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돌아온 3인 3색 ‘홍도’…고선웅은 고선웅을 넘어설까

“가슴을 열어봐라. 왜? 대가댁 어르신들 모시려면 여러모로 봐야지. 낯짝에 행실이 써 있는 것도 아니고. 얼른~.”(광호 어미)
“요릿집이니 이런저런 부엌살림도 있을 테고 청소 같은 일도 있을 것인데, 그런 일은 자신 있습니다.”(홍도)
“그런 일 할 사람은 너무 많아. 다르다. 넌 기생이 된다 하지 않았니?”(광호 어미)
지난 1일 서울 미아동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 지하 마루연습실, 3명의 홍도가 잇따라 등장했다. 배우 최하윤은 ‘기생 전 홍도’를, 박하선은 ‘기생 홍도’를, 예지원은 ‘결혼 뒤 의심받고 쫓겨온 홍도’를 저마다의 발성과 몸짓으로 펼쳐냈다. 극단 마방진의 고선웅 연출이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릴 화류비련극 ‘홍도’ 제작발표 현장이다.

고 연출은 2014년 전통 신파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6년·임선규 작)를 재해석한 ‘홍도’를 처음 무대에 올려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연극 부문 최우수상, 연출상 등을 휩쓸었다. 2016년에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국립극장에서 초청 공연도 했다. 오빠를 공부시키기 위해 기생이 된 홍도의 희생과 비극을 그린 1930년대 신파를 현대적으로 재탄생시켜 ‘여백의 미와 속사포 화술이 돋보이는 고선웅표 연출의 정수’로 평가받았다.
이번 무대는 온전히 자신의 전작을 뛰어넘어야 한다. 고 연출은 “10년 전쯤 쉽고 재미있는 주제를 이야기하는 게 연극의 본질이라 생각하며 기획했던 작품이었다”며 “재공연할 때 더 예민하고 자기 검열도 심한 것 같다”고 부담감을 토로했다. 그는 “‘홍도’는 옛날에도 좋았으니 (이번에도) 막연하게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시작했는데, 쳐내야 할 대사도 많고, 더 선명하게 극적인 꼭짓점을 정리하고, 인물 캐릭터도 더 분리해야 했다”며 “보석을 캐 광을 내는 것처럼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무대의 가장 큰 특징은 3인 3색 홍도다. 홍도 역에 예지원·박하선·최하윤을 트리플 캐스팅했다. 신구 조화가 콘셉트다. 예지원은 12년 전 초연 무대에 오른 ‘원조 홍도’다. “이번에 알았는데 홍도가 18살이래요. 저는 10년 후 감옥에서 나온 홍도가 복수하는 그런 노련한 연기를 하면 좋을 텐데, 다시 10대 역할이라니 어려워요.” 박하선은 ‘발랄 홍도’를 예고했다. “신생아처럼 발성, 걸음걸이, 호흡, 시선 하나하나 나노 단위로 (연출에게) 까이면서 배우고 있어요. 입술도 터지고 코피도 쏟으면서 ‘제 홍도는 무슨 용도일까’ 생각해봤죠. 올해 제가 서른아홉인데 그래도 귀엽다 해주니, 그걸 믿고 열심히 만들어보겠습니다.” 박하선은 이날 결혼 승낙 소식을 전해 듣고 졸도했다 깨어나며 “제가 잠시 잠이 들었던가요?”라고 코믹한 대사를 치고, 보이지도 않는 시아버지를 향해 과장되게 큰절을 올리는 홍도를 시연했다. 고 연출은 “(세 배우가) 목소리도, 외모도, 성격도 다르지만 집중해 보면 다 홍도다. 배우들이 가진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보이스, 동선을 더 개성 있게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홍도를 든든하게 지지하는 시아버지로 정보석이 합류한 것도 재미를 더한다.

의상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복 디자이너 차이킴(김영진)이 ‘홍도’가 품은 우리 고유 정서 ‘한’을 한복으로 세련되게 표현했다고 한다. 연습실 벽엔 출연진 의상 스케치 26장이 붙어 있었다. 홍도의 한복은 3가지로 구성했다. 차이킴은 “홍색을 기본 바탕으로 화려하지만 슬픈 메시지를 담았다”고 밝혔다.
초연과 무엇이 가장 달라진 걸까? 고 연출은 “배우가 잘 웃고 잘 우는 게 신파의 전형처럼 느껴지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똑같은 서사지만 동시대성을 표현하지 않으면 낡아 보인다”며 “그 시절 뉘앙스나 느낌을 갖되 연극이 끝나는 장면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기생, 여성성에 대한 모욕이나 언어적 폭력 같은 것에도 굉장히 민감한 시절”이라며 “(홍도가 처음 만들어진) 그 시대를 피해 갈 순 없으니 아슬아슬한 선에서 정리하려 한다”고 말했다. ‘홍도’는 오는 10~26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을 시작으로, 6월20일까지 광주, 대구 등 전국 7개 도시를 순회한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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