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회계사]⑤ 감사 시간 줄이는 구조 바꿔야… 회계 품질 살린다

김관래 기자 2026. 4.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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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시간·보수 현실화 필요
“회계 투명성, 기업·주주도 함께”

이 기사는 2026년 4월 6일 오후 4시 30분 조선비즈 RM리포트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자본주의 파수꾼’이자 ‘전문직의 꽃’으로 불리던 회계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감사 시즌마다 반복되는 과로 구조가 고착화된 결과다. 이른바 ‘타임이팅(Time-eating)’으로 불리는 근무 시간 축소 관행도 만연해 있다. 전·현직 회계업계 종사자 200여 명의 증언과 설문을 통해 현장의 실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회계사들이 격무에 시달리는 현실을 두고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노동 문제가 아니라 ‘감사 품질’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요한 수준에 못 미치는 감사 시간 속에서 저가 수임 경쟁이 이어지면 결국 양질의 기업 회계 감사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금융당국이 감사 품질을 올리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 해법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감사 시간을 보장하고, 이에 걸맞은 감사 보수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최소 기준’이 ‘상한선’ 된 표준감사시간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표준감사시간’의 현실화가 꼽힌다. 표준감사시간은 감사 품질 유지를 위해 설정된 최소 기준이지만, 현장에서는 사실상 상한선처럼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감사 시간과 보수 모두 낮아지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표준감사시간제가 강행 규정에서 권고 규정으로 바뀌고 수임 경쟁이 심화되면서 감사 시간도 줄어드는 추세”라며 “회계사가 부담하는 사법 리스크는 커졌는데 부족한 시간으로 계약을 맺다 보니 결국 사람을 갈아넣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챗GPT

표준감사시간 산정 방식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는 업종, 기업 규모, 연결 자회사 수 등을 기준으로 산정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태 중앙대 회계학과 교수는 “표준감사시간을 3년마다 조정하고 있지만 과거 모형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현실과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지속적인 보완을 통해 체계를 전면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적정 감사 보수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감사 보수는 보통 ‘감사 투입 시간 × 시간당 단가’로 결정되는데, 저가 수임 경쟁 속에서 시간당 단가뿐 아니라 감사 시간 자체도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실제 필요한 감사 시간은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실제 근무 시간은 그대로인데 기록만 줄이는 이른바 ‘타임이팅(Time-eating)’ 관행도 만연하다.

전문가들은 감사 시간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구조에서는 적정한 감사 품질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정석우 고려대 회계학과 교수는 “감사 시간이 아니라 감사 품질을 기준으로 가격이 형성되는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도입 등 기술로 극복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게 회계사들의 공통된 평가다. 이준규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는 “업무가 특정 시즌에 몰리는 구조 속에서 AI를 도입했음에도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부담이 가중됐을 수 있다”며 “회계법인 입장에서도 바쁜 시기에 맞춰 인력을 유연하게 늘리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했다.

지난 1일 열린 ‘회계법인 준법감시인 간담회’에서 최운열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 모두발언 하고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제공

◇자정 노력에도 한계… AI 도입에도 부담 여전

한국공인회계사회는 감사 시즌 장시간 노동 문제 해소를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오는 5월까지 현장 실무자와 청년 회계사 의견을 수렴한 뒤, 이를 토대로 회계법인이 준수해야 할 ‘준법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관련 법령 개선 등 중장기 방안도 연내 제시한다는 방침이다.

황병찬 청년공인회계사회장은 “저가 수임과 근로 시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순환 구조”라며 “근로 시간이 제대로 반영되면 저가 수임 구조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타임이팅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사내 신고센터 활성화와 제재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본관 전경. /이호준 기자

다만 업계 자정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전문가들은 기업과 금융당국도 감사 품질 제고에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이 부담하는 감사 비용을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회계 부실이나 투자 손실 등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필수 투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는 “주주와 채권자, 감사위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며 “감사 보수와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 경우 ‘이 감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실 회계가 불거졌을 때 발생하는 손실이나 주가 폭락 등과 비교할 때 적정 감사 보수가 부담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감사 보수는 코스피·코스닥시장 상장사 자산 대비 0.01% 수준이다.

김범준 교수는 “회계 투명성은 회계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 당국과 기업, 투자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라며 “지금처럼 부담이 회계사에게만 집중된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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