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무비홀릭]월경전증후군 여자, 공황장애 남자를 만나다


스웨덴 영화 ‘렛 미 인’(2008년)과 박찬욱 감독의 ‘박쥐’(2009년)를 성장물로 변주한 이 영화는 흡혈귀 소수자와 인간 소수자의 조우를 통해 소수의 소수성을 극적으로 드러내요. “언제부터 죽고 싶었어?”(소녀) “태어나면서부터.”(소년)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소녀) “죽음 아닌 고통을 두려워하겠지. 어쩌면 외로움을.”(소년) 제목과는 딴판으로 시적인 대사죠? 제법 외로운 자와 아주 외로운 자가 서로의 존재적 고독을 치유해 가는 과정이 정겨워요.
[2] 사색적이다 못해 명상적인 영화 ‘여행과 나날’을 지난해 내놓은 일본 미야케 쇼 감독의 2024년 작 ‘새벽의 모든’에선 삶이 짜증나는 여자가 삶이 두려운 남자를 만나요. 아담과 이브처럼 찰떡궁합이죠? ‘후지사와’란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토네이도처럼 몰아쳐 오는 월경전증후군(PMS) 탓에 회사생활을 못 할 정도예요. 복사기에 종이가 끼여 난감해하는 직장 상사를 보고 짜증이 캄차카반도 화산처럼 폭발한 그녀는 상사에게 폭언을 쏟아 붓고는 도망치듯 퇴사하죠. 이후 코딱지만 한 과학교구회사에 재취업한 그녀는 또 짜증이 샘솟아요. 옆자리에 앉은 소심한 ‘야마조에’란 남자가 시도 때도 없이 탄산수를 마셔대면서 신경을 긁으니까요. 남자를 ‘잡도리’한 여자는 뒤늦게 알게 돼요. 불안장애와 공황발작에 시달리는 야마조에는 심적 안정을 위해 탄산수를 강박적으로 마셔 왔음을. 여자와 남자는 이윽고 공통적으로 마음의 해방을 느끼는 순간을 발견해요. 바로 밤하늘 별자리를 볼 때죠. 여자와 남자는 “우린 비록 지금은 불안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저 별자리처럼 어딘가 있을 분명한 목표를 향해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며 서로를 위로하죠. 그야말로 ‘별의 순간’이에요!
[3] 소외된 자과 더욱 소외된 자, 불안한 자와 가일층 불안한 자의 만남처럼 가난한 사람과 더 가난한 사람의 만남도 아름다울까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2019년)에서 주장했듯 빈자와 극빈자 사이에선 치유와 연대 대신 지옥문이 열릴 수도 있다는 게 적잖은 영화들의 시각이에요.
한국 독립영화 ‘허들’(2025년)의 주인공은 육상 허들 유망주인 여고생 ‘서연’(최예빈). 홀아버지의 트럭 운전으로 근근이 먹고 살지만 화목한 부녀지간이죠. 어느 날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딸은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졸지에 아버지의 보호자가 돼요. 빚에 쪼들리다 못해 먹을 쌀마저 떨어지죠. 그래도 죽을힘을 다해 허들을 넘으며 실업팀 입단을 목전에 둔 서연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요. 꿈꾸던 군청 육상팀이 서연보다 기록이 떨어지는 동료 ‘민정’을 뽑기로 한 거죠. 왜냐고요? 부모는 없고 할머니는 치매이고 남동생은 자폐증이 있는 생활보호대상자 민정이를 뽑는 것이 군청 홍보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죽마고우인 서연과 민정은 울면서 서로에게 소리쳐요. “네가 나보다 잘해서가 아니잖아. 네가 나보다 불쌍해서잖아.”(서연) “나도 알아. 내 실력으론 너를 이길 수 없는데, 내가 이겼대. 내 가난이 너를 이겼대.”(민정) “우리끼리 이러면 안 되잖아.”(서연)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가난한 게 고마워.”(민정) 서연이 뛰어넘는 허들은 소녀가장이 힘겹게 뛰어넘어도 또 한 발 앞에 기다리는 높다랗고 끝 모를 인생의 장벽을 상징하겠죠.
[4] 어때요. 홍매화 피어나는 새봄에 딱 어울리는 우울한 얘기죠? 이럴 땐 독일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한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년)를 보아야 해요. 죄스러운 과거를 가진 남자 ‘히라야마’(야쿠쇼 고지)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코스를 돌며 똑같은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행위를 마치 의식(儀式)처럼 반복하면서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천형을 자처하는 중이에요. 히라야마는 어느 날 자신만큼이나 쓸쓸히 살아온 한 이혼남을 만나요. 히라야마와 남자는 서로의 그림자를 겹쳐서 보는 아이 같은 장난을 치면서 선문답처럼 말하죠. “그림자와 그림자가 겹쳐지면 더 어두워질까요?” 영화 속 이 대사는 마치 “구슬픈 인생과 처연한 인생이 만나면 더 절망적일까요?”라는 절규처럼 메아리쳐 들려오죠. 영화는 답해줘요. 그건 아니라고요. 어둠은 분명 빛의 부재를 의미하지만, 어둠과 어둠이 만날 땐 어쩜 빛이 만들어질지도 모르니까요.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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