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의 금기를 깨고, 관계를 잇다” 경기도자미술관 ‘흙과 우리 사이에 놓인 것들’ [전시리뷰]
만지고, 깨고, 태우는 참여에서 예술 ‘살아있는 과정’ 경험…흙의 물성에 주목

흙은 인간의 의도를 온전히 따르지 않는 물질이다. 마르고 갈라지며, 불을 통과하는 순간 전혀 다른 상태로 변형된다. 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일방적인 형성이 아니라, 흙의 물성과 이를 다루는 인간 사이의 예측할 수 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완성된다. 이천에 위치한 경기도자미술관 2026 기획전 ‘흙과 우리 사이에 놓인 것들’은 이러한 관계적 성질을 전면에 내세운다. 완성된 결과 대신, 변화하는 물질과 관람객의 행위가 개입하는 과정을 통해 예술이 형성되는 방식을 묻는다. 관람객의 참여 속에서 전시는 끊임없이 변형되며, 그 과정에서 ‘나’와 타자,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가 드러난다.
한국도자재단이 주최한 이번 전시는 7월12일까지 이어지며, 국내외 작가 10명이 참여한 도자 설치 작품 14점을 선보인다. 도자를 먼 발치에서 ‘완성된 공예품’으로 감상해온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 물질과 인간, 관람객의 참여가 결합되는 과정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관람객은 오감을 통해 도자를 느끼며 예술을 ‘살아있는 과정’으로 경험하게 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세실 켐페링크(네덜란드)의 작품이 먼저 감각을 깨운다. 쇠사슬처럼 얽힌 원형의 도자를 손에 쥐는 순간, 예상과 다른 미묘한 탄성과 움직임이 전해진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보이지만 직접 움켜쥐고 늘려보는 순간 예상은 빗나간다. 반복되는 원형 구조는 서로 기대고 당기며 관계망을 형성한다. 미술과 무용, 섬유와 패션을 넘나드는 배경을 가진 작가는 ‘원’을 주요 소재로 삼아 하나의 감각으로 완성한다. 그 안에는 바람과 파도 같은 자연의 리듬이 담겨 있다.
세탁기에 던져진 오브제가 짧고 경쾌한 파열음을 남기며 청각을 깨운다. 포레스트 가드(미국)의 ‘빨래’는 돌돌 말린 양말 형태의 점토 오브제를 세탁기 통 안으로 던지는 행위를 통해 일상의 익숙한 장면을 낯선 감각으로 전환한다. 관람객은 오브제를 던지거나 저글링하듯 주고받으며 벽에 부딪히는 소리와 깨질 때의 리듬을 경험하고, 실제 양말과의 촉감 대비를 통해 감각을 확장한다. 어린 시절 아무렇게나 양말을 던져 넣었다가 혼나던 기억은 이곳에서 ‘어른을 위한 놀이’로 재구성된다. 금기를 깨는 깨짐은 훼손이 아닌 놀이의 일부로 허용되며,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노란 빛으로 채워진 포근한 공간 한 켠에는 계란판이 수북이 쌓여 있다. 정나영의 신작 ‘부화의 조건’은 ‘깨짐’을 파괴가 아닌 내면을 여는 과정으로 전환한다. 전시장에 놓인 3천 개의 계란은 관람객의 행위를 통해서만 열릴 수 있다. 긴장감을 갖고 도자 주먹으로 계란을 깨뜨리는 순간, 내부에 숨겨진 문장이 드러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무력함의 은유는 이곳에서 전복된다. 작가는 계란 형태를 만들고 문장을 넣어 다시 굽는 과정을 3천 번 반복했다. 그 문장이 인공지능이 생성한 것이라는 사실은, 감동을 만들어내는 언어의 주체와 의미를 되묻게 하며 관람객에게 또 다른 재미를 남긴다.

홍근영 작가의 ‘타오르지 못하고 소멸하지 않는 것들에 관하여’는 도자 작품을 손으로 만지고, 느끼며 비어 있는 내부에서 경계를 흔든다. 관람객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양면을 지닌 형상을 손으로 더듬고, 임신한 여성의 배를 연상시키는 비어 있는 공간 내부를 들여다보며 작품과 마주한다. 작가가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이 도자 조각들은 삶과 죽음, 몸과 사물,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교차시키며 질문을 던진다. 불을 거쳐 형태를 얻은 흙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상태로 남듯, 작품은 소멸과 생성의 경계에 놓인 존재의 조건을 드러낸다.
빈자리를 채운 관람객의 선물은 매 순간 전시의 모습을 바꾼다. 우관호의 ‘일만 개의 선물’은 관람객과 작가가 함께 작품을 완성하는 순환 구조를 실험한다. 관람객은 도자 오브제 하나를 선택해 자신의 공간으로 가져가고, 그 자리에 직접 만든 형태를 남긴다. 오브제는 일상 속에서 촬영돼 작가에게 전달되고, 다시 공유되며 작품을 확장한다. 어린아이 두상이나 타누키 형상을 본뜬 오브제는 인간의 본질과 본능을 상징하며, 작품은 미술관을 벗어나 개인의 삶과 기억 속으로 이동한다. 2014년 일본 시가현립 도예의 숲 레지던시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세계 여러 지역을 거치며 이어졌고, 작품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관계를 만들어낸다.

김선의 신작 ‘마음의 기화’는 태움의 의례를 통해 감정의 전환을 드러낸다. 작가는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49재에서 옷을 태우며 마음이 가벼워졌던 경험에서 출발해, 사적인 애도의 과정을 타인과 나누는 방식으로 확장했다. 관람객은 종이에 자신의 감정을 기록해 실로 엮고 항아리에 담는다. 이 항아리는 기억을 저장하는 매개가 되며, 4월과 6월 작가의 진행으로 미술관 가마 터에서 진행되는 태움 의식에서 종이는 불에 닿아 사라질 예정이다. 그러나 감정은 소멸되지 않고 흔적을 남긴 채 다른 형태로 전환된다. 그을린 자국을 품은 항아리는 전시장에 다시 놓이고, 개인의 기억은 타인과 겹쳐 축적된다. 애도는 이 과정에서 공동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각 작품의 참여 방법과 운영 시간은 경기도자미술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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