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명 정치: 약탈의 관성에서 ‘제도적 자비’의 시대로
우리는 오랫동안 정치의 본질을 권력의 획득, 혹은 희소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해해 왔다.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가 지배하던 공간에서 정치는 늘 '누가 무엇을 갖는가'라는 세속적 가치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우리가 마주한 정치는 그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층위의 질문에 직면해 있다. 바로 '생명 그 자체를 어떻게 대우하고, 어떤 가치로 길러낼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과거의 문명에서 자비나 연민, 타인을 향한 배려는 개인이 함양해야 할 도덕적 덕목이나 주관적인 '취향'의 영역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개인의 선의에만 의존하는 자비는 파편적이며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거대한 가뭄 앞에서 개인의 물 한 바가지가 무력하듯, 체계화되지 않은 선의는 구조적인 착취와 생명 경시의 흐름을 막아내기에 역부족이다.
이제 우리는 이 사적 감정을 공적인 영역, 즉 사회의 골격을 이루는 '제도'로 격상시켜야 한다. 고요한 수면 위에 떨어지는 물 한 방울이 정교하고 거대한 파동을 일으키며 수면 아래 심해까지 그 에너지를 전달하듯, 한 개인의 생명 존중 사상은 제도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회 전체의 기류를 바꾸는 구조적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감성적인 호소를 넘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안전망으로서의 '제도적 자비(Institutional Mercy)'를 구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완성해야 할 생명 정치의 핵심 과제이다.
사적 취향의 종말과 '공적 생존 의제'의 부상
근대 자유주의의 가치관 속에서 무엇을 먹고,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운용하며, 어떤 신념을 지지할 것인가는 국가가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 기호'의 영역이었다. 타인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식탁과 사유는 신성불가침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사적 취향의 울타리는 '공적 생존'이라는 거대한 해일에 직면해 있다. 미셸 푸코가 통찰했던 '생명 정치(Biopolitics)'의 현대적 발현은 인간의 생물학적 삶 자체가 권력의 핵심 관리 대상이자 가장 뜨거운 정치적 쟁점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비건(Vegan) 담론은 더 이상 개인의 유난스러운 식습관이나 도덕적 결벽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기후 위기와 생태계 붕괴라는 전 지구적 재난 시나리오 속에서,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존속을 위해 우리가 생명의 범주를 어떻게 재정의하고 자원을 배분할 것인가를 묻는 첨예한 정치적 의제이다. 비건 정치는 단순한 채식 권장을 넘어, 축산업이 초래하는 막대한 탄소 배출과 수질 오염을 공적 규제의 틀 안에서 다루는 자원 안보 전략이다. 또한 생명의 시작(태아)과 끝(존엄사 등)을 규정하는 논의는 인구 절벽과 사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국가적 생존 전략이다. 개별 주권자의 사적인 선택이 공동체 전체의 생존 가능성을 결정짓는 시대, 사적 기호가 공적 의무로 전이되는 과정에서의 사회적 합의는 향후 우리가 마주할 가장 중요한 정책적 과업이 될 것이다.
법철학의 진화: '이성적 자율성'에서 '감응력'의 시대로
생명 정치의 공고한 탑을 쌓기 위해서는 우리 법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적 토대부터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 존엄의 근거를 '이성적 자율성'에서 찾았다. 스스로 도덕 법칙을 세우고 그에 따를 수 있는 존재만이 목적 그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논리이다. 이 관점에서 동물을 비롯한 비인간 존재는 철저히 인간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며 법적 권리의 울타리 밖으로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러나 현대 법학은 피터 싱어가 제시한 '감응력(Sentience)', 즉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에 주목한다. 지능이나 이성의 유무가 아니라,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는 생명체의 본능적인 '이익'이 도덕적 고려의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종 차별주의(Speciesism)를 넘어 비인간 존재를 인간과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격상시키는 혁명적인 전환이다.

