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없으면 미국에서 사라” 트럼프의 선언, 전쟁 후에도 ‘에너지 섹터’가 답인 이유

정채희 2026. 4. 7.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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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톨게이트’의 등장…배럴당 63달러 시대는 끝났다

[비즈니스 포커스]   


“호르무즈해협 때문에 항공유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저 모든 국가, 예를 들어 이란 지도부 제거 작전에 가담하기를 거부했던 영국 같은 나라들에 제안 하나 하겠다. 미국에서 사라. 우리는 기름이 차고 넘친다. 이제 스스로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당신들이 우리를 위해 거기 없었듯이 미국도 더 이상 당신들을 돕기 위해 그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월 31일(현지 시간) 세계를 향해 던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 엄포를 ‘무책임한 폭언’ 또는 트럼프 특유의 공수표인 ‘TACO(Trump’s Always Complaining Online)’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이는 이번 전쟁이 남긴 교훈을 가장 잔인하고도 명확하게 압축한 대목이다. 힌트는 딱 1년 전인 2025년 4월 세계를 관세 공포로 몰아넣었던 트럼프의 메시지에 있다.

“미국은 50년 넘게 착취당해 왔으나 이제 그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전 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도입하는 역사적인 행정명령에 서명한다. 이제는 우리가 번영할 차례다.”

1년을 전후로 한 그의 메시지는 똑 닮았다. 정답은 미국 우선주의. 1탄이 ‘관세’였다면 2탄은 ‘에너지’를 정조준한 셈이다.

 트럼프가 거머쥔 ‘두 번째 칼날’

미국-이란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양측 정상은 휴전을 논하며 막판 줄다리기에 있고 시장은 초조하게 전쟁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의 총성이 잦아든다고 해서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세계는 미국 우선주의에 기초한 ‘에너지 전쟁’의 초입에 다시 접어들었다.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 승용차 5부제(요일제) 안내문이 붙어있다. 오는 8일 공공기관 승용차 부제가 2부제(홀짝제)로 강화되고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에 5부제가 시행된다. 정부가 2일 자정을 기해 원유 자원안보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하기로 한 데 따른 조처다. 2026.4.2/뉴스1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전 세계가 우려하던 ‘오일쇼크’를 실존적 공포로 눈앞에 가져다 놓았다. 한국에서는 사라진 줄 알았던 자동차 5부제, 2부제가 다시 등장했다. 사람들은 조금 더 싼 기름을 얻기 위해 주유소 앞 장사진을 쳤다. 종량제봉투 1인 구매 제한이 걸렸고, 자영업자들은 포장 용기 대란에 빠졌다. 비행기 티켓값이 고공상승하고 일부 공장은 가동을 중단했다. 2026년 4월의 현실이다.

세계인은 이번 전쟁 후유증으로 뼈아픈 질문을 마주했다. “에너지 패권을 누가 쥐고 있는가.”

미국은 세계 1위 산유국이자 에너지 자립국이다. 호르무즈해협이 막혀도 타격이 미미하다. 에너지 가격 인상의 여파는 피할 수 없겠지만 에너지가 ‘없는’ 국가와는 차원이 다르다.

에너지를 쥔 이란, 중동국조차 에너지 수출이 막히면 생사의 갈림길에 빠진다. 호르무즈 봉쇄에도 “기름을 알아서 챙겨라”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미국이어서다.

트럼프는 2025년 관세로 문턱을 높이고 2026년 에너지로 생명줄을 쥐어 전 세계의 부와 산업을 미국으로 빨아들일 작정이다. 그가 말한 ‘미국의 황금기’다.

지정학 전문가 피터 자이한은 2019년 쓴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미국은 셰일 혁명을 통해 에너지 자급에 이미 도달한 상태”라며 미국은 더 이상 세계에 아쉬울 게 없으며 세계가 미국에 대해 아쉬워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더 이상 세계 에너지 시장과 엮여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가 관건”이라는 게 당시 그의 핵심 질문이었다.

반면, 미국에 낙관적이지 않더라도 에너지는 중요하다. 오대정 전 미래에셋자산운용 부문 대표는 이번 호르무즈 사태를 ‘미국 패권의 한계’로 읽었다.

오 전 대표는 “미국이 압도적인 힘으로 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달러 패권이 약해졌다는 증거”라며 향후 달러 약세와 원자재 가치 상승이 맞물리는 전환점을 예고했다. 미국이 모든 질서를 통제하지 못하는 다극화된 위기 속에서 실물 자산인 에너지와 원자재를 가진 국가들이 통화 패권의 균열을 메우며 부상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중심의 질서를 따르든 패권의 균열에 대비하든 결론은 하나로 모인다. 에너지다. 전쟁의 포화가 잦아든 뒤에도 에너지 섹터가 중장기적으로 유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TF로 담는 ‘안보 프리미엄’

상징적인 지표는 브라질의 국영 에너지 기업 ‘페트로브라스’(티커 PBR)다. 페트로브라스(ADR 기준)의 주가는 연초 대비 73.36% 상승했다. 이 회사의 수익률을 2배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는 지난해 12월 첫 출시됐는데 연초 대비 180.79%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나스닥의 기술주들이 전쟁 공포에 흔들릴 때 자원 부국은 막대한 부를 쌓고 있었다.

