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소총 주는데…구조된 조종사 ‘권총’ 어디서 구했나

권혁철 기자 2026. 4. 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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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5월 6일 미국 아이다호 미 공군기지에서 공군 장병이 항공승무원 자기방어무기(GAU-5A)인 소총을 조립하고 있다. 이 소총은 조종사 생존 키트의 구성품이다. 미 공군은 지난 2018년 2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이 소총 2700정을 권총 대신 조종사 등에게 지급했다. 미 공군 전투사령부 누리집

최근 국내외 언론들은 이란 산악지대에서 격추된 미 공군 에프(F)-15이(E) 실종 장교가 호신용 권총 한 자루로 36시간을 버티다 극적으로 구조됐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구출 작전 참여자와 전직 고위 군 당국자를 인용해 작전의 전말을 상세히 보도했다. 구출된 장교는 권총 한 자루만을 지닌 채 이란군의 추격을 피해 은신해 있었으며, 보안 통신 장비를 통해 구조대와 교신을 유지했다고 한다.

‘권총 한 자루’는 영화같은 구출 작전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높였고, 극적으로 구출된 미군 장교의 비장한 ‘영웅 서사’를 완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국내 언론들은 ‘권총 한 자루로 적진에서 버틴 미군 장교’란 제목으로 이란 산악지대에서 격추된 미 공군 에프(F)-15이(E) 장교 구출 작전을 보도했다. 네이버 뉴스 검색 화면 갈무리

그런데 그 미군 장교는 권총을 어디서 구했을까.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미국 공군이 지난 2018년부터 권총대신 5.56㎜ 소총을 조종사 등 항공승무원들에게 보급했기 때문이다. 미 공군은 2018년 2월부터 지난 2022년 1월까지 260만달러를 투자해 소총 2700정을 조종사 등 항공승무원에게 지급했다. 이전까지 미군 조종사 등은 작전 중 피격돼 적진에 추락할 경우에 대비해 권총을 휴대했다. 좁은 조종석에 총신이 긴 소총 같은 무기를 싣고 다니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미군이 항공 승무원의 무장을 권총에서 소총으로 바꾼 계기는 지난 2015년 2월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격추된 요르단 공군 전투기 조종사를 철창에 가둔 채 화형시킨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미군 조종사들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권총은 조종석에 보관하기 편하고 몸에 휴대하기도 쉽지만, 사거리가 짧고 파괴력이 약하다. 피격된 조종사가 추격하는 적 지상병력과 권총으로 교전을 벌이기는 어렵다.

미 공군 승무원 자기방어무기(GAU-5A)는 조종석 사출 좌석에 부착된 생존 키트 내부에 수납할 수 있도록 분리 설계된 소총이다. 미국 공군 누리집

미군 조종사들에게 지급된 소총의 정식명칭은 지에이유(GAU)-5에이(A) 항공승무원 자기방어무기(ASDW·Aircrew Self Defense Weapon)다. 미군이 주력 소총으로 사용하는 엠(M)4 소총을 항공기 조종석에 탑재할 수 있을 만큼 작게 개량한 것이다. 200m 거리에서 사람 크기의 표적을 맞출 수 있는 파괴력을 갖췄다. 소총 무게는 약 3㎏이고 부피를 줄이려고 2개로 분리되어 있다. 도구 없이 60초 안에 분해·조립이 가능하다. 30발 들이 탄창들도 함께 지급된다.

이 소총은 조종석 사출 좌석에 부착된 생존 키트(ACES II)안에 적재된다. 사출 좌석은 추락 위기에 처하면 조종석을 덮고 있는 캐노피가 열리고 조종석을 위로 강하게 솟구치게 해서 조종사를 비상탈출시키는 장치다. 조종사는 사출 이후 낙하산으로 착지한다.

지난 2019년 5월 6일 미국 아이다호 미 공군기지에서 공군 장병이 항공기 승무원 생존 키트를 포장하고 있다. 이 키트는 비상시 탈출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모든 승무원에게 지급된다. 키트에는 조명탄, 낙하산, 의료용품, 구명조끼, 손전등, 소총 등이 들어있고 권총은 보이지 않는다. 미 공군 전투사령부 누리집

이 소총을 장착할 수 있는 사출좌석을 사용하는 항공기는 이번에 추락한 에프(F)-15이(E)를 포함해 에프(F)-16, 에프(F)-22 같은 전투기, 비(B)-1비(B) 폭격기, 비(B)-2에이(A) 폭격기 등이다. 지난 2019년 5월6일 미 공군 전투사령부 누리집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 미군 장병이 에프(F)-15이(E)에 생존 키트를 포장하는 사진과 설명이 나온다. 생존 키트에는 조명탄, 적에게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고 구조 신호를 보내는 자외선 손전등, 의약품, 구명조끼, 대검, 소총(GUA-5A)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 공군 전투사령부는 “생존 키트에 최근 지에이유(GAU)-5에이(A)가 포함됐다. 가볍고 반자동 소총으로, 도구 없이 쉽게 조립할 수 있다. 권총 대신 이런 무기를 소지하는 것은 조종사가 고립되어 교전에 휘말릴 경우 생존 가능성을 크게 높여준다”고 설명했다. 미 공군 조종사들의 휴대 무기를 ‘호신용 권총’에서 ‘교전용 소총’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이란 산악지대에서 격추된 미 장교는 생존 키트에도 없는 권총을 어디서 구했을까. 해당 장교가 다다익선 차원에서 권총을 사출 좌석에 추가로 준비해뒀거나 추락 후 이란 현지에서 구했을 가능성이 있겠다. 미군 당국이 이번 이란 공습 임무가 위험하다고 판단해 생존 키트에 없는 권총을 유비무환 차원에서 추가했을 수도 있다. 또 실제는 소총으로 버텼는데, 미국 정부 당국자가 구출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권총으로 바위 틈에서 버텼다’고 과장했을 가능성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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