권리의 동심원적 확장: 태아에서 지구 행성까지
제도적 자비는 관념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세 가지 층위의 권리 회복을 통해 실현된다.
첫째, 가장 내밀하고 취약한 성소인 태아의 생명권이다. 태아는 명백히 독자적인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변호할 언어나 투표권이 없는 사회적 최약자이다. 국가는 태아라는 가장 취약한 존재를 위해 공적 대리인이자 후견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형벌이나 억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낙태 선택의 원인 중 상당수가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고립에 기인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제도적 자비'가 부재함을 반증한다. 따라서 미혼모 보호법 강화, 양육비 책임제 도입, 포괄적 보육 안전망 확충과 같은 '살릴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생명 정치이다.
둘째, 종의 경계를 넘어서는 동물의 인격권이다. 과거에 동물은 민법상의 '물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동물의 지각력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서 인식의 필터는 바뀌었다. 이미 프랑스, 독일, 뉴질랜드 등은 동물을 물건이 아닌 '지각 있는 생명체'로 명시하며 그 법적 지위를 격상시켰다. 이제 동물은 단순히 학대로부터 보호받는 수준을 넘어, 착취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 '비인간 인격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셋째, 만유의 근원인 대지와 자연의 권리이다. 요한 록스트룀(Johan Rockström)이 제시한 '지구 행성 경계(Planetary Boundaries)'에 따르면, 현재의 공장식 축산업은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파괴, 질소 및 인의 순환 장애, 물과 토지의 이용 등 5개 이상의 임계점을 이미 돌파하게 만든 주범이다. 이제 자연은 인간의 탐욕을 위한 자원 창고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고 번영할 재생권을 가진 독자적인 생명 공동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에콰도르나 콜롬비아처럼 자연(파차마마)에 헌법적 주체성을 부여하고, 뉴질랜드의 강(江)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혁신적인 모델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필연적인 미래이다.
1퍼센트의 확장된 사랑이 만드는 자비의 문명
시스템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은 정교한 규제나 차가운 기술이 아니라, 그 시스템의 혈관을 흐르는 '공감의 에너지'이다. 아무리 완벽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도 타자의 고통에 반응하는 인간 내면의 자발적인 의지가 없다면 그 시스템은 지속될 수 없다.
우리는 완벽한 성인이 될 필요가 없다. 다만 현재 우리가 가진 본능적인 사랑의 총량에, 단 1%의 미세한 확장성만을 더하면 된다. 내 아이를 향한 사랑에서 시작해, 이름 없는 태아와 고통받는 동물들에게 나누는 1%의 미안함, 그리고 나의 편리함을 조금 줄여 대지의 숨통을 틔우는 1%의 실천이면 충분하다. 이 작은 확장이 모여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약탈의 관성은 멈추고 자비의 파동이 문명을 뒤덮을 것이다.
성숙한 지성체로서 우리가 정의해야 할 권력의 본질은 지배가 아니라 '생명의 보호'에 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존재들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진정한 권위의 원천이다. 우리들 각자가 가진 1%의 결단이 모여 구체적인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가 새로운 사회적 표준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약탈의 시대를 끝내고 생명이 존중받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전문성이 단순히 효율을 높이는 도구가 아닌, 만생명을 살리는 문명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1994년, 환경·시민·종교단체가 총망라된 국내 최초의 국제 채식 심포지엄 '채식이 지구를 살립니다'와 미래진단 세미나 '퓨쳐비젼'을 비롯하여 3차례 세계를 연결하는 지구온난화 글로벌 컨퍼런스 등등 창의적이고 선구적인 프로그램들을 기획해왔다. 세계 NGO대회와 유엔 사막화와 생물다양성, 기후변화 총회 등에 참여하며 방한 종교 및 환경 지도자들의 통역 일과 컬럼리스트와 자유기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 채식관련 자문위원과 부산 식생활교육 국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 채식문화원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