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이 선택한 ‘은둔과 고독의 화가’… 그 예술 세계 한 자리에
아연판·목판화 하다 붓 들어 유화에 매진
‘청산록수’ 같은 탈속·소박·단출 화풍 눈길
BTS RM, ‘대산루’ 구매 한 뒤 SNS 올려
세계인들 작가·작품들 찾아보며 재조명
서울미술관, 연대기 구성 150여점 전시
어느 겨울날 갤러리에 들어섰다가 그는 깜짝 놀랐다. 관람객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현대 판화사의 지평을 열고 고요와 멈춤을 시각화해온 김상유 작가의 13번째 개인전이 아닌가. 관람객은 오직 한 사람, 그뿐이었다. “참 외롭고 쓸쓸한 전시였습니다.”

다시 20년의 시간이 흘러 2022년, 오랫동안 ‘은둔의 화가’로만 알려져 왔던 작가 김상유(1926∼2002)가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갑자기 화제의 인물이 됐다. 이유를 살펴보니, 세계적 그룹 BTS의 RM(김남준)이 김 작가의 1990년작 ‘대산루’를 한 점 구매한 뒤 인스타그램에 작품 사진과 함께 작가 이름을 해시태그로 올렸기 때문이었다. 세계인들이 김상유와 그의 작품 ‘대산루’를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단아한 기와지붕 아래 두 개의 전통적 복층 건물, 넉넉한 여백 속에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정자, 그 정자에 앉아서 명상이나 선을 하는 듯한 사람, 들리는 듯한 귓가의 새 소리와 얼굴을 스치는 바람 소리….

안진우 서울미술관 이사장은 “이번 전시는 미술관 설립자인 안 회장의 외골수 같은 김상유 사랑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회장은 가끔 ‘내가 김상유의 인생을 예술 세계를 통째로 샀다’고 말씀하셨다”며 “처음에는 김 작가를 워낙 좋아해 마니아적 발언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이번 전시 준비를 하면서 전체 작품을 걸어놓고 보니까 김상유라는 예술가의 숭고한 정신성을 미술 애호가인 자신이 보존해 줘야겠다는 접근이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미술관 1층 800평 규모 전시장에 모두 여섯 개 장으로 구성해 김 작가의 작품 150여점을 선보인다. 초기 동판화의 비정형 실험부터 한국적 정서와 전통적 미감이 자리한 목판화, 무위자연을 구현한 유화로 이어지는 김 작가의 반세기 작업 세계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눠 연대기적으로 조망한다.
전시에는 작가의 작품 외에도 작가의 유품, 제작 도구, 생전 신문 기사 등을 입체적으로 준비됐다. 아울러 김용원, 박주환, 이우복 등 작가의 예술 세계를 지탱했던 1세대 후견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예술가와 후원자의 신뢰가 한국 미술사에 미친 영향도 함께 조명한다.
1926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고 평양에서 자랐다가 한국전쟁 때 월남한 그는 1970년 관을 모티브로 인간 삶과 죽음의 모습을 비범하게 고찰한 작품 ‘막혀버린 출구’로 제1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국수 기계를 개조해 프레스를 만들고, 동판 대신 아연판을 사용했다. 공장에서 산을 구하는 등 스스로 판화 도구를 마련해 작업했다. 하지만 동판의 부식 과정에서 발생한 가스는 그의 시력을 조금씩 앗아갔다. 시력이 흐려졌지만, 예술에 대한 그의 집념까지 무너뜨리진 못했다. 그는 금속 대신 나무로 향했고, 1970년대 중반부터 목판화 작업을 시작했다. 직접 나무를 잘라 목판을 만들고 먹을 바른 뒤 한지를 놓고 놋쇠 숟가락으로 일일이 문질러 가며 한국적 이미지를 새겼다.
하지만 제대로 된 보호구도 없이 화학 물질을 사용한 작업을 이어가고 노동하듯 판화를 찍어내면서 시력 저하에 어깨마저 악화했다. 그는 칼을 내려놓고 붓을 들었다. 빛과 색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유화는 서양의 물감인데, 기름기를 제거하면 좀 더 담백한 동양적, 한국적 미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판화처럼 검은 윤곽선을 그리고 그 안에 색을 채우는 방식으로 작업했는데, 면천에 그림을 그리고, 닦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유화이지만 물감의 기름을 닦아내 색만 남기고 물성을 줄여 수채화나 동양화같이 표현하려 했다.

1990년 제2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며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은 그의 작품들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더욱 소박해지고 단출해졌다. 작품 ‘청산록수’의 명상하는 사람은 이제 머리카락도 없고, 속세를 상징하는 옷도 사라진다. 누각도 사라지면서 산과 태양 아래 사람만이 남았다. 2002년, 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에 몸에 뿌려지며 그는 자연으로 돌아갔다.
김상유의 차녀인 김삼봉 김상유문화재단 이사장은 “사람들은 아버지를 은둔과 고독의 작가라고 불렀지만, 그는 혼자의 즐거움을 알고, 여행의 맛을 알며, 자기 수행을 위해 깊은 명상을 즐겼던 작가”라며 “전시 제목처럼, 쉽게 닳지 않는 무해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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