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의시간]⑧ 제 역할 못한 퇴직연금...소득대체율 20%는 돼야
2026년 올해부터 국민연금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이 올랐다. 국민연금 기금의 소진 시점은 2064년으로 늦춰졌지만 청년세대의 불안감은 여전하고 OECD 최악 수준인 노인빈곤율도 해소될 기미가 없다. 국회는 연금개혁 특위 활동시한을 2026년 말로 연장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연금개혁을 올해의 주요 국책과제로 꼽고 있다. 이제는 개혁의 시간, 연금개혁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해 본다.<편집자주>
지난 2월 6일, 고용노동부와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노동자 단체, 그리고 경총·중소기업중앙회 등 사용자 단체가 참여한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태스크포스(TF)'가 의미 있는 성과물을 내놓았다. 2005년 퇴직연금 제도가 시행된 이후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퇴직연금의 틀을 손보게 된 것이다.

이번 노사정 합의의 핵심은 퇴직연금 제도를 전사업장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과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퇴직연금 제도는 기업이 퇴직금을 사외 금융기관에 적립해 근로자가 퇴직 후 수령하는 제도로, 회사가 도산해도 퇴직금을 보전받을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 아직도 회사 안에 퇴직금을 적립해 두는 곳이 많다. 2024년 기준으로 도입한 사업장은 26.5%에 불과하다. 300인 이상 대형 사업장은 92%가 도입했지만 30인 미만 사업장은 23%,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10.6%에 그쳐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회사가 어려워지면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는 과태료 같은 처벌 규정을 둬서 퇴직연금 제도 의무화를 강제할 예정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국민연금처럼 독립적인 수탁법인을 별도로 만들어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모아 운영하는 방식으로 지금처럼 사용자가 금융기관에 적립급을 맡기는 계약형과는 다른 방식이다.기금형으로 운영하면 규모를 키울 수 있고 수익률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노사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퇴직연금 본연의 역할을 기대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연금개혁이라는 큰 틀의 차원에서 퇴직연금에도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10명 중 9명은 퇴직 후 일시 인출…연금자산 누수 방대책 시급
지난 2024년 기준 퇴직연금 수령을 개시한 계좌 가운데 연금 형태를 선택한 비율은 계좌수 기준으로 13%에 불과했다. 10명 중 9명 가까이가 노후 연금재원을 퇴직 시점에 한꺼번에 인출해 사용하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퇴직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 역할을 제대로 하는 OECD 연금 선진국들의 경우 퇴직연금이 차지하는 소득대체율이 대부분 20%가 넘지만 우리나라는 소득대체 역할을 거의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 중도 인출이나 일시금 수령 등 근로자의 선택권을 기존 그대로 보장했다. 노동자 단체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다.
중도 인출자의 경우는 대부분이 주택자금 마련을 위해, 60세 정년 퇴직자의 경우는 국민연금 수령 사이의 소득 공백,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때문에 일시금 수령을 선택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퇴직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을 위해서는 중도금 인출과 퇴직 후의 일시금 수령을 규제해야 하지만 노동계는 이같은 규제에 대해 아직까지 재산권 침해 논란이 있는데다 정년과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일치시켜서 소득 크레바스를 해소하고 사회안전망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일의 경우는 퇴직연금의 일시금 수령을 금지하고 있고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10만 유로 이하 퇴직연금에 대해 일시금 수령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는 정년과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같은 데다 사회안전망도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수준이다.
때문에 퇴직연금의 노후보장 기능 강화를 위해서는 현재 논의 중인 정년연장 같은 노동개혁이 함께 뒤따라야 한다. 또한 일시금 수령보다 연금 형태의 수령을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유도책이 마련돼야 한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1년에 20조 원의 퇴직연금이 IRP(개인형 퇴직연금) 계좌로 넘어왔다가 15조 원이 바로 빠져나가서 연금 기능을 거의 못하고 있다”면서 “퇴직 시점 일시 인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중도 인출 제한 규정처럼 주택마련이나 병원비 등으로 인출 용도를 제한하거나 적립금을 담보로 필요자금을 대출해 주는 방식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퇴직연금이 노후 보장 역할 하려면 수익률 제고 필수
퇴직연금이 일시금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연금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또 한 가지는 수익률을 높여서 연금으로서의 효능감을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2024년 말 기준 퇴직연금의 총 적립금은 431.7조 원으로 퇴직연금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400조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최근 10년 평균 수익률은 2.31%에 머물고 있어 임금상승률은 물론 정기예금 금리보다도 낮은 형편이다. 이는 국민연금의 장기 연평균 수익률 8%와 비교하면 거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미국의 대표적인 퇴직연금인 401k의 연평균 수익률 9%과 비교해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이렇게 수익률이 낮은 것은 전체 적립금의 74.6%가 단기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고 실적배당형은 17.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이 도입된다면 전문적인 투자가들의 기금 운용으로 수익률을 대폭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노사정 합의에는 기금형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것 역시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의 하나로 남겨놓았다. 의무화할 경우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는 있지만 20년 동안 운영해온 제도를 한꺼번에 바꾸기 보다는 공공형 기금이나 대형 사업장의 성공 사례를 축적한 뒤 단계적으로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이 30인 미만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지난 2022년부터 운영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인 ‘푸른씨앗’의 경우 지난해 기준 적립금 규모 1조 7천억 원에 8.6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최근 3년간 평균 수익률은 7.39%다.
