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자유’ 창단, 서구 연극 틀 혁파… 한국적 창작극 개척에 연출 인생 바쳐
“우리는 극장의 형식이 주는 구속을 거부하고 희곡이 주는 구속마저도 거부하려 했다. 자유로운 우리들이 모여서 일종의 워크숍을 시작하고 거기에서 우리들의 작품이, 우리들의 연극이 싹터오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난 2월 별세한 고(故) 김정옥(金正鈺·사진·1932~2026) 연출가는 자신이 창단한 극단 자유극장의 1978년 팸플릿에 이렇게 썼다. 이해랑연극상 심사위원회와 운영위원회는 서구 연극 전통과 구별되는 한국적 창작극의 길을 개척한 그를 올해 제36회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고인의 연극 활동, 연극계에 미친 영향과 공헌을 생각하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밝혔다. 이해랑연극상 특별상이 고인에게 헌정된 것은 2005년 제15회 특별상 수상자 강유정 연출가에 이어 두 번째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김정옥 연출가는 서울대 불문과를 나온 뒤 프랑스 소르본대에 유학, 문학과 영화를 공부했다. 1959년 귀국 후 이화여대 학생들을 지도해 화제를 모은 아리스토파네스의 그리스 희극 ‘리시스트라타’로 연극 연출을 시작했다. 1962년 유치진이 드라마센터를 열 때 개관 공연 ‘햄릿’에 이해랑과 함께 조연출로 참여했다. 1963년 극작가 이근삼 등과 극단 민중극장을 창단, 무거운 리얼리즘 일변도의 우리 연극계에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 ‘대머리 여가수’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대중적이고 경쾌한 희극과 다양한 형식 실험을 이어갔다.
1966년에는 프랑스 유학 시절 친분을 쌓은 무대 의상 디자이너 이병복과 함께 극단 자유를 창립했다. 그해 빠른 템포로 연극적 재미와 시적인 상징성을 살린 ‘따라지의 향연’(1966) 등을 무대에 올리며 박정자 등 당대 최고의 연기자들이 출연한 작품들을 통해 대표적 연극 연출가로 자리 잡았다. 극단 자유는 ‘무엇이 될고 하니’(1978) 등의 작품을 통해 배우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집단 창작 방식과 기존 연극의 틀을 혁파한 의상·음악·무대를 도입했다. 또 씻김굿, 판소리, 탈춤 등 한국적 스타일을 접목, 이후 ‘피의 결혼’(1984), ‘바람은 불어도 꽃은 피네’(1984)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한국적 창작극의 길을 개척했다. 김정옥과 극단 자유의 연극은 프랑스, 스페인, 일본, 튀니지 등 해외 공연으로 확장하며 우리 연극을 세계에 알렸다. 고인은 60여 년 동안 국내외 무대에서 연극 200여 편을 연출했다.
그는 저서 ‘연극적 창조의 길’(1997)에서 “나는 연극을 시작한 1960년대엔 리얼리즘과 연극적 재미, 시적인 연극성의 만남을 통해서, 또 70년대에 들어서는 동양과 서양 연극의 충돌을 통해서 이뤄지는 ‘제3의 연극’을 생각했다”고 밝혔다.
우리 연극사 연구의 권위자인 유민영 단국대 명예교수는 김정옥의 연극에 대해 “그는 한국 연극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우리 전통 예능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거기에서 연극 문법을 찾아내 서양 연극 흉내 내기가 아닌 우리 나름의 연극을 창조해내는 어렵고 기나긴 여정에 올랐던 것”이라고 평했다.
1995년 아시아인 최초로 유네스코 국제극예술협회(ITI) 회장에 선출된 뒤 세 차례 연임했고, 명예회장에 추대됐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2000), 대한민국예술원 회장(2011)을 지냈다.
‘사상계’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었으며, 여러 편의 영화 관련 논문을 발표한 영화학 연구자였다. 푸근한 한국인의 얼굴을 담은 고미술품을 수집해 경기도 광주에 ‘얼굴 박물관’을 열기도 했다.
2002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최고 문화예술 공로 훈장인 코망되르를 수훈했다. 이후 지휘자 정명훈과 성악가 조수미도 이 훈장을 받았다. 금관문화훈장, 예술원상, 일본 닛케이 아시아상(문화 부문)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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