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거진 ‘리얼돌’ 논쟁···사적 사용이면 문제 없을까

사람의 신체를 본뜬 성인용품 ‘리얼돌’의 수입을 보류한 세관을 상대로 수입업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최근 법원이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1·2심 모두 “성인용품이 성인의 사적 공간으로 제한되는 경우 등에는 법률상 허용될 수 있는 것”이라는 취지로 판단했고 지난 2월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법원이 ‘성인용품을 사적인 공간에서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리얼돌에 관한 논란은 일단락되기는커녕 되려 불이 붙는다.
6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최근 엑스(X) 등 온라인 공간에서 다시 찬반 논쟁이 시작했다. 반대하는 이들은 “리얼돌은 성 상품화를 하고 있는데 왜 풍속 저해가 아니냐” “리얼돌 자체가 성에 대한 왜곡된 표현을 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반면 사용을 찬성하는 이들은 “리얼돌이랑 실제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겠냐” “범죄를 저지르거나 불법인 성매매를 하는 것보단 낫다” 라고 말한다.
리얼돌을 둘러싼 논란과 소송이 십수년전부터 이어지면서 판례도 쌓이고 있다. 앞서 대법원은 여러 차례 노골적으로 성적 부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거나 16세 미만 미성년자의 신체를 본뜬 형태가 아니라면 수입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관세청도 2022년 미성년이나 특정 인물을 형상하지 않는 경우 통관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수입통관 지침을 개정했다. 국내에서 제작되는 리얼돌도 금지하는 법률이 따로 없다.
이번에도 대법원은 “사용 목적과 주체, 사용될 공간과 환경 등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을지를 조사하지 않고 물품의 외관 검사 결과만으로 보류 처분을 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해당 리얼돌은 전체적으로 여성의 모습을 자세히 표현하고 있지만 사람의 존엄성을 심각히 훼손했다고 평가할 만큼 노골적으로 성적 부위를 표현하진 않았다고 봤다.
그러나 리얼돌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번 판결이 공개된 이후 국회전자청원 사이트에는 리얼돌 수입 및 통관 반대에 대한 청원이 올라왔다. 여성의당은 “리얼돌 문제는 단순히 수입과 유통의 정당성을 따져야 하는 영역을 넘어 여성의 안전과 지위를 위협하는 인권의 문제”라며 오는 8일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한국에 수입된 리얼돌이 ‘사적인 공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현실도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온라인에서 검색하면 여전히 리얼돌 체험방을 홍보하는 카페나 체험방 후기 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기자가 서울, 경기도 등 전국 각지에서 리얼돌 체험방을 운영한다고 홍보하는 카페 운영진에게 문의하니 “전부 폐업되고 여기만 합법으로 남아있다”며 경기 부천시의 한 건물을 안내했다. 알리나 테무, 쿠팡 등 종합쇼핑몰에서는 여성의 특정 부위를 강조한 토르소(목, 팔, 다리가 없고 몸통만 있는 조각 작품)가 다양한 가격대에 팔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리얼돌의 외형만으로 기계적인 판단을 할 것이 아니라 결국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윤김지영 경북대 철학과 교수는 “눈 깜빡임이나 온도 조정을 넘어 AI 기능으로 어느 정도 대화까지 가능해지고 있는데, 리얼돌이 실제 여성과 극도의 유사성을 구현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며 “포르노가 가짜라지만 현실에선 성적 교본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거절, 제안, 협상, 대화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리얼돌을 이용하면서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주희 덕성여대 차미리사교양대학 교수는 “리얼돌 수입업자들이 소송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면서 사회적 합의나 입법적 논의 없이 사법 판단을 통해 리얼돌 수입 및 활용에 대한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단순히 물품의 음란성 여부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인간 형상이 어떻게 재현되고 소비되는지에 대한 기술적, 사회적 함의를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102280851021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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