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로 받은 나무 문장 속에 도청기가...퀄컴이 '도청 공포'를 파고든 방법은
퀄컴의 전쟁<3>
'과학기술의 한계를 알려면 불가능의 영역까지 가봐야 한다.'
영국의 공상과학(SF) 소설가 아더 C 클라크의 말이다. 퀄컴은 2세대 이동통신을 위한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기술을 개발하면서 이를 뼈저리게 절감했다. CDMA가 2세대 이동통신 표준으로 채택되려면 넘어야 할 과제들이 있었다. 이 과제 해결이 반대 진영인 시분할 다중접속(TDMA) 방식과 벌이는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이자 퀄컴의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됐다.

기지국에서 멀어져도 휴대폰 소리가 잘 들리는 이유
CDMA 기술을 개발하면서 퀄컴이 가장 먼저 맞닥뜨린 난제는 원근거리 효과에 따른 신호간섭이다. 신호간섭은 쉽게 말해 혼선이다. 1세대 이동통신은 이용자마다 각기 다른 주파수를 배정해 신호간섭 문제가 없지만 같은 주파수를 여러 이용자가 함께 사용하는 디지털 방식의 CDMA는 신호간섭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원근거리 효과에 따른 신호간섭이 문제였다.
원근거리 효과란 거리에 비례해 신호가 약하거나 강해지는 현상이다. 기지국에서 멀리 떨어진 신호는 약하고 가까운 신호는 강하다. 문제는 여러 신호가 같은 주파수를 사용할 경우 기지국에서 가까운 강한 신호가 멀리서 오는 약한 신호를 압도한다. 이렇게 되면 기지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동통신 이용자는 통화를 제대로 할 수 없거나 소리가 약하게 들릴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지국에서 가까운 휴대폰의 강력한 신호가 멀리 떨어진 휴대폰의 약한 신호를 누르지 못하도록 강제로 약화시켜야 한다. 퀄컴은 이 문제를 통화가 이뤄지는 동안 신호 강도를 알아서 자동 조절해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해결했다. 즉 휴대폰이 기지국과 가까워지면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신호를 약하게 만들고 멀어지면 강하게 키운다. '개방형 루프 신호 강도조절 방법'이라고 부르는 이 기술은 오늘날 모든 휴대폰에 들어간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기지국에서 신호가 약한 휴대폰과 강한 휴대폰을 파악해 각각 신호를 키우거나 낮추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휴대폰이 이를 받아 자동으로 신호 조절을 수행한다. 퀄컴은 1989년 이 기술로 특허를 받았다.

휴대폰에 GPS가 들어간 배경
또다른 문제는 기지국간 신호의 전달이다. 휴대폰으로 이동하며 통화를 하려면 무선 기지국 사이에 음성 신호를 정확하게 넘겨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화가 끊어진다. 이를 '신호를 건네 준다'는 의미의 핸드오프(handoff)라고 부른다. 1세대 이동통신에서는 핸드오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통화가 자주 끊겼다.
퀄컴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프트 핸드오프'(Soft handoff)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방식은 휴대폰 이용자가 이동하며 통화할 때 현재 기지국을 벗어나기 직전 다른 기지국 두 개를 동시에 확보해 통화가 끊어지지 않도록 한다. 즉 통화가 끊어지기 직전에 다른 기지국 두 개를 미리 잡아두는 것이다. 새로 접속한 두 개의 기지국 중 신호의 세기가 더 강한 기지국에 자동 접속하고 나머지 약한 신호의 기지국 신호는 자동 차단한다. 이 과정이 실시간으로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휴대폰 이용자는 핸드오프 순간을 알아채지 못한다.
단, 소프트 핸드오프 방식이 성공하려면 모든 기지국의 시간을 정확하게 일치시켜야 하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만약 기지국마다 시간이 다르면 정확하게 통화 신호를 넘겨줄 수 없다.
난제 해결을 위해 퀄컴이 찾아낸 방법이 위성항법장치(GPS)다. 모든 기지국에 GPS 수신기를 달아 인공위성 신호로 시간을 정확하게 일치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휴대폰과 기지국에 GPS 장치가 들어가게 됐고, 핸드오프 때 시간이 어긋나 통화가 끊어지는 문제를 방지할 수 있었다.
TDMA 방식을 누르기 위해 퀄컴이 개발한 또다른 기술은 신호 절약이다. 통화를 하다 보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 공백으로 남는 시간, 즉 데드 타임(dead time)이 발생한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1990년대 당시 통화 시간의 65%가 데드 타임이었다.
이를 주목한 퀄컴은 자동으로 데드 타임 때 신호를 절약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통화 중 데드 타임이 발생하면 음성을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음성 부호화 기술(보코더)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신호를 초당 9,600비트에서 1,200비트로 떨어뜨린다. 이렇게 되면 주파수에서 음성 정보가 차지하는 용량도 약한 신호만큼 줄어들면서 다른 이용자가 그만큼 더 주파수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퀄컴은 새로운 보코더 기술로 CDMA 시스템의 전체 주파수 용량을 3배 더 확장했다. 이 기술은 주파수 용량 부족 문제로 골치를 앓았던 이동통신업체들이 CDMA에 관심을 갖게 만든 결정적 기술이었다.

워터게이트와 그레이트 실 사건
퀄컴이 TDMA를 누를 수 있는 CDMA의 비장의 무기로 제시한 마지막 기술은 도청을 막는 보안이다. 유선이나 무선을 통해 음성을 그대로 전달하는 아날로그 통신에서는 도청이 가능했다. 대표적인 도청 방법이 와이어태핑과 주파수 스캐닝이다.
유선 도청에 널리 쓰인 와이어태핑은 전화선에 도청 장치를 직접 붙이는 방법이다. 마치 집게를 물리듯 전화선에 도청 장치를 달아서 오가는 통화 내용을 훔쳐 듣는다.
와이어태핑을 이용한 대표적 도청 사건이 1972년 미국에서 일어난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재선을 노리던 공화당 소속 닉슨 대통령은 정보기관과 수사기관 출신들을 동원해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와이어태핑을 이용한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됐다. 이 사건 때문에 닉슨 대통령은 사임했다.
주파수 스캐닝은 주파수 탐색기를 이용해 공중에 날아가는 무선 통신 신호를 가로채는 방법이다. 통화가 이뤄지는 주파수를 주파수 탐색기로 정확하게 찾아내면 통화 내용을 고스란히 엿들을 수 있다. 주파수 스캐닝의 유명 사례가 '그레이트 실'(great seal) 사건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구 소련의 보이스카우트연맹은 전쟁 기간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미국 국가 문장(그레이트 실)을 나무에 정교하게 새겨서 소련 주재 미국대사관에 선물했다. 미국 대사는 집무실 책상 바로 뒤에 이 국가 문장을 걸어 놓았다. 그런데 이 국가 문장은 사실 도청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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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퀄컴의 전쟁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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