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사진 속 이슈人] 레바논 피난민들의 부활절, “평화 선택하라”는 교황의 호소

박영서 2026. 4. 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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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기독교 마을 클라이야의 성 조지 교회 앞에서 부활절을 맞아 신부가 십자가를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레바논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교전이 격화하는 가운데 많은 레바논 기독교인들이 피난길에서 부활절을 맞이했습니다. 올해 부활절은 신앙의 기쁨을 나누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피난길에 오른 신자들은 상실과 두려움 속에서 기도를 올렸습니다. 레오 14세 교황의 평화 호소는 그 절박함을 또렷이 드러냅니다.

5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초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에 교전이 시작된 이후 레바논에서는 1400명 넘게 사망하고 100만명 이상의 피난민이 발생했습니다. 부활 주일인 5일 레바논에서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최소 11명이 숨졌습니다. 지난달 초 이스라엘과의 교전이 시작된 이래 가장 폭력적인 날 중 하루였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습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남부 크파르하타에서 4세 어린이를 포함해 7명이 사망했고, 수도 베이루트 인근에서도 4명이 숨지고 39명이 다쳤습니다.

이란 전쟁 발발 후 지난달 2일 헤즈볼라가 이란을 지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로켓을 발사하면서 레바논은 본격적으로 이번 전쟁에 휘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고 남부 지역을 침공하면서 레바논은 이번 전쟁에서 가장 격렬한 교전지가 됐습니다.

기독교인은 레바논 전체 인구 550만명 중 약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기독교 12개 종파가 공존하는 레바논은 아랍권에서 기독교인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레바논 남부 지역을 떠난 피난민 중에는 기독교인 수천 명도 포함됐습니다. 이들은 비잔틴, 이슬람, 오스만 제국 정복기부터 현대의 여러 위기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굳건히 지켜온 고향의 교회를 떠나야 했습니다.

수년간 이스라엘 접경지인 레바논 남부 알마 알샤브에서 부활절 설교를 해온 마룬 가파리 신부는 베이루트 외곽의 한 교회에서 설교했습니다. 이 교회에는 알마 알샤브에서 온 피난민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고향을 떠나 멀리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룬 가파리 신부의 곁에는 현재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교전지에 갇힌 알마 알샤브 교회의 모습을 본뜬 판지 모형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신부의 형제인 70세 사미 가파리는 이스라엘의 폭격 속에 알마 알샤브 교회에서 대피 중이던 주민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지난달 8일 잠시 교회 밖으로 나갔다가 이스라엘 드론 공격에 사망했습니다. 이 참극은 마룬 가파리 신부를 포함해 남아 있던 주민들이 짐을 싸는 계기가 됐습니다. 마룬 가파리 신부는 AP 통신에 "우리는 교회에 남고 싶었지만 우리 중 누구라도 언제든 표적이 되거나 죽을 가능성이 존재했다"며 "모두가 지쳤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 레오 14세는 5일 첫 부활절 미사를 집전하며 무기를 내려놓고 대화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라고 국제사회에 촉구했습니다. 레오 14세는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을 향해 "우리는 폭력에 익숙해지고, 수천 명의 죽음에, 분쟁이 뿌리는 증오와 분열의 파장에 무감각해지고 있다"고 개탄했습니다.

레오 14세는 현재 진행 중인 이란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무기를 가진 자들은 그것을 내려놓아라. 전쟁을 일으킬 힘을 가진 자들은 평화를 선택하라"며 "무력으로 강요된 평화가 아니라 대화를 통한 평화여야 한다.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그들과 만나려는 마음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레오 14세는 오는 11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평화를 위한 기도 집회를 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레오 14세는 전날 열린 부활절 성야 미사에서도 "부활절의 선물인 화합과 평화가 전 세계 곳곳에 자라나길 기원한다"면서 "불신과 두려움, 이기심과 원망이 인간의 마음을 짓누르고, 전쟁과 불의, 고립을 통해 서로 간 유대를 끊어놓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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