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침략은 침략, 전범은 전범

양훈도 논설위원 2026. 4. 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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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훈도 논설위원

한 나라의 지도자가 다른 나라의 모든 발전소와 교량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한다면, 유엔헌장 제2조 위반이자, 1974년 유엔총회 결의 3314호가 규정한 '침략(Aggression)'의 정의에 정확히 들어맞는 명백한 침략이다. 이를 '전쟁'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전쟁은 쌍방 무력충돌을 가리키는 중립적 용어다. 그렇다면, 오는 8일 오전 9시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이란의 모든 발전소와 교량을 폭파하겠다고 공개 선언한 그 자는 국제법상 '전범(war criminal)'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는 여전히 '대통령'으로 불린다. 국제법과 국제정치의 뼈 아픈 괴리다.

우리는 너무 쉽게 '중동전쟁'이라고 쓰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침략', 줄여서 '이란침략'이라고 해야 진실에 조금은 더 가까워진다. 이란이 인접국 미군기지와 시설을 공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일도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이란침략'이 실상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정확한 이름이고,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 해야 맞다. 바른 이름(正名)이 바른 판단을 낳고, 바르게 판단하는 세계인이 많아질수록 전범과 침략이 줄어들 것이다.

20세기 들어 여러 차례 국제 전범재판이 열렸다. 뉘른베르크 재판과 도쿄재판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전범을 단죄했고, 1990년대에는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르완다 학살을 다루기 위해 특별재판소가 설치되었다. 이후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출범해 수단 다르푸르, 콩고 내전, 케냐 사태 등에서 전범을 기소했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 같은 강대국은 단 한 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미국은 ICC 가입을 피했고, 러시아는 서명을 철회했다. 미국은 심지어 2002년 미군이 나 정부 관계자가 ICC에 구속될 경우 무력으로 구출할 수 있다는 법(헤이그 침공법)을 제정했다. 미국 전범의 만용은 바로 그 공백 속에서 자라났다.

전쟁의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소국의 처지일지라도, 전범을 전범이라 부르는 입장이 계속 커지기를 바란다. 힘이 크게 부족해 침략을 지휘한 전범을 국제법정에 세우지는 못할지언정, 엄정하게 평가하는 자세를 잃어서는 안 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침략으로 동아시아 한국의 서민이 고통받는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바른 이름, 바른 판단, 바른 목소리가 절실하다.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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