물가안정을 통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결과는 좋았다. 그가 취임한 2013년 9월 9.8%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년 뒤인 2015년 7월 3.8%까지 내려갔다. 199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같은 기간 6.1%에서 역대급인 마이너스 4.1%로 떨어졌다. 라잔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반발과 정치권의 비판을 무릅쓰면서 물가 안정을 이뤄냈다.

라잔과 신 후보자의 경력이 비슷하지만 둘이 처한 상황은 다르다. 라잔은 취임 당시 전임자가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10.25%까지 높여 놓은 상태였다. 그는 취임 이후 금리를 내렸는데, 금리를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2%포인트 이상 높은 상태로 유지하면서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됐다. 라잔의 퇴임 당시 기준금리는 7.0%였다.

신 후보자는 중동 위기로 소비자물가가 상승하고 있는 반면, 전임자가 금리를 물가 상승률 수준으로 내려놓은 상황에서 긴급 투입될 예정이다. 유가와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면 금리를 크게 올려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라잔의 사례를 따르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현재 2.3% 수준이므로 신 후보자는 기준 금리를 현재 2.5%에서 4%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전쟁 중에 말을 갈아 탄 李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은 중동 위기로 물가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 상황에서 물가안정의 사령탑을 교체했다. 시행착오 끝에 경험이 누적된 전임 총재 대신 통화정책 실무 경험을 하나씩 쌓아가야 하는 새로운 총재를 후임으로 지명했다.

역대 중앙은행 총재들을 돌이켜 보면 한은, 재무부, 청와대 등에서 미리 오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은 취임 직후부터 한은을 빠르게 장악했다. 정확하게 경제 흐름을 파악하고 밀어붙일 때와 물러날 때를 잘 판별했다. 대대적인 금리 인상과 금리 인하 등 과감한 통화정책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중동 위기로 고물가 고환율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경제학자 출신을 신임 한은 총재 후보자로 지명했다. 사진은 이 대통령이 지난 4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 점검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뉴스1

반면 통화정책의 실무 경험이 없는 총재들은 취임 직후 한은의 고품질 내부 보고서를 접하면서 소신이 약해지기 일쑤였다. 대략 2년에 걸쳐 조직 운영과 통화정책의 실무에 익숙해진 뒤에야 자신의 철학을 펼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이력과 한국 거주 경험의 부족 측면에서 볼 때 신현송 한은 총재 후보자가 후자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물가 관리에 실패해 중도 퇴임한 이후 배턴을 이어받은 이재명 대통령이 물가 관리가 가장 중요해진 시기에 도박을 시작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도박이 실패하면 국민들은 장기간 고물가와 고환율에 시달리게 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