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3대 영구 미제 사건

조중연 2026. 4. 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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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연 장편소설 ‘남방여왕-괴물의 탄생’] ⑦제주도 3대 영구 미제 사건

<연재 순서>

1 프롤로그_이성로 변호사
2 어두움의 끝_유령
3 육짓것의 시간
4 '게메'란 말은….
5 심층취재부
6 제주도판 '그것이 알고 싶다'
7 제주도 3대 영구 미제 사건
8 관덕정 살인 사건
9 유력 용의자의 등장
10 새벽의 루트
11 두 개의 모순점
12 나보다 더 센 놈이 나타났다
13 신탁의 밤

관덕정(觀德亭) 인근은 예로부터 제주도 정치 문화의 1번지로 불리었다. 서울로 말하자면 종로 같은 곳이었다. 제주목관아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훼철되어 관덕정 빼고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본격적인 목관아지 복원을 앞두고 구 법원 청사 건물 철거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살해된 여성의 얼굴과 뒤통수 그리고 목덜미에서는 치명적인 구타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양쪽 유두는 뭔가에 도려내졌으며, 성기는 훼손되었고, 어깨 등지에서 이빨 자국도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서문시장 부근 단란주점 종업원 고춘자(당시 32세)로 밝혀졌다. 학교 운동장 크기의 법원 청사 철거 현장은 파란색 펜스가 처져 있어 외부와 차단된 상태였다. 

피해자는 한 명 더 있었다. 고춘자의 시체가 발견되기 세 시간 전에 관덕정과 공사장 차단 펜스 사잇길에서 피투성이로 발견된 50대 여성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한쪽 눈을 완전히 실명했다. 고춘자가 일하던 단란주점 여주인 현 모씨였다. 

사건 당일 새벽 3시쯤 함께 귀가하던 두 사람은 불상의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범인은 현씨를 가격하여 항거 불능 상태로 만들고, 반항하던 고춘자를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제압한다. 현씨는 현장에 방치되었다가 가구점 종업원에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지만, 고춘자는 공사장 펜스 안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죽임을 당했다. 

이 사건과 별개로, 관덕정에서 고춘자의 시체가 발견되기 20분 전, 오전 6시 40분께 서귀포시 서귀동의 미소카페 여주인 강정화(당시 33세)가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밤새 연락이 닿지 않아 남편이 직접 찾아갔다가 카페 내실에서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강정화의 옷 역시 모두 벗겨진 상태였다. 하복부는 예리한 칼에 찔려 창자가 드러나 있었고, 성기도 훼손됐다. 얼굴에는 하얀 분이 칠해져 있었고, 카페 내부에는 수돗물을 틀어놓아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2015년 공포된 태완이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었으나, 이 세 사건은 2000년 8월 1일 이전 발생했으므로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되어 사실상 완전범죄가 되어버렸다. 

김수남은 제주시 동부경찰서 수장고 사무실에 있었다. 동부경찰서는 제주시청과 일도 지구 사이의 애매한 위치였다. 문예회관사거리 인근에서 대리운전을 종료할 때마다 일도 지구로 갈까, 시청으로 갈까, 고민하게 되는 자리였다. 

신분을 밝히면서 관덕정 살인 사건 파일을 구하러 왔다고 말하자 강력계가 도떼기시장처럼 어수선해졌다. 담당은 상부의 눈치를 살피며 지하 수장고로 안내했다. 계원 중 한 명이 황급히 전화를 걸었고, 수장고 담당은 프리마가 잔뜩 든 커피를 내주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부연 설명은 일절 없었다. 

다행히 서울 '아태일보' 사회부 기자 생활할 때 경찰서를 밥 먹듯 드나들었기 때문에 경찰에 대한 내성이 쌓여 있었다. 사회의 추악한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던 때였다. 김수남은 아무리 험악한 상황이라도 경찰 앞에서 기가 죽는 법이 없었다. 신입 기자 시절 선배들로부터 경찰을 구슬리거나 협박해서 정보를 얻어내는 방법까지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던 그였다. 경찰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가장 먼저 파악하라는 게 핵심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사복 차림의 늙수그레한 사내가 수장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관덕정 살인 사건 당시 수사반장 강유찬이었다. 지금은 한림의 금능해수욕장 파출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사건 파일에 자물쇠가 걸려 있는 게 분명했다. 한림에서 제주 시내까지 오려면 한 시간쯤 걸리지. 누구든 관덕정 사건 파일을 확인하려면 강유찬을 통해야 한다……. 제주 경찰 사이에 이런 불문율이 자리 잡은 듯 보였다. 

