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비료, 신흥산업국, 지구적 스태그플레이션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2026. 4. 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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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인플레이션은 미국이란 통화 시스템서
강력한 통치구조가 작동해 끝이 났다
브레이크를 걸 레버가 있었던 셈이다
하나 지금 그 레버는 없다
글로벌 곡물 공급망은 세계적 사회 불안에 약하며
충격은 예상보다 빨리 온다
회색 코뿔소라고 하던가
뻔히 다가오고 있지만
막을 레버가 마땅찮은 위협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레버가 있을까

스태그플레이션 논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자, 누리엘 루비니는 오래된 경고를 반복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밀어올리는 동시에 성장을 짓누르고, 1970년대가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애덤 투즈는 반박했다. 1970년대와 지금은 다르다. 당시 오일쇼크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직결된 것은 강력한 노조가 유가 상승분을 임금 인상으로 보전받았기 때문으로,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이 앞뒤로 맞물리면서 지속적인 악순환 고리를 만들었던 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조가 약화되고 노동시장이 유연화되어 이 악순환 고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모두 중요한 이야기지만, 두 사람 모두 같은 지점을 놓치고 있다. 투즈의 논점은 서방 노동시장을 전제로 한다. 미국 디트로이트가 더 이상 스태그플레이션의 진원지가 아니라는 것은 맞다. 그러나 생산이 지구화된 지 30년이 지났고, 공산품과 제조업의 장소는 전 세계로 흩어졌다.

서방 소비자가 사는 상품을 만드는 노동자의 상당수는 이제 방글라데시에 있고, 베트남에 있고, 에티오피아에 있다.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생산을 분산시켰으니, 그 분산과 함께 임금-물가 악순환 고리의 잠재적 전달 경로도 이전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들의 논의에는 지구적 가치사슬에 해당하는 지구적 차원의 사회 안정에 대한 시각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지구적 가치사슬은 신흥산업국들의 사회 불안에 대단히 취약하다. 이들 지역 노동자들은 물가가 올라도 임금 인상을 요구할 협상력이 없다. GVC는 어디든 다른 곳으로 생산기지를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투즈의 논리라면 어쩌면 “안심할 수 있는” 요인이 될지 모르지만, 임금으로 방어하지 못한 충격은 사회 불안의 형태로 폭발한다.

사회 불안은 공장을 멈추고, 항만을 마비시키고, 공급망을 교란한다. 그 교란은 GVC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시장 지배력이 강한 사업체들은 이 틈에 생산량을 줄이고 가격을 올린다. 지구적 스태그플레이션은 이렇게 나타날 수 있다. 1970년대와의 묘한 평행이다. 구조는 유사하되 ‘지리학’이 들어온 것이다.

이란 전쟁으로 석유 문제에 온 관심이 쏠려 있지만, 신흥산업국의 사회 불안을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비료 문제다. 호르무즈 해협은 석유만 통과하는 물길이 아니다.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최대 질소비료 수출국 중 하나이며, 이란도 주요 생산국이다. 중동 특히 호르무즈 인근 국가들은 글로벌 요소(urea) 수출의 약 49%, 암모니아 수출의 약 30%를 담당한다. 봉쇄는 이 비료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나가는 경로를 동시에 차단했다.

하필 지금이다. 북반구의 봄 파종기는 3월에서 5월 사이다. 씨앗을 뿌리기 전에 비료가 토양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시기는 상당 부분 이미 놓친 듯하며, 올해 가을과 겨울의 수확량 감소는 이미 결정된 미래라고 보아야 한다.

비료, 전략비축도 없고 대안도 없어

대체 공급처도 마땅치 않다. 러시아는 제재 대상이고, 중국은 2021년에도 그랬듯 자국 농업 보호를 위해 수출을 언제든 제한할 수 있다. 비료 공급망의 지리적 집중도는 원유에 버금가지만, 원유와 달리 비료는 전략 비축 개념이 거의 없고 대체 에너지처럼 단기간에 전환할 대안도 없다.

이 충격이 가장 먼저, 가장 깊게 닿는 곳은 엥겔계수가 높은 나라들이다. 소득의 10~15%를 식비에 쓰는 가계와 50~70%를 쓰는 가계는 같은 가격 충격 앞에서 전혀 다른 현실을 산다. 독일 가정이 식료품 가격 30% 상승을 불편함 정도로 느끼는 동안, 나이지리아 노동자 가정에게는 생존의 위협이다. 즉각 사회적 긴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010~2011년 식량 가격 급등은 아랍의 봄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였고, 2007~2008년 식량 위기 때는 아이티, 카메룬, 모잠비크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게다가 2022년 이후 달러 강세와 부채 위기가 누적되면서 재정 여력이 바닥난 많은 나라들은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 아래 식량 보조금부터 삭감한 경우가 많았다.

