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청년이 마주한 ‘지역 소멸’ [왜냐면]


박명관 | 영화 평론가
영화 ‘레이디 버드’는 고향인 미국 새크라멘토를 지루하고 보수적인 곳으로 규정하고, 문화와 기회가 넘실대는 뉴욕으로 비상하려는 사춘기 소녀 크리스틴의 성장담을 담아낸다. 그러나 2026년 대한민국 지역 도시의 청년들에게 이 이야기는 더 이상 성장의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을 건 탈출기에 가깝다.
경남 창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의 문턱에 선 필자에게 영화 속 새크라멘토는 창원이었고, 뉴욕은 서울이었다. 다만 영화와 현실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크리스틴의 이동이 ‘선택’이었다면, 지역 청년들의 이동은 이미 붕괴가 시작된 지역 생태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이주’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 차이는 낭만이 아닌 수치로, 감상이 아닌 통계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교육부의 ‘2024~2026 대학 기본역량 진단 및 신입생 충원 현황’에 따르면, 비수도권 다수 대학이 정원 미달 상태를 지속적으로 겪고 있으며, 특히 경남·경북 지역은 신입생 충원율 하락 폭이 전국 평균보다 크게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일부 대학의 경영 실패가 아니라, 지역 교육 기반 자체가 붕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통계청의 ‘장래 인구 특별추계’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030년 이후 경남을 포함한 다수 지역 광역시·도의 학령인구는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학생이 줄어서 대학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 사라지며 지역이 늙어가는 악순환의 구조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다. 지역의 지적 자본을 생산하고, 소비를 순환시키며, 문화의 온도를 유지하는 마지막 보루다. 대학이 무너진다는 것은 창원이라는 도시가 더 이상 청년의 미래를 품지 못한다는 뜻이다. 영화 속 새크라멘토에는 공동체의 온기와 기억이 남아 있었지만, 한국의 지역 도시는 사람이 떠난 자리를 관리하기 위해 유지되는 행정적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역 소멸의 징후는 교육 통계보다 양육의 일상에서 먼저 체감된다. 창원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대화에는 늘 비슷한 정서가 흐른다. 의료 인프라는 부족하고, 교육 선택지는 제한적이며, 문화적 경험의 격차는 설명조차 필요 없을 만큼 명확하다. 부모들은 누가 묻지 않아도 스스로를 책망한다. “우리가 이 도시에 남아 있는 것이 아이에게 불리한 선택은 아닐까.”
서울 강남의 학원가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시대에, 지역 교육은 늘 한 박자 늦다.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이른바 ‘대치동 유학’은 이제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지역에서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점점 거주지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미래 자산을 담보로 한 불안한 선택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감정의 누적이 결국 가족 단위의 이동을 부추긴다.
대한민국은 지금 서울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자원을 흡수당하고 있다. 경제, 정치, 문화, 교육의 중심이 수도권에 고착되면서 지역은 소외를 넘어 소멸의 단계로 진입했다.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을 말해왔지만, 토목 중심의 개발과 단기 보조금 정책만으로는 청년의 삶을 붙잡을 수 없었다. 청년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기회가 축적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파격이다. 지역 거점 대학에 대한 실질적 투자, 교육의 질적 상향 평준화, 지역에서도 수도권과 동등한 삶의 경로를 설계할 수 있다는 구조적 확신이다. ‘남아 달라’고 호소할 게 아니라, ‘남을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영화 마지막, 뉴욕에 도착한 크리스틴은 비로소 고향의 가치를 깨닫는다. 떠나온 뒤에야 고향은 이름을 되찾는다. 그러나 창원을 떠나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그런 회귀는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훗날 돌아보았을 때, 그곳에 대학도, 친구도, 아이를 기를 최소한의 안전망도 남아 있지 않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고향을 사랑하라’는 말로 지역에 남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애정이 아니라 폭력이다.
지역 소멸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정책의 실패와 사회적 방관이 만들어낸 명백한 인재다. 이제는 수도권 집중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인정하고, 지역 교육과 정주 여건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 어디에 살든, 개인의 꿈과 양육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사회. 그것이 지금 우리가 요구해야 할 최소한의 정의다.
오늘도 창원의 교복 입은 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서울의 풍경을 검색하며 탈출을 꿈꾼다. 그들의 비상이 ‘레이디 버드’처럼 찬란한 자아 찾기가 될지, 아니면 가라앉는 난파선에서의 필사적인 탈출이 될지는 기성세대와 국가의 선택에 달려 있다. 언젠가 그들도 창원을, 경남을, 지역을 자신의 뿌리로 다시 부를 수 있기를. 지금 이 순간이, 그 가능성을 지켜낼 마지막 임계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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