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넘어 인간을 묻다

광주일보 2026. 4. 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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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연극마을, 연극 ‘더 파더’ 씨어터연바람서 15~19일
씨어터연바람에서 지난해 공연된 연극 ‘더 파더’의 한 장면.<푸른연극마을 제공>
치매는 흔히 ‘죽음보다 잔인한 병’으로 불린다. 사랑하는 가족과 오래된 친구들, 나 자신에 대한 인식까지 서서히 흐려지기 때문이다. 익숙했던 집은 낯선 공간으로 바뀌고, 가까웠던 사람들마저 타인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관계의 균열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흔들리는 순간,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까. 한 노년의 내면을 따라가는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푸른연극마을이 연극 ‘더 파더(The Father)’를 오는 15일부터 19일까지 씨어터연바람에서 공연한다. 평일은 오후 7시 30분, 주말은 오후 3시와 6시에 각각 진행된다.

이 작품은 프랑스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대표작으로 2012년 발표 이후 전 세계에서 꾸준히 공연돼온 현대 연극의 주요 레퍼토리다. 초연 이후 프랑스 몰리에르상, 영국 올리비에상, 미국 토니상 등 주요 연극상을 석권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이후 영화로도 제작돼 안소니 홉킨스가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푸른연극마을은 2023년 창단 30주년을 계기로 이 작품을 선보인 이후 매년 정기적으로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극단은 원작자와 에이전시의 라이선스를 확보해 레퍼토리 공연으로 정착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당금 대표는 “‘더 파더’는 대형 공연장에서 주로 선보이던 작품으로 지역 소극장에서 꾸준히 공연되는 경우는 드물다”며 “밀도 높은 연기가 중요한 작품인 만큼 소극장과의 궁합이 잘 맞는다. 지역에서도 완성도 높은 공연을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 ‘더 파더’의 한 장면.<푸른연극마을 제공>
이야기는 파리의 한 아파트에 홀로 사는 80세 노인 앙드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아직 스스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딸은 그의 상태를 걱정해 간병인을 들이고, 앙드레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불편함과 불신을 키워간다. 간병인이 자신의 시계를 훔쳤다고 의심하는 등 주변 사람들에 대한 경계도 점점 짙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일상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낯선 남자가 나타나 이 집이 자신의 집이라고 주장하고, 딸의 모습과 말도 점차 어긋난다. 같은 공간과 인물이 반복되지만 조금씩 달라지며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이 작품은 이러한 과정을 앙드레의 시선에서 풀어낸다. 가족이나 주변인의 입장이 아닌 치매 당사자의 인식을 따라가며 관객이 혼란과 불안을 직접 체험하도록 만든다.

극의 핵심은 사건 자체보다 ‘인식의 붕괴 과정’에 있다. 무대 위에서는 같은 공간이 계속 변하고 등장인물의 관계도 달라진다. 어떤 인물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같은 대사가 반복되며 시간의 흐름도 뒤섞인다. 이러한 장치는 단순한 연출 효과가 아니라 치매를 겪는 인물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착각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가 이어지며 극은 일종의 심리적 미스터리처럼 전개된다.

연극 ‘더 파더’의 한 장면.<푸른연극마을 제공>
또한 이번 공연은 연극에 미술과 음악을 결합한 컨템포러리 협업 프로젝트로 구성된다. 무대에는 광주 출신 김상연 작가의 작품 10여 점이 설치된다. 특히 대표작 ‘존재(쇼파)’는 주인공 앙드레가 겪는 기억의 혼란과 관계의 단절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음악은 버클리 음대 출신의 박근혁 작곡가가 맡았다. 반복되거나 조금씩 변하는 선율을 통해 앙드레의 불안한 상태를 표현한다. 익숙한 음악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흐름이 이어지며 인물의 혼란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앙드레 역은 40년 경력의 배우 오성완이 연기한다. 오랜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복잡한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풀어낼 예정이다. 이밖에 이당금, 이명덕, 조아라, 민찬욱, 박선주 등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당금 대표는 “지난해에는 출연 예정 배우의 논란과 하차 등으로 아쉬움이 남았던 만큼 올해는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는 데 집중했다”며 “지역 관객들이 밀도 높은 공연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 바란다”고 말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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