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인 전쟁범죄 예고, 규범과 윤리 모두 내던진 ‘트럼프의 전쟁’
헤그세스 취임 직후 ‘민간인 피해 대응팀’ 해체
전문가 “민간인 한 명 죽으면 새 적 10명 생겨”
비윤리성 비판에도 ‘성전’ 포장하며 이슬람 공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7일 오후 8시(현지시각)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열지 않으면 이란의 민간 시설인 발전소와 다리를 폭파하겠다고 말한 것은 노골적인 ‘전쟁범죄 예고’에 해당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행태는 지난해 국방부 내 ‘민간인 피해 대응팀’을 해체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규범과 윤리를 모두 내던진 이번 전쟁을 ‘성전’으로 포장하기 위해 점점 더 공격적인 종교적 언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이란이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발전소의 날이자 교량의 날이 될 것”이라며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벌어질 것이다. 이런 일은 전례가 없을 것”이라고 위협의 수위를 높였다. 발전소와 다리를 모두 폭파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그러면서 “알라를 찬양하라”고 조롱하듯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고가 실행에 옮겨질 경우 이는 최악의 전쟁범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사라 예거 휴먼라이츠워치 워싱턴지부장은 “발전소를 폭격하는 것은 병원·상수도 등 기타 필수 민간서비스에 대한 전력 공급을 차단해 이란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에리카 게바라 로사스 국제앰네스티 선임 이사도 “민간 기반 시설을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국제법상 금지돼 있다”면서 “군사 목표물로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며, 이 경우에도 민간인에게 과도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면 공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을 비롯한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은 이란 발전소와 교량 등 민간시설이 모두 합법적인 군사 목표물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공개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이들은 이란의 발전시설을 폭격하면 미사일·핵 프로그램을 무력화할 수 있고, 교량과 도로를 파괴하면 미사일·드론 자재 운반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공격을 ‘장대한 분노 2.0’ 작전이라 부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간인 피해를 경시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행태는 헤그세스 장관 취임 직후 국방부 내 특수 조직인 ‘민간인 피해 완화 및 대응’(CHMR) 팀 인력이 90% 감축될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CHMR은 2022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당시 미군이 드론 오폭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일가족을 사망케 한 후 재발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200여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CHMR은 군사작전을 실행하기 전에 해당 지역 민간인 거주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위험 요소를 심층분석 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 민간인 피해가 보고되면 사후 평가조사를 실시해 대책을 마련하는 역할도 했다. 헤그세스 장관이 CHMR을 와해시키지 않았다면, 이 조직은 175명의 민간인을 사망케 한 이란 남부 미나브 지역의 초등학교 오폭 사건이나, 지난 2일 100여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낳은 테헤란 인근 대형 교량 폭파 사건을 막기 위해 개입했을 것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CHMR뿐 아니라 지난해 3월 육·해·공군 법무감실장도 모두 해고했다. 군 법무관들은 군사작전이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는지 검토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해왔다.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민간인 사망 문제로 번번이 논란에 휩싸이자, 미 연방 의회는 군인들이 법무관 의견을 쉽게 묵살하지 못하도록 이들의 계급을 중장으로 올리기도 했다.
CHMR과 군 법무관이 사라진 미 국방부는 지난 한 달여 동안 ‘장대한 분노’ 작전을 수행하면서 거리낌 없이 국제법을 위반해 왔다. 분쟁 감시 비정부기구인 ACLED는 미·이스라엘이 이란 정치인과 과학자들을 암살하기 위해 50곳이 넘는 주거용 건물을 공격하면서 특정 층만이 아니라 중화기로 아예 건물 전체를 파괴한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경찰서와 바시지 민병대 사무소를 공격한다면서 인구 밀집 지역을 폭격했지만, 해당 시설들은 이미 비워지거나 대부분 이전된 상태였다고 ACLED는 전했다.
국방 분석가들은 민간인 사상자 발생이 인도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우려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프로퍼블리카에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나토군을 지휘했던 스탠리 맥크리스탈 퇴역 장성은 “무고한 민간인이 한 명 죽을 때마다 최소 10명의 새로운 적이 생겨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쟁을 시작할 때 군사작전과 인도적 지원을 동시에 실행했던 미국의 전례마저 무시했다. 2003년 미국은 이라크에 첫 폭격을 가하기 전 요르단,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전역의 창고에 비상 물자를 비축해 두는 등 이라크 국경에 60만명의 난민이 발생할 가능성에 사전 대비했다. 당시 미 의회는 행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라크 침공 몇 주 후에 구호 자금 25억달러를 승인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내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커녕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긴급구호 식량 부족 사태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는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이번 전쟁을 ‘성전’으로 포장하면서 무슬림인 이란인들을 ‘비인간화’하려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당시 과거 미국 행정부들은 ‘종교 전쟁’으로 비치는 것을 막기 위해 어휘 사용에 매우 신중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거침없이 종교적 언사를 동원하고 있다.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달 25일 국방부에서 복음주의 예배를 개최하고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압도적인 폭력을 가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인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도 ABC 방송 인터뷰에서 이란을 “제정신이 아닌 종교적 광신자들”이라고 지칭하면서 종교를 공격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이란 폭격 예고 글에 ‘알라에게 찬양하라’는 말을 덧붙여 이슬람을 조롱했다. 미국 최대 무슬림 단체인 이슬람관계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폭력적 맥락에서 ‘알라에게 찬양하라’는 표현을 가볍게 사용하는 것은 종교적 언어를 무기화하는 동시에 이슬람과 그 신자들을 폄하하려는 위험한 태도”라면서 “이는 인간 생명에 대한 무관심과 종교적 신념에 대한 경멸을 드러내는 사고방식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4031143001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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