이 나라들이 GVC에서 갖는 위치를 보아야 한다. 방글라데시는 글로벌 봉제 수출의 핵심이고, 에티오피아와 캄보디아는 의류·신발 공급망의 새로운 거점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팜유와 전자 부품을 공급하며, 인도는 전 세계 복제약의 주요 생산국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 없이는 배터리 산업이 멈춘다. 이 나라들에서 사회 불안이 고조될 때, 그것은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식량 사태가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터진다면 공급망 다변화로 흡수할 길도 여의치 않게 된다.

여기에 시장 구조의 문제가 겹친다. 지구적 곡물 거래의 70% 이상은 카길,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 번기, 루이드레퓌스 등 ABCD 4개사가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선물시장에서 이미 포지션을 정리하고 농민들의 저장 물량을 대량 매입하며 트레이딩 마진을 확대하고 있다. 헤지펀드들도 곡물 시장에서 대규모 순매수 포지션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공급 충격을 빌미로 실제 비용 상승분을 훨씬 넘게 가격이 오르는 패턴은 2022년 에너지 위기 때에도 나타났고, 이번에도 가능성이 높다. 비료 선물시장도 곡물이나 원유에 비해 유동성이 낮아 가격 변동성이 더 극단적으로 나타나며, 대형 금융기관은 그 변동성에서 수익을 낸다. 이 불안정성을 신흥산업국 정부와 국민들은 꼼짝없이 감내해야 한다.

봉쇄가 풀려도 비료 시장의 교란은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 공급 불안을 경험한 수입국들은 이후 필요 이상의 재고를 쌓으려 할 것이며, 이로 인해 가격이 계속 고공행진할 수 있다. 2021년 중국의 요소 수출 규제 이후 비료 가격이 정상화되는 데에도 거의 2년이 걸린 바 있다. 둘째, 전쟁 중 가동을 멈춘 중동의 비료 생산 설비가 다시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숙련 인력이 이탈하고 유지·보수가 밀린 설비는 하루아침에 돌아오지 않는다.

지리학 들어오며 통치구조 달라져

셋째, 신흥산업국 소농들의 자금 구조 문제다. 이들 대부분은 한 철 농사자금을 빌려 비료를 사지만, 가격이 두 배가 되면 절반밖에 살 수 없고, 수확량이 크게 줄어드는 악순환이 다음해로 이어진다. 올해 파종기를 놓쳤는데 내년 파종기마저 비료 가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수확량 감소는 2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 원유뿐만 아니라 식량 또한 지구적 스태그플레이션을 만드는 고리가 될 수 있다.

이 고리를 풀 수 있을까? 문제는 여기에도 있다.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은 결국 미국 연준의 초강수 고금리 정책으로 끝이 났다. 미국이라는 하나의 통화 시스템 안에서 강력한 통치 구조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를 걸 레버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 작동하는 메커니즘에는 그 레버가 없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달러 표시 부채를 진 개도국들의 상환 부담이 커지며, 수입 물가가 오르면서 충격은 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 IMF의 긴축 처방은 식량 보조금을 우선 삭감하도록 되어 있으며, 신흥산업국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린다고 비료가 다시 들어오지도 않는다.

루비니와 투즈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논하면서 모두 서방 경제를 단위로 사고하며, 물가상승률, 실업률, 금리와 같은 거시경제 균형의 언어로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공급망이 지구화된 세계에서 식량 등의 공급 충격으로 발생하는 신흥산업국 사회 갈등을 통화정책으로 다스릴 방법은 없다. ‘지리학’이 들어오면서 통치 구조의 형국 또한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올해 가을, 수확량이 줄어든 곡물이 시장에 나올 때 그 가격 상승은 서방의 소비자물가지수에도 반영되겠지만, 그 전에 먼저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시장과 이집트 카이로의 골목과 파키스탄 카라치의 판잣집에서 배고픈 사람들이 분노하고, 그 여파가 공장 가동률 저하, 선적 지연, 납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은 전 세계적인 사회 불안에 취약하며, 그 충격은 예상보다 빨리 나타난다. 금융시장은 이것을 알고 있을 것이며, 변동하는 선물시장의 구조가 이를 암시한다. ‘회색 코뿔소’라고 하던가. 뻔히 다가오고 있지만 막을 레버가 마땅치 않은 위협.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레버가 있을까.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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