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북적북적] “사과는 동그랗고 빨갛지 않아도 된다”… 박신양, 감정의 근원을 향한 전시와 책으로 돌아오다
![배우 박신양이 지난3월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및 '감정의 발견'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김호이 기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7/552805-UDxyZm4/20260407112819538ohbw.jpg)
[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호이 기자]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니 동그랗고 빨간 것과는 거리가 멀더군요. 사과가 동그랗고 빨개야 하나 오래 생각했어요."
배우이자 화가 박신양은 지난3월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과 두 개와 마주했던 오래된 순간을 떠올렸다. 고(故) 두봉 주교에게 선물받은 사과가 썩어가는 모습을 버리지 못해 그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사과'를 넘어 '그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되면서 지금까지 40여 점의 사과 그림이 탄생했다. 처음엔 둥글고 붉던 사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형태를 잃었고, 결국 "사과는 동그랗고 빨갛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만의 감정적 직관을 깨닫는 지점까지 나아갔다.

러시아 유학 시절 친구 '키릴'… 그리움의 얼굴을 그리다
박신양이 그림을 그리며 가장 먼저 마주한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그 중심엔 러시아 유학 시절 함께 공부했던 친구 '키릴'이 있다.
"키릴은 존재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주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가장 너그럽게 바라보던 친구죠."
그는 사과를 여러 방식으로 그렸듯 키릴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그리며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근원을 파고들었다. 그리움은 단순히 보고 싶다고 해결되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리움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언제 강해졌는지, 어떻게 해소되는지 묻기 시작했죠. 이 감정이 인간에게 필요한 감정인지도 계속 질문했습니다."

"연극은 내 배경"… 한국 최초 '연극적 전시'로 확장된 표현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화 전시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 안에 15명의 배우를 '정령'처럼 배치해 그림과 관람객 사이를 오가게 했다. 이들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시의 주제인 '제4의 벽'을 흔드는 존재다.
박신양은 자신을 "광대로 살았다"고 표현한다. 무대 위에서 관객을 의식하되 동시에 잊어야 했던 시간들, 상상과 현실의 경계 위에서 연기를 완성하던 긴장. 그는 그 기억을 이번 전시에 그대로 옮겼다.
"굳이 왜 시도를 안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불편할지, 즐거울지는 아무도 모르죠."

『감정의 발견』…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전시와 함께 출간된 책 『감정의 발견』에는 그가 배우에서 화가로 이동한 40년 예술 여정이 차분한 문장으로 담겨 있다.
매일 새벽 연습실 청소로 하루를 시작하던 학생 시절, 40년간 이어온 발성 연습, 연극 평론 200편을 모두 찢어버린 기억까지 그는 평생 예술가로서 태도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켰는지 기록한다.
그는 말한다. "진심으로 원하는 것에 집중하면 어느샌가 이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뜻과 의지는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아요."
또 "좋은 그림이란 보는 사람의 상상력과 이성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는 그림"이라며 예술은 기술보다 '마음의 진실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연기도, 그림도 기교보다 중요한 건 마음이 담겨 있느냐입니다. 매일 묻습니다. 지금 이 감정은 어디로 흐르고 있나? 표현은 무엇을 향하고 있나?"

"사과처럼, 감정도 한 가지 형태일 필요 없다"
이번 전시는 그림 150점과 연극적 무대 연출을 결합한 현대적 형식으로, 3만 명이 찾았던 첫 개인전 이후 박신양의 예술 세계가 어떻게 확장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측은 그가 "표현주의적 탐구를 기반으로 깊은 사유를 시각적으로 펼치는 예술가"라며 이번 전시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사과는 동그랗고 빨갛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말처럼, 감정도 단일한 형태로 정의될 수 없다. 박신양은 그 유동적인 감정의 얼굴을 그림과 연극이라는 두 언어로 풀어내며 관람객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건넨다.
"당신의 감정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요?"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은 5월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