"무사 또 관덕정 사건이우꽈?" 

강유찬은 언론에서 관덕정 살인 사건을 들쑤시는 게 못마땅했다. 사건 당시 수사본부에도 기자들이 밤낮으로 '뻗치기' 하는 통에 수사하는 데 애로 사항이 많았다. 용의자가 범행을 시인해놓고 현장검증 할 때 범행을 전면 부인한 것도 지역 방송사 기자 앞이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기자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혈액형과 용의자의 혈액형이 다르다는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하는 바람에 개망신을 당했다. 이후 경찰은 끼워 맞추기식 수사를 남발하는 무능력한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무사 또 관덕정 사건을 건드렴수과? 관덕정 사건의 경우, 우리는 틀림없이 범인을 잡았다고 확신합니다. 정말 허망해십주. 석달인가 죽게 고생해서 검거해신디, 범인놈이 막판 뒤집기를 하는 바람에……." 

강유찬이 말하는 내용은 신문 기사로 파악하고 있었다. 경찰이 범인이라 확신한 용의자가 기소되지 않은 이유는 '증거 불충분'이었다. 

"나가 말이우다. 이 사건 때문에 손해를 얼마나 봤는지 알아집니까? 아직도 한창 일해야 하는 나이에, 금능해수욕장에서 주먹다짐하는 쌩양아치나 심으러 댕기곡, 취객 뒤치다꺼리나 하는 게 말이 됩니까? 나 인생도 막장이 돼불엇주. 결론적으로다가 관덕정 사건 때문에 탄탄대로를 걷던 내가 한직으로 유배 간 게 아니고 뭐꽈? 나 같은 형사는 피 냄새를 맡아줘야 소화도 잘 되고 술도 잘 들어가는디." 

"사건 당시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관덕정 사건과 한날한시에 일어난 서귀포 미소카페 살인 사건 범인을 잡지 못해 막 초조했고, 범인을 검거하는 경찰관에게는 1계급 특진이 보장되난 모두 눈이 뒤집어졋주. 경헌디도 우리가 범인이라고 확신해서 잡은 용의자를 법으로 처벌하지 못했으니 이보다 원통한 일이 어디 있으쿠가. 솔직히 말해서 관덕정 사건은 더 밝혀낼 것도 엇을 거우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웬만한 것은 다 밝혀져시난." 

"서귀포 미소카페 살인 사건은 어땠습니까?" 

"그건 정말 미스터리 사건이우다. 관덕정 사건에 가려서 잘 알려지지 않앗주. 관덕정 사건 다룰 때 끄트머리에서 언급하는 정도였고. 기자들도 강력 사건 두 개가 한 방에 터져부난 힘든 기색이 역력했고. 관덕정 사건에 정신이 팔려서 신경 못 주마는 나중에 현장이 말도 못 하게 참혹했다는 얘길 들엇수다. 나가 핸들 잡았으면 어떵 됐을지 모르쿠다마는." 

"뭐 더 충고라도 해 줄 말씀은 없습니까?" 

"두 사건 모두 공소시효가 지낫수다. 자꾸 이렇게 들쑤시는 게 탐탁지가 않아마씀. 하지만 나가 진짜 미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성로 변호사 살인 사건뿐이우다. 다른 것은 내 관할 밖이라 관심이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고." 

"이성로 변호사라면?" 

"거 있잖읍니까. 제주도 3대 영구 미제 사건 중에." 

"1999년 제주 변호사 피살 사건 말입니까?" 

"그 변호사 이름이 이성로엿주." 

"그럼 이왕 온 김에 변호사 피살 사건 일지도 복사해 가도 되겠습니까?" 

"이성로 사건 파일은 이디 엇을 거우다. 관덕정 사건 일지부터 굳작 살펴봅서. 나 말이 맞을 거우다. 괜히 헛다리 짚지 말앙 미소카페 사건하고 이성로 사건이나 더 파봅서. 우린 관덕정 사건 완벽하게 해결했다니깐."
조중연.

조중연

2008년 계간『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탐라의 사생활』,『사월꽃비』가 있다.

kalito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