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약 한 줄이 소송을 부른다[명쾌한 임대차 분쟁 리포트]

황규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2026. 4. 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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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할 때 당사자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대목은 ‘특약’이다. 표준 계약서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각자의 사정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흔히 특약은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되지만, 실무에서는 오히려 분쟁의 도화선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는 특약의 수가 아니라 표현의 모호함이다. “추후 협의한다”, “상호 협의하여 정한다”, “필요 시 조정할 수 있다”라는 문구는 계약 현장에서 흔히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표현에 가깝다. 당장 합의하기 어려운 사안을 나중으로 미뤄 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표현은 계약 당시에는 유연하고 합리적인 합의처럼 보인다. 상황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부담을 줄이는 장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실제로 그 상황이 발생하면, 이 유연함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임대인은 “협의한다”는 표현을 자신의 재량 범위 안에서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반면 임차인은 그 표현을 자신의 동의 없이는 결정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같은 문장을 두고도 한쪽은 권한을 확보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쪽은 거부권을 확보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특약의 위험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문장은 하나지만, 그 문장이 작동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계약 당시에는 갈등을 피하려고 남겨 둔 타협적 표현이, 시간이 지나면 갈등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기준으로 바뀐다.

특히 임대료 조정이나 계약 종료처럼 이해관계가 직접 충돌하는 사안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더욱 선명해진다.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정한다”는 특약을 두고도 임대인은 인상을 전제로 이해하고, 임차인은 동의 여부 자체를 포함한 협의로 받아들인다. 게다가 각자가 체감하는 ‘시장 상황’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같은 문장을 두고 서로 다른 결론을 전제한 채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전제를 가진 상태에서는 협의가 쉽지 않다. 각자는 이미 특약을 근거로 자신의 입장이 정당하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해석은 단순히 다른 의견이 아니라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으로 인식된다. 이때 특약은 갈등을 조정하는 장치가 아니라 갈등을 고착시키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실무에서 분쟁이 발생한 계약서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핵심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부분일수록 표현이 오히려 더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분쟁 가능성이 높은 사안을 명확히 정리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그때 가서 보자”라는 방식으로 남겨 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분쟁의 출발점이 된다.

반대로 분쟁이 상대적으로 적은 계약서는 특징이 분명하다. 특약의 수가 많은 것이 아니라, 해석의 여지가 적다는 점이다. 무엇을 언제, 어떤 기준으로, 누구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특약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의 문제다.

임대차 분쟁을 줄이는 데 필요한 것은 화려한 특약이 아니다. 특약을 다르게 해석할 수 없도록 작성하는 것이다. 특히 “협의”, “조정”, “필요 시”와 같은 표현을 사용할 때는 그 의미와 기준까지 함께 정리해야 한다.

특약은 갈등을 막기 위해 작성된다. 그러나 애매하게 작성된 특약은 갈등을 만든다. 한 줄의 문장이 관계를 지킬 수도 있고, 관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특약의 가치는 문장의 길이가 아니라, 그 문장이 얼마나 같은 의미로 읽히는지에 달려 있다.

황규현 교수는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이자 부동산·임대차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는 홍익대학교에서 “임차인 보호를 위한 주택임대차 규제에 관한 연구(영국, 미국과의 비교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울시 소상공인과 주무관으로 근무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주요 저서로는 ‘NEW 상가임대차 분쟁 솔루션’을 포함한 5권의 전문 서적이 있다.

황규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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