오대정 전 대표는 에너지와 소재 섹터를 중장기 유망주로 꼽으며 브라질과 러시아 같은 자원 부국에 주목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과 미국을 주식 투자의 주력으로 삼되 추가로 투자할 만한 시장으로 훌륭한 후보란 설명이다.

'가속화 장기투자 법칙'의 저자이자 SNS에서 '오일전문가'로 활약 중인 임인홍 씨에 따르면, 브라질 에너지 경쟁력의 핵심은 육상이 아닌 심해에 있다.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 연안의 염하층 유전을 주력 생산 기지로 삼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를 보유한 페트로브라스는 육상 유전보다 손익분기점(BEP)은 높은 편이나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반관반민 기업 특성상 정치적 리스크가 있지만 심해 유전 기반의 생산 안정성과 강력한 고배당 정책은 여전히 투자 매력도를 높이는 요소다.

브라질은 세계 주요 시장 중 거의 유일하게 한·미 양국 시장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격을 가져 분산 투자 효과가 매우 높다. 실제 2000년 7월 이래 달러인덱스와 브라질 주가는 명확한 역 관계를 보여왔다. 오 전 대표는 “2026년 달러의 점진적 약세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컨센서스임을 고려하면 브라질은 달러 약세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을 수 있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도 후보다. 오 전 대표는 특히 유럽의 에너지 비용 부담이 한계치에 달해 러시아 제재가 해제될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국가에서 자립도가 높은 국가로 부의 중심축이 이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너지 강국 미국의 대표 에너지주인 엑손모빌(XOM)은 연초 대비 31.09% 상승했다. 엑손모빌은 전통적인 원유 채굴을 넘어 셰일가스까지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어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가장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개별 종목의 변동성이 부담스러운 투자자라면 에너지 ETF가 대안이 된다. 주식형으로는 원유생산기업 ETF(XLE US), 원유서비스 ETF(OIH US), 에너지인프라 ETF(AMLP US)가 대표적이다. 원유 기업 ETF 중 가장 변동성이 낮고 안정적인 상품은 에너지인프라 ETF가 꼽힌다.

미국의 에너지 섹터를 통째로 담은 XLE(Energy Select Sector SPDR Fund)나 VDE(Vanguard Energy ETF)는 엑손모빌과 셰브론 등을 높은 비중으로 편입해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좀 더 공격적인 투자자들은 이번 중동 지정학 사태에서 가장 인상적인 성과를 기록한 탱커운임 ETF도 주목할 만하다. 연초 이후 538% 수익률을 기록했다. 단, 이 상품은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급등한 탱커 운임 계약에 직접 투자하는 파생형 ETF로 고변동성에 주의해야 한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에너지 관련 정책이 다시금 피할 수 없는 화두가 될 전망이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국회 예결특위 여당간사는 “호르무즈가 보여주는 위기가 무엇인지 직시해야 한다”며 “문제의 핵심은 에너지 안보”라고 짚었다. 이 의원은 우리 국가 전략이 전기화,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로 수렴돼야 한다며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정치권의 주목은 곧 시장의 관심으로 연결된다. 원자력 섹터는 에너지 안보의 기저 전력으로서 다시금 주목받는다. 원자로 주기기 제작과 SMR(소형모듈원전) 경쟁력을 갖춘 두산에너빌리티, 원전 설비 유지·보수 분야의 한전KPS 등이 대표적인 수혜주로 꼽힌다. 원전 검사와 제어 시스템 국산화에 성공한 우리기술과 오르비텍 등도 실질적인 안보 기술력 관점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에너지 독립의 핵심 수단인 태양광과 풍력이 탄력 받는다. 한화솔루션은 미국의 에너지 자립 정책과 연동된 글로벌 태양광 시장의 강자로 부각되고 있으며 CS윈드와 SK오션플랜트는 글로벌 해상풍력 인프라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전력 인프라 종목인 LS ELECTRIC과 HD현대일렉트릭, 화석 연료 대안으로 꼽히는 수소 경제의 에스퓨얼셀 등도 있다.

원전 관련 밸류체인에 기대를 거는 의견도 있다. 전유진 iM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란 사태로 에너지 자립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종전 이후 에너지 믹스 전환을 위해 신규 원전 도입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가능성 높고 이는 국내 원전 밸류체인에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배럴당 63달러’ 시대의 종말?

한국 시간으로 4월 2일 오전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시장의 기대와는 달랐다. 리스크 완화나 종전 선언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즉각 반영되면서 국제유가는 3%가량 급등했다.

이란도 ‘해상 톨게이트’ 전략을 꺼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란은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배럴당 1달러 수준의 통행료를 위안화나 스테이블코인으로 징수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했다. 이는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한 척당 약 30억원(평균)의 추가 비용을 의미한다. 사실상의 ‘해상 관세’가 유가에 상시 반영되는 구조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전쟁 전 출항 물량이 바닥나는 4월의 공급 손실량이 3월의 두 배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며 역사상 최악의 공급망 붕괴를 경고했다.

유가 시나리오는 비관적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전쟁이 조기에 종결되더라도 안보 프리미엄과 시설 복구 지연으로 인해 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인 배럴당 63달러로 회귀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조기 종전 시에도 배럴당 90달러 선을 유지하며 봉쇄 장기화 시 117달러, 시설 타격 시 최대 174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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