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미래에 돈 거는 '예측시장'… 32조 베팅 전쟁의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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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끝까지 마칠 것인가." 지금 이 질문에 실제로 돈이 걸려 있다. 한국 정치도, 미국 금리도, 다음 전쟁의 시작일 등 베팅 가능한 미래의 목록은 끝이 없다. 주간 거래액만 2조 원을 넘기는 이 시장의 이름은 예측시장(prediction market)이다. 그리고 이 시장은 한때 FBI와 싸워 이겼다.

2024년 11월 13일 새벽, 요원들이 맨해튼 한 아파트의 문을 부수고 들이닥쳤다. 압수한 것은 총기도 마약도 아니었다. 스마트폰 한 대와 노트북뿐이었다. 아파트 주인은 스물여섯 살의 스타트업 CEO, 예측시장 플랫폼 폴리마켓(Polymarket)의 창업자 셰인 코플란(Shayne Coplan)이었다.
미국 정부는 자국 사용자의 불법 베팅을 방치했다는 혐의를 씌웠다. 코플란은 그날 오후 X(구 트위터)에 "New phone, who dis?(새 폰인데, 누구세요?)"라는 한 줄로 답했다. 2025년 7월, 미 법무부와 CFTC는 조사를 무혐의로 종결했다. 코플란은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 억만장자가 됐고, 폴리마켓은 기업가치 90억 달러(약 13조 원)의 공룡이 됐다. 도대체 어떤 플랫폼이기에 FBI를 이기고 억만장자를 만들어냈을까.
플랫폼 해부: 칼시와 폴리마켓은 무엇인가
이 시장을 양분하는 두 플랫폼이 있다. 칼시(Kalshi)와 폴리마켓(Polymarket)이다. 태생부터 다르다. 칼시는 2018년 MIT 출신의 타렉 맨수르와 루아나 로페스 라라가 만든 정통 파다. CFTC(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공식 승인을 받은 미국 최초의 합법 예측시장으로, 주식·선물거래소와 동일한 규제 테두리 안에서 운영된다.

사용자는 1센트에서 99센트 사이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Yes/No 계약을 사고판다. 가격이 곧 확률이다. 30센트짜리 Yes 계약은 시장이 그 사건을 30% 확률로 본다는 뜻이고, 실제로 일어나면 1달러로 정산되고 일어나지 않으면 0원이 된다. 새로운 정보가 나올 때마다 가격이 움직이며 확률이 실시간으로 갱신된다. 스포츠, 정치, 경제지표, 날씨까지 동시에 열려 있는 마켓이 3,500개를 넘는다.
폴리마켓은 결이 다르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뉴욕대를 중퇴한 스물두 살 코플란이 혼자 개발했다. 블록체인(폴리곤 네트워크) 위에서 돌아가며, 스테이블코인 USDC로 거래한다. 탈중앙화 스마트 계약이 모든 정산을 처리하기 때문에 특정 기관의 개입이 원천적으로 필요 없다. 미국 내 서비스가 2022년부터 3년간 금지됐을 때도 VPN으로 우회한 미국 사용자들이 떠나지 않았던 이유다. 폴리마켓은 2025년 하반기 CFTC 인가 거래소를 인수하며 마침내 미국 안에서도 합법 플랫폼이 됐다.
둘 다 같은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 실제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건 사람들의 집단 판단이 어떤 전문가 분석보다 정확하다는 것이다. 차이는 철학이다. 칼시가 제도권 안착을 택했다면, 폴리마켓은 암호화폐 생태계의 탈규제 감성을 유지하며 글로벌 사용자를 공략한다.
'미래를 사고팔다', 32조 원 가치
예측시장의 작동 원리는 단순하다. 특정 사건의 성사 여부에 돈을 거는 것이다. "트럼프가 6월 안에 전쟁을 끝낼 것인가?", "한국의 다음 대선 당선자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에 Yes/No 형태의 계약을 매매한다. 마치 주식처럼 가격이 실시간으로 변하며, 그 가격은 곧 대중이 판단하는 '사건 발생 확률'이 된다.

