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보다 빠른 흥행···‘K게임’ 붉은사막, 세계에 통한 이유[점선면]
점(사실들): 서구권 평가 “매우 긍정적”
선(맥락들): 국내→해외시장 눈 돌린 이유
면(관점들): 콘텐츠 수출액의 60%, ‘게임’

가격 8만원에, 결말이 나오는 데 50시간이 넘게 걸리는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습니다. 게임 ‘붉은사막’ 이야기인데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도 15일이 걸린 400만 흥행을 단 12일 만에 달성했습니다.
붉은사막의 흥행은 북미·유럽에서 주류인 게임 장르에서 통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파급력이 커질수록 기대와 함께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함께 나오는데요. 오늘 점선면은 붉은사막을 통해 K게임의 현주소를 짚어보겠습니다.
점(사실들): 서구권 평가 “매우 긍정적”
한국 게임사 ‘펄어비스’가 만든 붉은사막은 중세 판타지풍의 가상공간을 자유롭게 모험하는 게임입니다.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게임 내 다양한 캐릭터들과 상호작용을 할 수도 있고, 아예 나만의 길을 개척할 수도 있는데요. 이용자가 상상을 마음껏 구현하도록 높은 자유도를 제공하는 ‘오픈월드 게임’의 특징을 잘 살렸습니다.
그 덕분에 붉은사막은 출시 12일 만인 지난 1일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400만장(약 3200억원)이 팔렸습니다. 역대 한국 게임 중 가장 빠른 속도입니다. 일각에서는 내년 1분기 판매량이 1000만장을 넘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특히 서구권에서 반응이 뜨겁습니다. 전체 이용자 평가 중 영어권 비중이 절반 이상인데다 ‘매우 긍정적’ 평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선(맥락들): 국내→해외시장 눈 돌린 이유
붉은 사막의 흥행은 K게임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콘솔(가정용 게임기), 오픈월드 분야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콘솔 게임은 전용 게임기를 TV 등에 연결해 즐기는 형태인데요. 북미·유럽에서는 콘솔 게임이 주류인데 반해 국내 시장은 모바일·PC 게임이 절대 다수(약 85%)를 차지합니다. 내수 시장이 굳건하다면 국내 게임사들로서는 콘솔 게임을 만들 이유가 별로 없었던 거죠.

그러나 2020년을 전후해 국내 시장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내적으로는 정보 비대칭에 따른 ‘가챠’(확률형 아이템 뽑기) 사행성 논란이 반복돼 이용자들이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요. 외적으로는 한한령(한류 금지령)으로 수출 대부분을 의존했던 중국 시장 진출이 어려워졌습니다. 실제로 2021년부터 국내 게임 시장의 성장률은 둔화세입니다.
이에 게임사들은 콘솔이 주류인 세계로 눈을 돌렸습니다. 세계 콘솔 시장 규모는 약 82조원(2024년 기준) 규모로 잠재력이 컸거든요. 2023년 출시해 앞서 전 세계 누적 판매량 400만장을 돌파한 ‘P의 거짓’(네오위즈)이나 해양 어드벤처 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넥슨) 등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입니다.
한국 게임사들의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빠른 최적화는 오픈월드 게임 개발 및 운영에도 빛을 발했는데요. 붉은사막이 조작이 불편하다는 지적, 부족한 서사에 대한 혹평을 극복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영국 IT매체 테크레이더는 “스타일리시하고 뛰어난 전투 시스템과 탁월한 오픈 월드, 그리고 화려한 비주얼이 강점”이라며 “펄어비스 개발진과 직원들이 (개선) 요청과 피드백에 매우 신속하게 대응하는 점”에도 감탄을 표했습니다.
면(관점들): 콘텐츠 수출액의 60%, ‘게임’
K게임의 성공은 산업적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한국 콘텐츠 산업 수출액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70%에 달하는데요. K팝, 방송, 영화, 애니메이션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셈입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10월 ‘K게임 현장 간담회’를 열며 “대한민국처럼 자원이 부족한 나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는 게임 수출이 ‘진짜 수출’인 것 같다”며 ‘2026 경제성장전략’의 핵심 동력 중 하나로 게임 산업을 언급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회 의원은 점선면과 통화에서 “오픈월드는 세계를 어떻게 잘 구성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고 보는데 붉은사막이 그런 점을 잘한 것 같다”며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 그게 한국의 강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세계에서도 경쟁력 있는 게임은 국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며 향후 법 개정을 통해 지원 체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각에서는 우려도 나옵니다. 게임도 콘텐츠인 만큼 불법이나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건데요. 자유도가 높은 오픈월드 게임일수록 논란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일부 보수단체는 지난해 오픈월드 게임 ‘로블록스’에서 ‘윤 어게인’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 회장은 2024년 인터뷰에서 “몇몇 기업은 남초 커뮤니티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며 게임사들이 운영 과정에서 특정 입장에 편향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습니다.
신작 출시 등을 앞두고 고강도로 일하는 소위 ‘크런치 모드’도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지난해 ‘게임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표면적인 근로시간은 줄었지만, 회사 밖 비공식 노동이 늘어났는데요. 일주일에 평균 9시간 이상을 회사 밖에서 일했습니다. 크런치 모드 경험률도 35.5%로 2024년보다 높아졌고요.
‘숏폼’(짧은 길이의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 수십시간을 투자하게 만드는 콘텐츠의 등장은 분명 예사롭지 않습니다. 앞서 성공한 K콘텐츠들은 한국 문화를 자유롭게 드러내면서도 세계에도 통할 만한 보편적 감수성을 놓치지 않았는데요. 혐오·노동권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토대 위에 결과물을 내놓은 덕분일 겁니다. 그 조건을 만족하는 K게임이 등장할 수 있을까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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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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