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문화 강국 이란을 다시 보자

경기일보 2026. 4. 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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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창 음악평론가·방송인
황우창 음악평론가·방송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는 이란을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아무리 중립의 위치에서 바라보려고 해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일각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온전히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핵 개발이나 테러 지원, 그리고 인권 문제에 관해 이란은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을 수밖에 없지만, 이란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와는 국가 관계가 좋았던 편에 속한다. 현대사에서는 1970년대부터 일궈 나갔던 경제 유대가 그 증거이며, 서울에 있는 테헤란로와 테헤란에 있는 서울로가 두 나라의 관계를 증명한다. 2007년에는 우리나라 드라마 ‘대장금’이 90퍼센트를 훌쩍 넘는 시청률을 찍어버린 나라가 이란이다. 이처럼 이란 역시 오랫동안 우리에게 호감을 보이는 나라 중 하나다. 이란의 예술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문득 화려한 옛 부귀영화를 누렸던 이란이라는 나라가 현대사에서 이렇게 커다란 굴곡을 겪고 있는지 안타깝다. 그 비슷한 감정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옛 앗시리아 왕국의 유물을 감상할 때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쩌다가 이란은 이 지경이 되었을까.

현대사 속 이란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나라였다. 팔레비 왕조 시절의 마지막 영화였다고나 할까. 당시 이란은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 사이에서도 파격적인 개방을 선도했다. 호메이니 혁명은 말이 종교 혁명이지, 사실상 미국에 의존하는 왕조에 대항했던 민중 봉기나 다름없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게 종교를 앞세운 독재의 시작이자 국가 전체가 암흑기로 들어가는 시작이었음은 이란 국민도 몰랐을 것이다. 이어 벌어진 이라크와의 전쟁은 여기에 불을 붙인 격인데, 지금의 사정은 이란이라는 나라가 자초한 선택의 실패가 극단으로 다다른 형국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왜 이란이 이 시행착오를 연속해서 선택했는지 그 이면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자존심을 들여다본다면, 우리가 이란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란은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는 독특한 나라이자, 아랍어와는 상당히 다른 페르시아어를 사용한다. 여기에 문화와 예술까지 살펴보면 이란은 차원이 다른 역사와 깊이를 갖고 있는 국가임을 알 수 있다. 이븐 바투타와 루미를 배출한 역사가 있고, 아름다운 음악 전통을 갖고 있는 이란에서는 오랫동안 궁정 음악이 사랑받고 있었다. 전통 음악 중에는 ‘마후르(Mahour)’와 ‘타스니프(Tasnif)’처럼 서양 음악의 기원과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준 양식도 있고, 이란에서 좀 더 영역을 확장하면 옛 페르시아 제국부터 내려오던 ‘다스트가(Dastgah)'라는 독특한 양식도 있다.

이란은 여타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음악과 예술에 대해 조금 더 자유로움을 부여했고, 전통에 보다 자유로움을 부여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예술의 시계가 공식적으로는 1979년 이후 멈춰버렸지만, 이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이란은 훨씬 더 개방돼 있고 불법 유통이긴 하지만 실제로 미국 대중문화 역시 편하게 즐기는 편이라고 한다. 검열이나 심의 위원회가 있었던 우리나라 시대처럼,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들을 사람들은 다 듣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란 사람들은 결코 소비적인 서구 문화를 쫓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가운데 자신들의 전통과 결합한 새로운 형식이나 시대 음악을 추구하는 중이다. 벌써 오래된 이야기지만, 2000년도에 공식적으로 출범한 이란의 한 레코드사 사장이 기억났다. 세계 전통 음악의 특성을 인류학과 음악학으로 풀어내던 그 지인의 현명함에 감탄하면서 몇 시간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곳이 처용 문화제가 한참 열리던 울산에서였는데, 음악은 일상의 패턴을 가장 잘 반영하는 예술의 형태라고 주장하던 그 친구가 그립다. 전쟁이 끝나도 이란 금수 조치가 해제되어야 할 것이고, 이란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 친구를 다시 보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내일이라도 당장 미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변덕을 부릴지도 모르는 판국이기에 더욱 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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