예측시장이 주류로 급부상한 결정적 계기는 2024년 미국 대선이었다. 전통적인 여론조사가 안갯속 형국을 헤맬 때, 폴리마켓은 시종일관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점쳤고 결과는 시장의 승리였다. 칼시는 뉴욕 시장 선거에서 주요 언론보다 수 시간 앞서 당선자를 적중시켜, 집단 베팅이 여론조사보다 정확한 신호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내 돈을 직접 거는 사람들의 판단이 설문조사보다 훨씬 냉철하고 정확하다는 '집단지성'의 위력이 입증된 것이다.
경제학자 하이에크가 주장했던 '분산된 가격 정보의 효율성'이 21세기 기술과 만나 현실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폴리마켓의 창업 동기 역시 하이에크의 이론에서 출발했다. 물론 거대 자본(고래)에 의한 시세 조종이나 지정학적 내부 정보 유출이라는 숙제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세쿼이아, 안드레센호로위츠, 파라다임은 이미 수십억 달러를 이 시장에 밀어 넣었다. 회의론보다 시장이 커지는데 굴지의 글로벌 VC(벤처캐피탈)는 베팅했다는 뜻이다.
칼시의 CEO 타렉 맨수르는 이를 두고 "주관적인 논쟁을 시장과 정확성으로 대체하는 혁명"이라 정의했다. 인기는 급상승 중이다. 칼시의 주간 거래량은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2024년 대비 1,000% 이상 폭증했다. 기업 가치 역시 수직 상승하여, 2026년 3월 코아투 매니지먼트가 주도한 라운드에서 220억 달러(약 32조 원)를 인정받았다. 폴리마켓 또한 200억 달러 밸류에이션의 투자 유치를 목전에 두고 있다.
최근 주간 거래량 기준으로는 폴리마켓 19억 달러, 칼시 18억 7,000만 달러로 사실상 동률 경쟁 중이다. 코인베이스, 로빈후드는 물론 나스닥과 CBOE까지 이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상태이며, 시장 분석가들은 예측시장 플랫폼들의 연간 수익이 2030년까지 1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본다.
정보와 범죄의 아슬아슬한 경계
급격한 성장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다. 핵심 논란은 '내부자 거래'다. 이스라엘에서는 예비역 군인과 민간인이 기밀 군사정보를 이용해 이란 공습 시점을 정확히 맞힌 뒤 15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가 보안 위반 혐의로 기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의 실각이나 미군의 군사 작전 시점을 신들린 듯 맞히는 트레이더들도 잇따라 등장했다. 이들 트레이더들을 두고 '트럼프 아들'이나, '트럼프 최측근' 아니냐는 얘기가 계속되고 있다. 구글의 연례 검색어 보고서 내용을 발표 전에 23건 중 22건이나 적중시킨 'AlphaRaccoon'의 사례는 통계적 우연을 넘어선 내부 정보 유출의 전형으로 꼽힌다. 이에 CFTC는 '내부자 거래법이 예측시장에도 엄격히 적용된다'며 공격적인 수사를 예고했으며, 애리조나주 등 여러 지방 정부는 이들을 '불법 도박 사업자'로 규정하며 20건이 넘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흥미로운 점은 두 거물의 행보가 엇갈린다는 것이다. 폴리마켓의 코플란은 내부자의 시장 참여를 오히려 권장하는 파격적 태도를 보인다. 내부자의 우위가 정보를 더 빨리 가격에 반영시켜 '시장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논리다. 규제의 흠결을 플랫폼의 강점으로 승화시킨 셈이다.
반면 칼시는 '철저한 제도권 안착' 노선을 걷는다. 정부 직원의 거래를 금지하고, 정치인이나 운동선수가 본인 관련 사안에 베팅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는 자정 조치를 발표했다. 칼시가 월스트리트와 손잡은 '신뢰의 데이터 플랫폼'을 지향한다면, 폴리마켓은 암호화폐 기반의 '자유로운 탈중앙 시장'을 고수한다.

예측시장의 열기가 국내에도 전해지고 있지만, 한국 사용자라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폴리마켓과 칼시는 한국에 별도의 법인을 두지 않으며, 국내법상 허가받지 않은 해외 플랫폼에서의 베팅은 불법 도박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다. 아직 국내에서 실제 처벌 사례가 공식 확인된 바는 없지만, '전례가 없다'는 것이 '합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상자산 커뮤니티 '변창호 코인사관학교'를 운영하는 변창호 씨는 "아직 제대로된 사례는 없지만 한국인이 베팅에 참여할 시 불법 도박으로 분류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한다"고 경고했다.
다만 참여와 활용은 다른 문제다. 칼시와 폴리마켓은 회원 가입 없이도 실시간 베팅 현황을 공개적으로 열람할 수 있다. 특정 정책의 통과 가능성, 기준금리 동결 여부, 지정학적 긴장의 고조 시점 등 주요 이슈에 대해 전 세계 트레이더들이 어디에 돈을 걸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직접 베팅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이 숫자들은 뉴스를 읽거나 투자 판단을 내릴 때 여론조사나 전문가 코멘트 못지않은 참고 지표가 된다. 가상자산 커뮤니티 변창호 씨는 "직접 베팅 참여는 하지 않더라도 실시간으로 베팅 현황은 볼 수 있기 때문에 투자나 뉴스에 대한 반응을 살펴 유용한 지표로 활용할 순 있다"고 조언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폴리마켓에는 '칼시가 폴리마켓을 이길 것인가'라는 마켓이 열려 있다. 두 회사가 서로의 승패에 돈을 거는 사람들 덕분에 함께 수익을 내는 구조다. 경쟁자의 몰락을 베팅하는 시장에서, 경쟁자와 나란히 돈을 버는 것. 예측시장이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장면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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