평균 연봉 4천만 원인 사람이 30년 근속했을 경우 현재처럼 퇴직연금 수익률이 2.31%일 경우 퇴직 시 수령액은 1억 3,700만 원에 불과하지만 수익률이 6%일 경우는 퇴직연금이 총 2억 7,900만 원으로 2배나 늘어난다. 30년으로 나눠 수령할 경우 월 수령액도 월 56만 원에서 112만 원으로 2배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기금형 퇴직연금이 ‘푸른씨앗’ 처럼 노후자금을 불려줄 수 있다는 신뢰를 준다면 국민연금만으로는 부족한 노후 소득보장 기능을 상당 부분 퇴직연금이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년 미만 근로자, 특수고용직 노동자…퇴직연금 역시 사각지대 해소가 급선무
문제는 국민연금과 마찬가지로 퇴직연금에서도 사각지대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계약 기간 1년 미만 단기근로자는 퇴직급여를 전혀 받을 수 없다. 국가데이터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비정규직 576만 명 가운데 근속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는 50.6%에 달했다.
여기에 더해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노동자 역시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니어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들의 숫자도 약 144만 명에 이른다.
기금형 퇴직연금제가 도입돼 수익률이 높아지더라도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정부는 노사정 합의 후속 조치로 이들 사각지대 노동자를 위한 노후소득 보장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설계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퇴직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는 계속근로기간이 1년 미만인 노동자를 퇴직 급여 지급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는 현행 퇴직 급여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도 11개월 미만 쪼개기 계약의 불공정성을 지적한 바 있어 기대를 걸어볼 만한 상황이다.
아울러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경우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이 적용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예를 드는 것이 호주의 사례다. 호주의 퇴직연금 제도는 고용 형태나 근속 기간에 상관없이 임금의 일정 비율을 반드시 납입하도록 했다. 단 하루를 일해도 그날 임금의 12%가 쌓이게 된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국세청에서 인적용역 제공자의 소득 신고 자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사용자에게 일정금액을 부담시키도록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아울러 국민연금공단처럼 공공성을 갖는 퇴직연금 기금운용 주체가 생기면 특수고용직 형태의 노동자들이 업체를 옮기거나 직종을 옮겨 다니더라도 자신만의 고정된 퇴직급여 계좌에 계속해서 퇴직급여를 적립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OECD 최악이었던 데는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낮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퇴직연금이 연금으로서의 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이유도 크다.
퇴직연금이 적어도 20% 정도의 소득대체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려면 기금형 제도 운영으로 수익률을 높이는 것과 함께 부익부 빈익빈이 되지 않도록 제도 안으로 전혀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1년 미만 계약 노동자들과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고용노동부가 하반기에 내놓을 퇴직연금 세부 계획을 유심히 살펴보도록 하자.
[연금개혁의시간] 이전 기사
① 모든 개혁의 분수령, 연금개혁(https://newstapa.org/article/G5cbg)
② 기금 소진...가능은 할까? (https://newstapa.org/article/VY1BF)
③ 선제적 국고 투입...현시점 유일한 대안 (https://www.newstapa.org/article/Z4SEb)
④ 선제적 국고투입이 미래세대에 가져올 혜택 (https://newstapa.org/article/NSpHj)
⑤ 국고 투입 크레디트 확대...청년세대 노후 위한 투자 (https://newstapa.org/article/3IyA8)
⑥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없이 연금개혁 없다 (https://newstapa.org/article/3ZrJL)
⑦ '이상해진' 기초연금...이제는 바꿀 시간 (https://newstapa.org/article/Cjclh)
뉴스타파 최기훈 bluemango@newstapa.org
Copyright © 뉴스타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