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을 보호한다” 전쟁기념관 베트남전 팻말은 왜 ‘거짓’이 되었나

‘한국군은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드라도(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
주월한국군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이 내린 훈령은 베트남전쟁 당시 우리 군의 대민작전 기조를 상징하는 말로 널리 알려졌다. 이 훈령은 당시 하얀색 나무 팻말에 적혀, 베트남 파병 부대인 십자성부대 정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 용산구 한국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 초입에 그 모습을 본뜬 복원본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이 나무팻말에 지난해 10월께부터 포스트잇이나 마스킹 테이프로 두 글자가 덧입혀 적히기 시작했다. ‘거짓’. 쉽게 제거할 수 있는 테이프일 뿐이지만, 떼어내도 다시 붙고, 또 붙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거짓’ 글자에, 전쟁기념관 쪽은 이 글씨를 붙인 ‘성명불상자’를 공용물건손상 등 혐의로 고소했다. 성명불상자는 누구였을까.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은 한국군의 파병 역사를 다룬 상설 전시실로, 베트남전 파병은 특히 공들여 전시돼 있다. 채명신 장군의 나무 팻말을 지나면 왼편에 평화로운 베트남 농촌을 표현한 미니어처들이 보인다. 한국군이 베트남 농촌 주민들을 위해 교량과 도로, 학교를 건설하고 있고, 대민진료소를 운영하는 모습이다. 전시실 벽면에는 베트남 농민과 함께 모내기하는 한국 군인의 활짝 웃는 사진도 붙어있다. 한국군 태권도교관단이 개설한 태권도 교실 덕분에 남베트남에서 ‘태권도 붐’이 일었다는 내용도 강조된다. 이 평화로운 전시실에 지난 6월 베트남 하미마을 에서 온 응우옌티탄(69·하미 탄)과 퐁니마을에서 온 응우옌티탄(66·퐁니 탄)이 방문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 내용은 사실과 달라요.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피해자들이 이렇게 여러 번 한국에 오지 않았을 거예요.”
하미 탄과 퐁니 탄, 그들 가족이 겪은 베트남전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한국군은 1968년 2월12일 베트남 다낭에서 20㎞가량 떨어진 퐁니마을에서 74명을, 불과 12일 뒤엔 꽝낭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마을에서 135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 해외파병실 어디에도 두 베트남전 학살 생존자가 겪은 일은 전시되지 않았다. 퐁니 탄은 어린아이를 구출하는 군인 사진 앞에 멈춰 분을 삭이며 “내가 겪었던 전쟁에선 5살인 남동생과 생후 10개월이었던 사촌 동생이 총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모든 양민이 보호받지는 못했다. 학살 당했다.

두 사람이 베트남으로 돌아간 뒤, 한베평화재단은 이들의 이름을 딴 ‘탄탄이 프로젝트’ 활동 방향을 정했다. 우선 전쟁기념관에 민원을 넣었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가 알려진 점 △최근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국가배상소송 판결이 있었던 점 △해당 전시가 베트남 피해자의 분노를 자아내는 점 등을 들어 채명신 사령관 훈령 전시를 철거하고 전시 내용을 변경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꿈쩍하지 않았다. 전쟁기념관을 운영하는 전쟁기념사업회는 “채명신 장군 훈령의 존재는 역사적 사실이다. 훈령과 전쟁 실상이 달랐다는 근거로 철거하는 것은 신중하게 다룰 사안”이라며 “국방부 등 정부 기관에서 우선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답할 뿐이었다.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훈령이 적힌 나무팻말에 ‘거짓’을 적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군 학살이 자행된 베트남 마을 이름을 담은 포스트잇이나 쉽게 떨어지는 마스킹 테이프를 이어 붙여 글자 모양을 만들었다. 전시 내용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사진 찍어 시민에게 알리기도 했다.
전쟁기념사업회는 훈령 팻말에 포스트잇과 마스킹 테이프를 붙인 ‘성명불상자’를 지난 12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공용물건손상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성명불상자라고 해도 누구인지 모두 알고 있다. 탄탄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한베평화재단이다.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사무국장은 “전시물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항의성 메시지를 여러 차례 전한 것인데, 소통 과정 없이 고소라는 거친 방법을 동원해서 유감”이라며 “퍼포먼스에 나선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적법한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 생존 피해자 하미 탄과 퐁니 탄이 겪은 참혹한 고통을 기억하고 평화로 나아가자는 외침은, 그렇게 고소 대상이 됐다. 안타까움을 느낀 건 두 탄 씨와 한베평화재단만이 아니다.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김영만(81)씨는 고소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그런 (채명신 장군) 훈령을 듣지 못했다. 그런 말이 있다는 걸 수십 년이 지나서야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왜 현장에서는 양민을 보호한다는 훈령이 지켜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교훈과 피해 사실이 함께 전시돼야 전시실 존재 이유에 부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1966년 10월 베트남에 도착한 뒤 이듬해 2월 전투에서 부상해 후송됐다.
‘따이한’(대한·한국군을 의미)이 잘못을 숨기려는 태도로 두 탄씨에게 상처를 안긴 건 전쟁기념관 나무팻말이 처음은 아니다. 퐁니 탄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손해배상을 청구해 1·2심 모두 승소했다. 하지만 피고 대한민국은 곧바로 상고했다. 하미 탄은 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며 하미 마을에 세운 위령비 비문이, 2001년 한국 정부 압력으로 연꽃 그림 뒤에 숨겨지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진실을 거짓으로 숨기는 한 대한민국이 결코 평화를 지향하는 나라가 될 수 없다는 게 두 탄씨의 생각이다. 지난해 전쟁기념관 관람을 마친 퐁니 탄은 나지막이 말했다고 한다. “지금도 한국이 과거의 잘못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나라들에 무기를 지원해서 전쟁하게 만들고 있다고 느껴요. 결국 한국 정부는 후세대에 평화를 물려주려고 하지 않는 건가요.”
장종우 기자 whddn387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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