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풍자로 시각 과잉시대를 꼬집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중국 당나라의 구지선사는 무엇을 물어도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며 가르침을 대신했다.
어느 날 구지선사는 동자승을 불러 "불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동자승이 평소처럼 손가락을 세웠다.
그러자 선사는 칼로 그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안구선사'는 손가락 대신 눈알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잔혹한 설정에 놓인 가상의 수행자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민간신앙·불교신화 재해석
눈 잃고 깨달은 수행자 통해
유튜브·OTT 집착 현대인 풍자
형 박찬욱 전시장 찾아 응원도

중국 당나라의 구지선사는 무엇을 물어도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며 가르침을 대신했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동자승도 스승의 행동을 따라 손가락을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구지선사는 동자승을 불러 "불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동자승이 평소처럼 손가락을 세웠다. 그러자 선사는 칼로 그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놀라 도망가는 동자승을 선사가 다시 불러 세우고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동자승은 습관적으로 손가락을 세우려 했으나 손가락은 없었다. 그 순간, 벼락같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형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것이다.
미디어아티스트 박찬경(61)은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통해 '안구선사'라는 화두를 던졌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안구선사'는 손가락 대신 눈알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잔혹한 설정에 놓인 가상의 수행자다. 작가는 "시각예술가인 저의 자학적인 서사를 담았다"며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보는 것'에 집착하는 현대 사회를 풍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 박찬경은 전통 무속과 불교적 도상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화면을 분할해 그린 방식은 사찰 벽화의 건축적 요소를 차용한 것이다.
그는 "전통을 보는 태도는 굉장히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업신여기기도 하고 또 엄청난 '국뽕'으로 좋아하기도 한다"며 "사찰 벽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거기에는 해학과 파격이 있어 '전통'이라는 개념에서 깨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품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위트와 재치가 느껴진다. 그는 '선불교 그로테스크 공상과학(SF)이라는 장르를 붙이기도 했다. 돌탑을 그리고 그 옆에 그것을 그린 날짜를 적은 뒤 '헛수고'라는 제목을 달았다. 돌을 하나씩 쌓는 행위가 실제 복을 가져오는 데 전혀 상관이 없지만, 간절한 기원과 내면에 대한 성찰이 이뤄진 순간이다. 겉보기엔 쓸모없지만 삶의 본질에 맞닿아 있는 예술도 같은 맥락이다.
도를 얻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잘랐다는 혜가의 고사를 그린 '혜가단비도', 화로를 머리에 이고 스승을 찾아가 깨달음을 얻겠다는 결의를 보여준 혜통의 이야기를 그린 '혜통선사', 부처의 열반에 뒤늦게 도착한 가섭존자에게 부처가 관 밖으로 두 발을 조용히 내밀었다는 열반경 일화도 작품의 소재가 됐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박찬경은 회화를 전공했지만 미디어아트와 설치, 사진 작업으로 화단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과 2023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NMAA)에서 열린 '모임' 등 주요 전시에서 사진과 비디오로 자신의 미학을 드러냈다. 그는 형인 영화감독 박찬욱과 함께 '파킹찬스'라는 팀을 만들어 영화 '파란만장' '반신반의' 등을 공동 연출하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은 동생의 첫 회화 개인전을 직접 관람하며 응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찬경은 "나에게 회화는 고향이자 출발점"이라며 "앞으로도 미디어아트와 회화를 병행할 계획이다. 그림에 좀 더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회화에 무게중심을 옮겼지만 서구적 시선에서 벗어나 '근대성' '전통 샤머니즘'을 새롭게 탐구하려는 주제의식은 일관적이라는 평가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이향휘 선임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속보] “미국·이란, 휴전 후 종전 2단계 중재안 수령”<로이터> - 매일경제
- “자동지급 안돼, 알아서 신청하라고?”…노인들, 기초연금 못받는 이유가 - 매일경제
- “우리가 한국보다 밑이라니”…대만이 발표한 ‘충격 보고서’ - 매일경제
- “젠슨 황도 거액 투자했다던데”…서학개미들, 반도체 줄이고 담는 업종 - 매일경제
- “스페이스X, 상장하면 결국 테슬라 인수…머스크, 조만장자 될 것” - 매일경제
- [속보] 이란·미국, “호르무즈 즉시 개방 후 휴전…2단계 중재안 수령” - 매일경제
- “아파트 팔아 빚 갚아라”…다주택자 대출연장 ‘차단’ [부동산 이기자] - 매일경제
- ‘수백억 세금회피’ 빵 안굽는 베이커리카페…상속공제 대상서 빠진다 - 매일경제
- “1단계 45일 휴전, 필요하면”…미국 이란, 중재국 통해 막판 물밑 접촉 - 매일경제
- [오피셜] 다저스, 무키 벳츠 이탈에 김혜성 긴급 호출...빅리그 로스터 합류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