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의대 나와서 의사만 하란 법 있나요”...더 넓은 세상 향하는 의대생들

최원석 기자(choi.wonseok@mk.co.kr), 김송현 기자(kim.songhyun@mk.co.kr) 2026. 4. 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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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대 창업동아리 ‘엠디위너스’ 인터뷰]
AI·의정갈등이 바꾼 의대 풍경
의료AI 발전 지켜본 의대생들
임상의사 아닌 의사창업 도전
올 서울의대 신입생 135명 중
35명이 가입하며 최대 동아리
서울대 의대 창업동아리 ‘엠디위너스’의 조승권 씨(회장·본과 4학년), 정성 씨(예과 2학년), 정윤서 씨(예과 2학년), 고나현 씨(본과 2학년·왼쪽부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I시대에 대체불가능한 의사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문하고 고민하는 당찬 청춘들이다. [김호영기자]
“요즘 같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의대 왔다고 의사만 하란 법 있나요? 인류의 삶을 바꿀 혁신창업을 할 수도 있죠.”

국내 최초 의대 창업 동아리 서울대 의대 ‘엠디위너스(MDWinners)’는 요즘 신바람이 났다. 수십 년 간 1위를 지킨 합창반을 제치고 서울대 의대 최대 동아리가 됐기 때문이다. 현재 재학생 회원만 100여 명, 올해 서울대 의대 신입생 135명 중에서는 35명이 가입했다.

어른들이 ‘국내 최고 인재들이 의대로만 쏠린다’며 혀를 끌끌 차는 사이, 젊은이들은 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고무적인 것은 이런 트렌드가 10년 전인 ‘알파고 쇼크’ 때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2007년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가 동아리를 설립할 때만 해도, 의사 창업은 생소했고 심지어 금기시되는 일이었다. 김 교수는 “당시는 의료가 인술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어서, 창업이 아닌 ‘경제경영동아리’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눈치가 보였다”고 회고했다.

오랜 기간 한 자릿수에 머물렀던 회원 수는 알파고발 인공지능(AI) 붐이 일어난 직후부터 두 자릿수가 됐다. 의정갈등 국면에서 또 한 번 점프했고, 이번에는 서울대 의대 최대 동아리까지 올랐다. 올해 신입회원들의 가입 원서에는 “AI, 대체불가능, 넓은 세상, 도전” 같은 키워드가 많았다. 의대생들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해 동아리에 가입한 정성(예과 2학년) 씨는 “AI가 의료에 들어오는 건 분명한 흐름이기 때문에, 대체불가능한 의사가 되려면 AI를 이해하고 모델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가입했다”고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AI를 접하고 생각을 바꾼 학생들도 많았다. 2022년부터 동아리에서 활동한 고나현(본과 2학년) 씨는 “입학할 때만 해도 의사라고 하면 길이 하나라고만 생각했는데, 대학 생활을 하면서 챗GPT를 사용하고 여러 경험을 해보면서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지원 동기를 들려줬다.

국내 1호 의사과학자인 김 교수는 “국내 최고 수재들이 의대에 모이는데, 이들이 전부 임상 의사만 된다면 재능을 제대로 못 살리는 것이고 결국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며 “오히려 의학의 본질에 집중한다면 의사뿐 아니라 더 다양한 진로로 뻗어나갈 수 있다. 제자들에게 이렇게 남다른 생각을 심어주고 싶다”고 했다.

“더 큰 세상 있다, 그 분야 최고 만나고 오라”
“대체불가능한 의 꿈꾸죠” 그 스승에 그 제자
서울대 의대 창업동아리 ‘엠디위너스’는 2007년 김주한 교수(오른쪽)가 만들었다. 국내 의사과학자 1호인 김 교수는 창업을 금기시하던 시절부터 제자들에게 ‘남다른 생각’을 심어주는 데 힘썼다. [김호영기자]
실제로 젊은층 사이에서는 의대를 졸업한 뒤 대학에 남아 교수가 되거나 개원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의료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면서 새로운 의사 상을 그리는 의대생들이 많아졌다.

