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을 허락도 없이 원자재로…중국 AI 드라마 산업 ‘얼굴 도용’ 일파만파

박은하 기자 2026. 4. 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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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배우 대체한 중 단편 드라마 업계
연예인·일반인 도용 피해 고발 연이어
마땅한 법적 제재 수단 없는 회색지대
AI가 생성한 드라마 <도화잠>의 한 등장인물 모습(왼쪽)과 이 모습이 자신의 모습을 도용한 것이라고 주장한 누리꾼 ‘바이차이한푸화장(오른쪽)’의 실제 사진. /웨이보

중국에서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초단편 드라마(마이크로 드라마)가 영상 콘텐츠 시장을 휩쓸면서 ‘얼굴 도용’ 문제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동의 없이 얼굴 모습이 도용됐다는 피해 고발이 잇따르고 있으며, 개개인의 얼굴이 AI 콘텐츠 산업의 ‘원자재’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중국 매체 제일재경과 펑파이신문에 따르면 ‘바이차이한푸화장(바이차이)’이란 이름의 누리꾼이 지난달 말 사극풍 마이크로 드라마 <도화잠>에 사진과 얼굴을 도용당했다고 글을 올리면서 그는 “(제작자가) 내가 예전에 올렸던 사진을 허락 없이 사용하고 AI로 보정했다. (드라마 등장인물의) 옷, 액세서리, 화장 등이 실제 나와 똑같다”며 “드라마에서 나는 탐욕스럽고 음탕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정말 어이가 없다”고 글을 올렸다.

바이차이의 폭로 이후 일반인·연예인 가리지 않고 AI 드라마에 얼굴을 도용당했다는 피해 고발이 쏟아지고 있다. 여성 모델 치하이도 <도화잠>에 얼굴을 도용당했으며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돼 모델 활동에 타격을 입었다고 밝혔다.

아이돌 출신 스타 이양천새(26)의 소속사는 5일 성명을 내고 훙궈에서 서비스 중인 <심야버스 : 그녀의 간계는 흉악해> <나를 속여 환생시킨다고? 좋아, 후회하지 마> 등 여러 편의 드라마에서 얼굴을 도용당했다고 밝혔다. 소속사는 “이양천새는 관련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없고 AI에 이미지 사용 권한을 부여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훙궈는 문제가 된 드라마들을 플랫폼에서 내리고 해당 제작자들의 콘텐츠 업로드 권한을 15일간 정지한다고 밝혔다.

남자 주인공이 배우 이양천새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지적된 단편 드라마 화면. 드라마 속 인물은 모두 실제 이양천새가 아니며 이미지 사용을 허락하지도 않았다고 소속사가 밝혔다. /소속사 위챗

중국의 중국광파전시조직연합회 배우위원회는 3일 성명을 내고 “배우의 이미지와 목소리 무단 활용은 초상권, 음성권 등을 침해하는 일”이라며 법적 대응을 하는 배우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매체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일재경은 “현재 AI 마이크로 드라마는 빠른 확장 단계에 있다. 제작 비용이 낮고, 주기가 짧으며, 수익화 경로가 명확하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이 분야는 빠르게 많은 콘텐츠 생산자를 끌어들였다”며 “하지만 동시에 스타 또는 일반인들의 얼굴을 도둑질하는 것과 법적 권리의 경계가 모호한 회색지대 현상이 업계의 ‘암묵적인 규칙’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청두의 애니메이션·드라마 제작사가 만든 <도화잠>은 지난달 말 기준 4000만회 넘는 누적 조회수를 기록한 흥행작이다. 사극이나 시대극은 의상, 분장, 세트장 마련 등에 비용이 많이 들지만 이 드라마는 AI 제작으로 비용을 대폭 줄이면서 시리즈를 빠르게 출시해 업계의 ‘혁신’ 사례로 꼽혀 왔다.

마이크로 드라마는 보통 회당 길이가 1~5분이며 총 40~60편으로 이뤄져 있다. 플랫폼들은 첫 5~6회를 무료로 제공하고 이후 회차에 돈을 내도록 유도한다. 편당 길이가 짧아 AI 제작이 쉬운 편이다.

센스타임 등의 기술 기업들이 대본만 입력하면 영상과 음악을 AI가 생성해 드라마 한 편을 뚝딱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출시하면서 마이크로 드라마 제작 진입 장벽은 대폭 낮아졌다. 기존 드라마 제작 업체는 물론 1인 기업들도 뛰어들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마이크로 드라마 시장 규모는 약 900억위안(약 18조9000억원)으로 추정되며 전년 대비 78% 성장했다. 중국 당국도 AI 기술 발전을 추진하고 해외 콘텐츠 시장 개척 등을 위해 AI 콘텐츠 제작을 독려하는 분위기다. 마이크로 드라마는 해외에 중국에 필적할 만한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K-팝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세계를 휩쓸 수 있는 콘텐츠라는 인식도 있다.

하지만 얼굴 도용 문제가 떠오르면서 AI 드라마 혁신의 이면이 조명되고 있다. 칼럼니스트 장퉁은 펑파이신문에서 “AI 콘텐츠 산업 사슬에서 일반인의 얼굴이 저렴한 비용으로 수집, 처리, 수익화할 수 있는 일종의 ‘원자재’가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며 “(이 과정은) 개인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실질적인 법적 위험도 수반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은 개별 소송에 나서기 어려운 데다 플랫폼은 드라마를 빠르게 내리고 제작사들은 AI로 이미지를 다시 수정해 증거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법적으로 초상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타인이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느냐’인데 AI로 다양한 얼굴 모습을 섞어 새로운 얼굴을 만들면 도용을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장퉁은 권리 침해를 막으려면 AI로 생성한 콘텐츠의 ‘식별가능성’ 대신 AI로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집한 원자료 등을 추적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콘텐츠 제작 과정이 적법했는가’를 포괄적으로 묻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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