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대약사 환수, 이제 ‘전액 몰수’ 아니다…대법 “이익 범위 내에서”

김홍진 기자 2026. 4. 6. 12:2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법원 "면허대여 위법은 인정…환수는 이익·역할 고려해야"
ChatGPT 생성 이미지.

면대약국(사무장약국)에 가담한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수십억 원대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은 과도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최종심까지 이어진 법적공방에 법원은 약사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환수액 산정에서 의약품 구입비와 약국의 실제 이익을 구분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면대약사의 책임을 실제 역할과 이익 범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향후 유사 사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약사 A에게 부과한 요양급여비용 25억3498만6220원 환수처분을 취소했다. 해당 약사는 병원 관계자에게 고용된 상태에서 자신의 명의를 빌려 약국을 개설·운영하도록 한 이른바 사무장약국 사건에 연루됐다.

이 약국은 약사 명의로 운영되며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 약 51억 원을 수령했다. 공단은 이를 부당청구로 보고 전액 환수를 결정했고, 이후 재량기준을 적용해 50% 감경한 금액을 재차 부과했다.

법원은 약사의 면허 대여 행위가 약사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약사가 아닌 자의 약국 개설을 금지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사무장약국 구조 자체의 불법성은 인정된다는 판단이다.

다만 환수처분의 성격에 대해서는 별도로 봤다. 법원은 요양급여비용 환수는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부당이득 반환의 성격을 가지는 행정처분이라고 전제했다. 이에 따라 환수금액은 위반행위의 정도와 실제 이익 규모 등을 반영해 비례적으로 정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그 비례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해당 약사는 약 1년 11개월 동안 근무하며 약 9000만 원 수준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공단이 부과한 환수금은 약 25억 원으로 28배에 달했다.

약국의 수익 구조 역시 주요 판단 요소로 작용했다. 법원은 약국 매출의 상당 부분이 의약품 구입비로 지출되고 실제 이익은 조제료에 한정된다고 지적했다. 약가 부분은 제약사로 이전되는 구조인 만큼, 이를 모두 약국의 부당이득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이와 함께 법원은 환수금 산정 과정에서 개설명의자의 실제 역할과 이익 규모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단순 명의대여 형태로 고용돼 근로를 제공한 약사에게 약국 전체 매출을 기준으로 환수금액을 산정한 것은 의무위반의 정도에 비해 과도하다고 봤다.

해당 사건은 1심과 2심에서는 모두 약사 측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법원은 사무장약국 구조에서 약사가 자신의 명의를 빌려 약국 개설·운영에 관여한 이상, 해당 약국이 지급받은 요양급여비용은 부당하게 수령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환수한 처분 역시 적법하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은 부당이득 반환의 성격을 가지는 재량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개설명의자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실제 이익의 귀속 여부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전액 환수를 하는 것은 비례원칙을 위반한 재량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사건은 파기환송됐고, 환송심에서는 기존 처분이 취소됐다.

이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새로 마련한 감경 기준을 적용해 환수금액을 절반 수준으로 낮춰 재처분을 했으나, 법원은 이 역시 개설명의자의 실제 이익과 역할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산정된 것으로 보고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행정청 처분 시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최초 처분이 취소된 이후 약 4년이 지나 재처분이 이뤄졌고, 위반행위 종료 시점으로부터는 약 14년이 경과한 상태였다. 법원은 장기간 권한을 행사하지 않다가 뒤늦게 제재를 가한 것은 법적 안정성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사무장약국 사건에서 면허를 대여한 약사에 대한 환수금 산정 기준과 비례원칙 적용 범위를 구체화한 사례로 해석된다.

관계자는 "이 사건에서 법원은 환수처분이 부당이득 반환의 성격을 갖는 이상, 개설명의자의 실제 역할과 이익 규모를 반영해 환수금이 정해져야 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약사가 단순 고용 형태로 근무하며 제한된 급여만 수령한 점, 약국 운영에 따른 수익이 실질 운영자에게 귀속된 점, 약국의 원가 구조상 의약품 비용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전체 요양급여비용을 기준으로 환수금액을 산정하는 것은 비례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