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벗어나, 샛길에 핀 꽃도 보고 싶다"…우리들의 '종해 형'

아르떼 2026. 4. 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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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구본숙의 Behind the Scenes
피아니스트 박종해
"내가 즐거워야 관객도 즐겁다"

대학 시절 나는 공강 시간마다 도서관으로 향하곤 했다. 학기 내에 수십 시간에 달하는 도서관 근로 활동을 반드시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삼삼오오 학교 앞 카페나 식당으로 향할 때, 나는 서가의 정적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무 살 남짓, 한창 팔팔 끓는 청춘에게 도서관은 사실 그리 매력적인 놀이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서 선생님의 확인 도장을 받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무엇이라도 읽어야만 했다. 어려운 전공 서적이나 철학책을 파고들기엔 마음이 너무 들떠 있던 시기, 내 시선이 머문 곳은 국내 작가들의 소설과 시집들이었다. 특히 국내 작가 이문열, 한수산 작가의 책에 푹 빠져 지냈다. 그들의 책을 한 권씩 격파하듯 읽어나가던 경험은 묘한 성취감을 주었다. 억지로 시작한 시간 채우기가 어느새 한 작가의 세계를 뿌리째 확인하고야 마는 탐독의 습관으로 변해간 것이다.

최근 음악계에서 동료와 후배들에게 남다른 신뢰를 받는 피아니스트 박종해의 이야기를 접하며 문득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수많은 후배 연주자가 음악적 고민에 부딪힐 때 가장 먼저 '종해 형'에게 전화를 건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정답을 일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곡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려주는 것은 물론 여러 연주자의 다양한 해석을 비교해 들어보라며 세심하게 조언하는 든든한 조력자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그는 어릴 적부터 한 곡에 대한 여러 연주자의 해석을 알고 싶어 음반을 다 사서 들어보았다고 한다. 하나의 대상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 이면의 다양한 결까지 확인하고자 하는 그 예술적 갈증이 과거 도서관에서 작가 한 명을 공략하던 나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때의 지루했던 기다림과 시간 채우기식 독서가 결국 나를 지탱하는 단단한 독서 근육이 되었듯, 박종해의 그 집요한 탐구심 또한 그를 대체 불가능한 연주자로 만든 원동력일 것이다.

이처럼 동료들의 깊은 신뢰를 받는 그의 바탕에는 탄탄한 음악적 뿌리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거장 아리에 바르디를 사사한 그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6세에 피아노를 시작해 2000년 미국 뉴헤이븐 콘서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화려하게 데뷔했고, 2006년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국내 청중들에게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후 홍콩, 더블린, 퀸 엘리자베스, 클리블랜드 등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최연소 수상과 특별상을 휩쓸었으며, 이탈리아 에판시의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상’을 거머쥐며 거장의 반열에 오를 재목임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그의 영향력은 동료 연주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케스트라 기획자들 사이에서도 그는 믿고 찾는 자문역이다. 객원 단원 섭외가 필요할 때 그에게 의견을 구하는 담당자가 있을 정도로 그의 인적 네트워크는 넓고 깊다. 특유의 유유자적하고 소탈한 성격 덕분에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 이른바 ‘찐친’들이 포진해 있는 셈이다.

공연 기획자들에게 박종해는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 같은 존재다. 방대한 레퍼토리를 소화해내는 탄탄한 실력은 기본이고, 어떤 제안에도 긍정적으로 화답하는 ‘오케이맨’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연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곡목 변경이나 다른 연주자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촉박한 일정 속에서도 그는 주저 없이 무대를 수락하곤 한다. 이는 단순히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평소 수많은 악보와 해석을 체화해 둔 덕분일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갑작스러운 변화는 위기지만, 방대한 실력의 데이터베이스를 갖춘 이에게는 자신의 스펙트럼을 마음껏 펼쳐 보일 또 하나의 놀이가 된다.

그는 인터뷰에서 "악보는 지도와 같지만, 나는 그 옆에 핀 꽃도 보고 싶고 때로는 샛길로도 빠져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호기심과 탐구심이 그를 정형화되지 않은, 살아 있는 연주자로 만든 원동력일 것이다. 그가 후배들에게 정답 대신 다양한 해석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본인이 이미 그 모든 길을 걸어봤기에 가질 수 있는 여유로운 관점 덕분이다. 나는 진정한 유연함이란 가장 치열하게 쌓아 올린 사람이 갖게 되는 가장 부드러운 태도라고 믿는다.

기획자의 의도를 존중하며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는 그의 태도는 협업의 즐거움을 더해줄 뿐만 아니라 결국 무대 위에서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나에게 박종해라는 연주자는 그가 2019년 금호아트홀 상주 음악가로 선정되었을 때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기억이란 어느 가을날 예고 없이 찾아간 강릉에서의 만남이다.

습관처럼 훌쩍 떠났던 2021년 9월의 강릉 여행.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며 걷던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포스터 한 장이 발길을 이끌었다.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강릉시립교향악단의 협연자로 무대에 서게 될 그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슬그머니 들어선 리허설 현장에는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 54’의 낭만적인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휴식 시간에 잠시 나눈 반가운 인사는 강릉의 맑은 가을 공기만큼이나 신선하고 청량했다.

사실 스스로 뛰어난 음악가이면서 타인에게 깊이 있는 가르침을 주고 영감을 부추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가진 것을 움켜쥐고 나누는 데 인색한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가. 하지만 박종해는 다르다. 자신의 앎과 예술적 영감을 기꺼이 공유하는 이 연주자의 주변에는 앞으로도 인생의 동행자이자 멘토로서 그를 따르는 이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며 기꺼이 자신을 던지는 그의 유연함은 오늘도 누군가의 막막한 전화를 기분 좋게 받아내며 우리 음악계의 빈틈을 가장 아름다운 선율로 채워가고 있다.

인생 뭐 별거 있나 싶다가도 오랜 시간 지켜본 박종해를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는 언제 보아도 참 진짜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즐거워야 관객도 즐겁다"는 그의 단순하고도 명쾌한 철학은, 사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악보를 파고든 자만이 부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이자 당당한 고백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주변을 밝히는 그의 긍정적인 힘이 오늘도 우리 음악계를 더욱 풍성하고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구본숙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