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 줄 알면서도, 꽃이 피었는데도

이강운 대기자 2026. 4. 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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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겨울과 봄 사이 어정쩡한 계절에 네발나비와 뿔나비, 각시멧노랑나비 그리고 신비로운 청색 줄무늬를 지닌 청띠신선나비의 하늘거리는 날개 짓을 보면서 살짝 봄 기분을 낸다. 
월동 형 각시멧노랑나비.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월동 형 청띠신선나비.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낮과 밤이 바뀌기 시작하고 한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는 입춘쯤에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각시멧노랑나비나 네발나비는 나비로 휴면한다. 어른벌레 상태로 휴면하는 나비들은 바람이 적은 낙엽 아래, 나무껍질 틈, 바위 그늘 같은 좁은 공간에서 날개를 접고 누워 겨울을 견딘다. 아주 미세한 공간이지만 온도와 습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체온과 대사를 극도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바람 끝에 겨울이 남아 있는 날에 네발나비가 날아오르면 "벌써 나비가? 기후변화 때문인가?" 있을 법한 추측이지만 기후위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연 현상이다. 몸을 숨기고 있다가 기온이 5도 안팎으로 올라가고 햇볕이 드는 날이 오면, 일시적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이른 봄 해프닝일 뿐이다. 
월동 형 네발나비.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변온동물이라 외부 온도가 상승하면서 체온이 올라가 그저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 이른 봄의 따뜻한 하루는 그들에게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계절의 시작'이 아니라 단지 '잠간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이다. 

따라서 2월 말이나 3월 초에 네발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은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라 생태적인 장면이다. 봄이 왔다는 데, 봄 같지는 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한겨울도 봄도 아닌 계절에 출현하는 나비들을 보면서 생각해 낸 구절일지도 모른다. 

하루 이틀 갑자기 따뜻해졌다고 봄이 온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온도가 계속 오르다가 쌓인 온도가 충족(유효적산온도)되어야 봄이라 할 수 있다. 번데기로 월동하던 갈구리나비나 배추흰나비가 날개를 달고 나온 때부터가 바로 봄이다. 

번데기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죽은 것처럼  보이는 상태이지만 그 단단한 껍질 안에서는 가장 역동적인 변화가 진행된다. 겨울을 견디는 번데기는 외부의 환경을 가늠하는 생체 시계를 갖고 시간의 깊이를 잰다. 햇빛이 조금 더 길어지고, 온기가 계속 올라와 몸이 덥혀진 후에 그때서야 비로소 나비가 된다. 
갈구리나비 번데기.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엊그제 부터 갈구리나비, 배추흰나비가 날아다니니 드디어 봄이다.
갈구리나비.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배추흰나비.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지난 3월 28일 지역 주민 20명을 비롯해 강원생태네트워크, 설악산 지킴이 등 40여명이 강원도 홍천군 풍천리 잣나무 숲에 함께 모였다. 개나리, 산수유, 생강나무까지 봄의 색깔인 노란색이 곳곳에서 만발하고 갈구리나비와 배추흰나비의 날개 짓이 소란스럽다. 풍천리 잣나무 숲에 온갖 생명으로 에너지가 꽉 차 있다. 언제 오나 했는데 봄은 이미 한창이었다. 
생강나무.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사계절이 다 아름답지만 봄이 시작 된 이 때 쯤 생명의 꿈틀거림을 보며 한층 따뜻하고 낙관적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살던 대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뿐인 풍천리 70대, 80대 어르신들은 봄이 와도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 7년 동안 계속된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후에너지환경부가 4월 중 홍천양수발전소 착공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 하니 가슴 속에 피눈물이 난다. 
홍천 풍천리 훼손 현장.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시간을 되돌려 투사가 아닌 농사짓고 잣 따던 평화로운 농부 시절로 가고 싶다" "앞으로 마음 편한 봄을 과연 볼 수 있을까?" 어르신들의 탄식과 혼잣말을 듣던 필자 또한 억장이 무너진다. "우리가 풍천리의 나무다" 라며 아무리 외쳐도 다 베어버릴 심산이다. 공기, 물, 땅, 나무 생명체가 살아갈 생존기반이 무너지면 다 무슨 소용인가. 

1등급 보전 지역을 단 3일간 조사로 2~3등급으로 하향 조정하고 산하를 다 부수고 만들려는 홍천 풍천리 양수 발전소는 남는 전기를 저장하는 전기 저장 시설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날씨나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변하는 불규칙성을 보완하는 전기저장장치(ESS)는 필요하다. 

기술적 진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고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국내 전기저장장치(ESS) 산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충분히 활용하고 육성하기는커녕 산림을 훼손하면서까지 양수발전소가 추진될 일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다. 

12만 그루의 나무가 베어질 것이고,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생태계가 한순간에 물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탄소를 흡수하고,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며, 수많은 생명체의 서식처 역할을 하는 복합적인 생태계인 숲을 다 죽게 만들고 기후 대응 댐이라는 희한한 단어를 들먹이고 있다. 거대한 생명 시스템을 잘라내고 잠겨버리는 일은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지워버리는 행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결정을 내리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물 부족을 대비하고, 지역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자연을 잃고 나면 그 어떤 기술도, 어떤 예산도 그것을 완전히 복원할 수 없다. 우리가 잃는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생명의 기반이며, 그 자체로 미래다.

생태계 보전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어 환경을 지키겠다는 부처가 앞장서 산을 깎고 생태계를 단절시키려 하고 있다. 더욱이 이미 존재하는 기술적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다. 

사람들은 흔히 자식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한다. 아파트 한 채, 땅 몇 평, 통장 속 현금 그것이 부모의 책임이자 사랑의 증거라고 믿는다. 황폐해진 강, 사라진 숲, 멸종된 생명들 위에 세워진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식에게 '살 수 없는 세상'을 물려주면서, '살아갈 돈'만 남기고 어른 역할을 다 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숨 쉬는 공기, 마실 수 있는 물, 그리고 생명이 이어지는 땅—자연을 제대로 물려주어야 한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국민을 지켜야 한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마을에 그냥 그대로 살고 싶다는 너무나 평범한 희망뿐인데 나라가 그 단순한 꿈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봄처럼 아름답고 설레던 사랑의 순간을 떠올리지만, 그 모든 것이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전쟁의 허무와 덧없음을 노래한 '봄날은 간다'라는 음악이 오버랩 된다. 

봄이 온 줄 알면서도, 꽃이 피었는데도 즐기지 못하는 풍천리 주민들에게 지금이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