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포럼]아닌 것을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세상

최근 민주당 김주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현재 소관 상임위에서 심사 중이다. 주된 내용은 근로기준법 제104조의2를 신설하여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근로기준법 관련한 분쟁해결에서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내용이다.
내가 고용하지도 않은 사람을 일단 근로자로 보고 4대보험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지급할 수도 있게 된다는 법안이다. 이는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할 수 없게 만드는 법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임금을 목적으로 개별 사업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며, 사용자의 지휘 감독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개정법은 계약내용이나 사용자의 지휘 감독 여부 불문하고 일단 근로자로 보겠다는 것이다.
근로자가 사용자에 비해 열악한 위치에 있고 보호할 필요성은 공감한다. 그러나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 확대, 노란봉투법 시행, 최저임금 인상 등 영세사업자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규제가 계속되고 있는데 근로자 추정제도까지 도입된다면 자영업자를 포함한 소규모 사업장은 사업을 계속 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서류 업무가 늘어나는 차원이 아닌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된다.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의하면 2024년 우리나라에 상시근로자 10인 미만인 소상공인은 613만개로 전년 596만개보다 다소 증가하였고, 종사자 수는 961만명이다. 최소 613만명이 소상공인으로 사장이며 가장이다. 이들은 자신이 직접 매장을 운영하는 등 일도 해야 하고, 아르바이트생 등을 고용하여 사용하는 지위에 있다.
근로기준법은 5인 이상 사업체에 적용되나 대부분 규정은 5인 미만 기업에도 적용되고 처벌조항도 적용된다. 주위에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는 처벌은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근로계약서 미작성으로 근로기준법위반죄로 형사처벌을 받고 있다.
근로자 추정제를 형사사건에도 적용할지는 다소 변수가 있으나 형사사건에도 적용한다면 프리랜서가 계약대금을 못받을 경우 민사가 아닌 근로기준법위반죄로 노동청에 진정을 하고 사장은 근로감독관 조사를 받게 되며 검찰, 법원까지 넘어가게 된다.
치킨집 사장이 홍보를 위해 전단지 알바를 고용해서 일주일간 전단지를 나눠주도록 했는데 7일 후 근로자이므로 주휴수당을 달라고 하면 개정된 근로기준법상 일단 주어야 한다는 결과가 될수도 있다.
근로기준법은 민법상 계약자유의 원칙을 수정한 사회법적 성격을 띠고 있어 근로자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데 동등한 사적 계약 영역에서 근로기준법이 들어온다면 오히려 무기 불평등이 될수도 있다.
노동법 이론에 의하면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과 개별적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근로기준법이 있으며, 양자에 따른 근로자는 범위가 다를 수 있다고 보았다. 노조법 제5조제3항에는 해고 중인 근로자도 일정한 경우 종사하는 근로자로 보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근로자의 단결권ㆍ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여 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노조법상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 등이 있을 경우 보호하기 위한 취지이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하는 것으로 개별적 근로관계가 아닌 대등한 사적 계약 영역에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과거 88골프장 캐디들이 자신들도 근로자이므로 노조를 만들 수 있다고 단체행동을 하여 오랜 시간 분쟁이 있었다. 법원 판결에 의해 캐디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니지만 노조법상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근로자라고 인정되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출퇴근 시간, 근무 시간, 작업 장소 등을 사용자의 지휘 감독을 받아야 하지만 노조법상 근로자는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조활동을 할 수 있는 근로자인지 여부가 문제되기 때문에 다소 넓게 볼 여지가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무제공자가 ‘지휘·감독을 받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에 대해 어떤 사실이 ‘없음’을 완벽히 증명하는 것은 전형적인 악마의 증명이며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
내가 저 사람이 우리회사 직원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데 고용계약을 하지 않았다거나 단순히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해 보이고, 근로자임을 주장하는 사람이 한 일은 계약관계에 따라 나의 지휘 감독없이 스스로 작업조건을 정해서 그 사람이 일을 했다는 것을 내가 증명해야 하는데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어보인다.
근로자추정제 도입은 기업이 근로자들과 계약 관계의 법적 성격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어 경영 불확실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현행 법원 판례는 구체적 사건에서 근로자 보호를 위해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하여 도급계약, 위임계약, 업무위탁계약 등 다양한 형태의 노무제공 관계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해 왔다.
근로자추정제가 도입되면 구체적 사정을 고려함이 없이 다양한 형태의 계약 관계 전반에 걸쳐 법률상 추정의 효력이 미치게 되어, 프리랜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소상공인을 포함한 기업의 법적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
현대 경제에서는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 등 다양한 형태의 노무제공 관계가 존재하며, 이는 노무제공자 스스로가 선택한 독립적 사업 방식인 경우도 많다. 근로자추정제는 이러한 다양성을 획일적으로 근로관계로 포섭함으로써, 오히려 노무제공자의 자율성과 선택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근로자추정제도는 오히려 자유롭게 일을 하고 싶어하는 프리랜서에게 근로자의 지위를 부여하여 지휘 감독을 받게 하는 역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일하고 싶다는 프리랜서들의 선택권조차 획일적인 근로기준법 틀 안에 가두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기업은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외부 인력 활용을 극도로 자제하거나, 역설적으로 자동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근로자 추정제는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등 이른바 ‘권리 밖의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다. 노무를 제공하면 일단 근로자로 간주하고, 아니라는 증명은 사용자가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법의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그 수단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사각지대 해소라는 대의에는 동감하지만, 현행 개정안처럼 기업에 일방적인 입증책임을 지우는 방식은 위험하다.
현재 소관 상임위에서 심사 중인데 진영논리나 맹목적인 개정이 아니라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여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재벌, 대기업, 악덕 업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편의점 사장, 치킨집 주인, 김밥집 사장님도 적용받는 법이기 때문이다.
근로자추정제는 노동 취약계층 보호라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기업 현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매우 크고 광범위하다. 현행 판례 법리도 이미 계약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근로자 보호를 강화해 온 만큼, 근로자추정제 도입에 앞서 현행 법리의 실효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기업과 노동자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균형잡힌 입법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인다.
근로기준법의 목적은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고 향상시키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자의 기업 경영 환경을 고려하는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성급한 개정은 돌이킬 수 없는 소상공인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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