엠디위너스 회장인 조승권(본과 4학년) 씨는 “입학 전에는 명의라고 하면 진료를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AI가 의사보다 잘 보는 진료과들도 나오고 있다”며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 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가 찾은 해답은 연구였다. “의사는 결국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는 사람”이라며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만들어서 다시 의료 현장에 적용하는 게 진짜 의사의 역할인 것 같다”는 지론을 폈다.

조 씨는 지난해 휴학 기간 수면식품 스타트업에서 잠깐 일하면서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수면식품 개발 과정과 의학적 원리가 궁금해서 들어갔지만, 정작 회사는 제품 개발보다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의사가 직접 연구하고 창업한다면 훨씬 핵심 경쟁력이 있는 회사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휴학 기간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을 한 고나현(본과 2학년) 씨는 “학교를 잠깐 떠나며 바깥 세상을 경험한 게 진로 고민에 큰 영향을 줬다”고 귀띔했다. 그는 학교에서 배운 의학 지식을 활용해 보험사와 제약사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복학 후 본과 공부를 하면서도 금융과 경제에 관한 공부를 이어 나가는 중이다. 고 씨는 “왜 의사가 아닌 다른 길을 꿈꾸는지 항상 자문하곤 한다”면서도 “지금은 배운 걸 바탕으로 최대한 다양하게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AI 열풍 이후에는 처음부터 다양한 진로를 염두에 두고 의대를 입학하는 학생도 생겼다. 올해 동아리에 가입한 정윤서(예과 2학년) 씨는 “원래 생명을 좋아했는데, 고등학생 때는 정말 연구가 내 성격에 맞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며 “의대가 오히려 길이 많다고 생각해 진학했다”고 했다. 그는 입학 이후 의학뿐 아니라 코딩 등 AI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의사 창업은 의학과 산업의 최전선에 서는 일”이라고 생각해 고민없이 창업 동아리를 택했다.

의정갈등 이후 동아리 가입이 늘었다는 건, 원래도 의대생들이 교육 방식에 대한 답답함과 AI에 대한 불안을 느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근미래에 AI가 의사를 대체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올해 동아리에 들어온 정성(예과 2학년) 씨는 ‘대체불가능한 의사’에 대한 고민을 하며 휴학하는 동안 서울대병원 융합기술원에서 AI 아키텍처를 개발하고 연구했다. 그는 “어차피 의사를 할 거라면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며 “의학과 공학을 이어 새로운 걸 만들고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20년 가까이 동아리를 지도해 온 김주한 교수는 인터뷰하는 학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김 교수는 “원래 의료는 신기술을 가장 빨리 받아들이는 분야”라며 “AI가 가져온 학생들의 생각 변화는 자연스럽고도 매우 장려할 일”이라고 칭찬했다. 의대에 훌륭한 학생이 모일 수록 선생이 시키는 일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세상의 끝’을 보고 오라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세상의 끝’이란 그 분야의 최고 성취를 이뤄낸 곳이다. 김 교수 역시 MIT와 하버드 의대를 비롯한 보스턴에서 일하면서 ‘끝장’을 보고 온 바 있다.

김 교수는 “많은 의료 지식과 기술이 보스턴에서 만들어졌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세미나를 하고 함께 식사한다”며 “새로운 도전은 외롭고 불안하기 때문에 그런 걸 직접 봐야 오래토록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국내 1호 의사과학자로 30년 넘게 묵묵히 의료 AI를 연구해온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다.

올해 서울대 의대 신입생 135명중 30명이 창업동아리 ‘MDwinners’에 가입했다. 이들의 가입 원서에는 “AI, 대체불가능, 넓은 세상, 도전” 같은 키워드가 많았다. 지도교수인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가 학생들에게 20년 전 동아리 설립 일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김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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