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부터 ‘출판계약’… 요즘 각본집, 영화와 ‘동시 흥행’ 노린다
선제적으로 출판권 확보
‘왕사남’, 시사회 직후 출판추진
드라마는 방영과 동시출간 유행
20년 전 ‘명작’ 들도 귀환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명대사
‘봄날은 간다’ 작년 출간뒤 인기
배우·감독 직접 나서기도
박정민 ‘메이드 인 코리아’ 선봬
독립영화계선 팬들이 펀딩 참여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가 완성되기 위해선 한 권의 책이 필요하다. 영화에선 각본, 드라마에선 대본이라 하는데, 배우나 영화계 관계자는 이를 실제로 ‘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장에서만 통용되던 ‘책’이 이제는 출판계의 숨은 ‘효자상품’이 된 지 오래다. 실제로 16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의 흥행과 더불어 출간된 각본집은 최근 2만 부 이상이 나가며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2016년 ‘아가씨’ 각본집이 가능성을 보였다면, 이후 ‘기생충’ ‘헤어질 결심’, 드라마 ‘그해 우리는’과 ‘선재 업고 튀어’ 등이 책으로 잇따라 성공하며 시장의 지형이 변화했다.
# 개봉 전부터 ‘찜’, 속도전이 된 출판권 확보=‘왕과 사는 남자’ 각본집이 영화의 흥행가도와 함께 ‘쌍끌이’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속도’에 있다. 최근 각본·대본집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선제적 계약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작품 개봉 전, 혹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출판 계약이 체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왕사남’ 각본집을 출간한 영화 블루레이·각본집 전문 출판사 플레인아카이브도 마찬가지다.
백준오 플레인아카이브 대표는 “‘왕사남’ 시사회를 다녀온 후 바로 계약을 추진했다. 영화의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2차 매체로서의 소장가치를 판단한다”며 “좋은 작품을 놓치지 않기 위한 출판사 간의 움직임이 매우 부지런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은 2019년 ‘기생충’(3만 부 판매)과 2022년 ‘헤어질 결심’(20쇄 돌파), 드라마 ‘그해 우리는’(10만 부 판매)과 ‘선재업고 튀어’(12만 부 판매) 대본집의 연이은 성공 이후 가속화됐다. 과거에 영화는 개봉 후, 드라마는 3~4회 방영 후 계약이 체결됐다면 이제는 출판사에서 사전 검토가 필수적이다.
드라마 대본집 시장은 더욱 뜨겁다. 문학동네, 창비, 김영사 등 대형 출판사들이 시장에 가세해 경쟁이 더 치열하다. 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 ‘은애하는 도적님아’ 등의 대본집은 드라마 방영과 동시에 출간돼 팬덤의 흡수를 노렸다. 출판계에 따르면 올해 최대 기대작인 아이유·변우석 출연의 ‘21세기 대군부인’과 박해영 작가의 신작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역시 이미 방영 전 계약을 마친 상태다.

# 20년 전 ‘명대사’의 귀환, 올드 IP의 재발견= 판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입찰금액이 높아지자 출판계는 과거의 명작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스튜디오오드리에서 출간한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와 ‘8월의 크리스마스’ 각본집이 대표적이다. 개봉한 지 20년이 훌쩍 넘은 작품들이지만, “라면 먹을래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같은 명대사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소장가치를 증명했다. 스튜디오오드리의 안희조 편집자는 “단순히 과거 흥행작이라서가 아니라, 여전히 회자되는 명대사와 서사가 있는 작품이라면 충분한 상품 가치가 있다”고 분석했다.
대본집 전문 출판사인 북로그컴퍼니도 지난해 추억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대본집을 내놨다. 2009년 노희경 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국내 최초로 판매용 대본집 시장을 개척한 북로그컴퍼니의 김정민 대표 또한 “최근 시장이 과열된 측면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좋은 작품과 작가를 발굴하는 선구안”이라며 “과거 작품이라도 지금 시대에 책으로 나올 가치가 있다면 출간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배우가 만들고 팬이 응답하다… ‘아카이빙’의 새 지평= 영화계 종사자가 직접 출판 전면에 나서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배우 박정민이 운영하는 출판사 무제는 지난해 ‘무제 각본 아카이빙’ 시리즈를 시작하고 ‘악마가 이사왔다’ 각본집을 낸 데 이어 올해는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 대본집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휴민트’ 각본집 제작에 들어갔다.
현장을 찾을 수 있는 만큼 장점도 있다. 비하인드 컷, 배우 코멘트 등을 구하기가 더 용이하다. 다만 박 대표는 “시장은 냉정하다. 각본·대본 전문 출판사들과의 경쟁이 치열해 작품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면서도 “현장 종사자로서 ‘책’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느낀 각본을 여럿 만났고 이를 단행본으로 만드는 것이 오랜 소망이었다”고 했다.
‘세계의 주인’ ‘벌새’ 등 예술성이 높고 팬층이 탄탄한 독립영화도 각본집 제작이 활발해진 가운데 영화 ‘너와 나’의 조현철 감독도 자신이 속해 있는 창작그룹 단초를 통해 각본집을 내놨다. 각본집은 텀블벅 펀딩에서 목표액의 870%인 4300만 원을 돌파하며 탄탄한 팬덤을 입증했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본·대본집은 콘텐츠의 팬덤 규모에 따라 판매량이 극명하게 갈리는 ‘굿즈’ 성격이 강한 만큼 흥행이 곧 판매를 보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1000만 관객을 모은 ‘서울의 봄’이나 화제작 ‘은중과 상연’의 대본집이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흥행작만 좇기보다 멜로나 휴머니즘처럼 대중성을 갖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헤어질 결심’을 편집한 최원호 을유문화사 편집자는 “다만 굿즈로서 소비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며 “영화를 본 후에 다시 펼쳐볼 ‘책’이 결국 서점가에서도 살아남는다”고 했다.
신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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