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은 왜 튤립을 먹었을까? 우리가 몰랐던 '꽃'의 진짜 역사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생글생글 2026. 4. 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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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희·윤상구 <꽃과 역사, 이야기꽃을 피우다>
Getty Images Bank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꽃이 활짝 피어나는 봄에 황인희·윤상구 작가가 꽃과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담은 <꽃과 역사, 이야기꽃을 피우다>를 펴냈다.

황인희 작가는 이 책에 실린 60편의 꽃 이야기를 읽고 나면 꽃은 “그저 흔해 빠진, 혹은 지천에 널린 꽃이 아니라 독자 여러분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의미 있는 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에서는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고, 잘 알려진 꽃을 다뤘다. 글은 황인희 작가가 쓰고, 사진은 윤상구 작가가 찍었다. 각 장 앞부분에 있는 QR코드를 접속하면 많은 꽃 사진과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봄이 되면 미국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변에도 일본이 1912년에 선물한 왕벚나무 3000그루가 활짝 피어난다. 포토맥 강변의 벚나무가 일본산이 아닌 한국산이라고 동양미술사학자 존 커터 코벨 박사가 자신의 글에 기록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미국이 왕벚나무를 다 베어버리려고 한 일이 발생했다. 당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그 벚나무는 일본산이 아닌 대한민국 제주도산 왕벚나무”라고 밝혀 지금까지 포토맥 강변을 지키고 있다.

 납북 남편 그리는 일편단심 민들레

유럽 사람들이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긴 카네이션은 어머니에 대해 사랑과 존경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 잡았다. 1907년 미국의 사회운동가 안나 마리아 자비스가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에 어머니에게 흰 카네이션을 선물하면서 이 문화가 퍼져나갔고,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914년에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다.

많은 사람이 장미를 ‘꽃 중의 꽃’으로 꼽는다. 동서양에 고루 서식해온 장미는 세계 여러 지역의 고대국가 벽화와 그리스신화에 등장한다. 클레오파트라, 폭군 네로를 비롯한 많은 유명인과 얽힌 장미 이야기도 넘쳐난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장미는 지금까지 2만5000여 종이 개발되었고, 매년 200종 이상의 품종이 새롭게 선보인다.

꽃은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로 시작하는 ‘4월의 노래’ 가사는 1953년 박목월 시인이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은 우리 청소년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썼다.

민들레도 유명한 노래에 등장한다. 가수 조용필이 1981년 발표한 ‘일편단심 민들레야’의 가사는 당시 72세이던 이주현 씨가 한국전쟁 때 납북된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자전적 이야기를 읽고 만들었다.

“내가 아무리 끈질긴 생명력의 민들레라 해도 일편단심 붉은 정열이 내게 없었다면 어린 자식들을 못 키웠을 것이고, 지아비에 대한 깊은 그리움의 정이 없었다면 붓대를 들 용기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전쟁 중에 납북된 9만6000여 명의 ‘민들레’가 ‘일편단심’ 기다리며 일생을 눈물로 보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온다.

 찔레꽃으로 배고픔 달래던 시절

지금 전 세계가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먹을 것이 없어 흙을 파헤쳐 벌레를 잡아먹고, 독성이 있어 인체에 해로운 튤립 구근까지 먹었다고 회고했다.

우리가 아주 가난하던 시절, 먹을 게 없는 춘궁기 때 달콤한 찔레순은 배고픈 아이들의 간식이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라는 노래 가사도 있다.

한자 이름이 봉선화인 봉숭화는 처량하게 살았던 우리 민족을 연상케 한다. 봉숭화꽃에는 고려 말기 왕위를 빼앗기고 원나라로 끌려간 충선왕의 사연이 담겨 있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로 시작하는 가곡 ‘봉선화’는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민족의 애환을 그렸다.

영국 왕 헨리 4세의 문장으로 유명해진 ‘나를 잊지 마세요’의 물망초, ‘아랍의 봄’을 불러온 ‘신의 선물’이라는 뜻의 튀니지 재스민, 프로이센과 범게르만주의 상징으로 위로를 건네는 프러시안블루빛 수레국화, 장마철에 만나는 탐스러운 꽃 수국, 평민에게는 금지되었던 양반꽃 능소화….

이근미 작가

<꽃과 역사, 이야기꽃을 피우다>에는 꽃 이야기가 가득하다. 아름다운 꽃을 보며 역사를 음미하고 싶은 이들이 두고두고 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