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꼴찌 ‘K-노동’ 39.8도에도 출근하는 나라

윤효원 2026. 4. 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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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의 한 사립유치원 교사가 B형 독감 확진을 받았다. 체온은 38도를 넘었다. 그는 원장에게 "독감이어서 죄송하다. 마스크 쓰고 출근하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원장의 답은 "네"였다. 부모가 출근을 말렸지만 그는 집을 나섰다. 사흘간 39.8도의 고열 속에서 아이들을 돌보다 결국 쓰러졌고, 끝내 중환자실에서 숨졌다. 스물네 살이었다.

아픈 사람이 쉬는 것. 이보다 당연한 일이 있을까.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이 당연한 일은 법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에는 휴가 규정이 있지만, 병가에 관한 조항은 한 줄도 없다. 국가공무원은 국가공무원 복무규정(14조·24조) 및 관련 규정에 따라 연 최대 60일의 유급병가를 보장받지만, 그런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 민간 노동자는 사용자의 재량이나 단체협약에 기대야 하는 구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법정 유급병가와 공적 상병수당이 모두 없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보장 최저기준 협약(102호)'에서 질병으로 인한 소득상실 보호를 사회보장의 핵심 요소로 강조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는 비준 계획이 없다.

문재인 정부 때 코로나19를 계기로 상병수당 논의가 본격화됐다. 2020년 7월 노사정 사회적 협약을 통해 도입 필요성을 확인했고, 이후 제도 설계를 위한 연구가 진행됐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국정과제로 포함해 2022년 7월부터 일부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단계적 확대와 제도화를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금까지도 법제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재계의 반발을 등에 업은 관료들의 시간끌기다. 혹자는 재원을 탓하지만, 재원은 없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 쓰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11월 감사원은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출되는 모성보호급여에 대한 일반회계 분담률이 낮다는 점을 지적하며 구조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출산·육아 지원은 저출생 대응이라는 국가적 과제인데, 우리나라는 그 비용을 국가재정이 아니라 노사가 낸 고용보험료에서 끌어 쓰고 있다. 독일은 부모수당을 일반회계에서 지급하고, 스웨덴은 별도의 부모보험 기금으로 운영한다.

우리나라 역시 비용 지출 구조를 정상화·효율화하면 상당한 재정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담배나 술에 부과되는 건강증진 관련 재원 역시 중요한 검토 대상이다. 새로운 세금을 만들지 않고도 기존 재원의 용도를 바로잡는 것만으로 충분한 재원 확보가 가능하다.

업무 외 부상·질병에 대비해 필요한 입법은 세 가지다. 첫째, 근로기준법상 휴가에 유급병가를 추가해 단기 상병(傷病) 초기에 사용자의 휴가 보장과 임금 지급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둘째, 국민건강보험법 50조의 상병수당 관련 규정을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제도로 전환해 장기 상병시 사회보험으로 소득을 보전하는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 체계 안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를 포함시켜 보편적 안전망으로 한 걸음 다가가야 한다. 이때 사용자가 불명확한 경우 국가가 보호자 역할을 해줘야 한다.

부천 유치원 교사는 "쉬라고 말 안 했는데 어떻게 쉬냐"고 했다. 이제는 법이 말해야 한다. 아프면 쉬라고. 쉬어도 된다고. 쉬는 동안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더 이상 이런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2025년 9월, 49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을 출범시키고 상병수당의 실질적 제도화를 촉구했다. 이들은 상병수당이 일부가 아니라 '일하는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제도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불안정 노동자가 배제될 경우 질병으로 인한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국적·소득·연령과 무관한 전면 적용 △최저임금 이상의 소득보장 △대기 기간 단축과 충분한 보장기간 △국고지원 의무화 △ILO 기준에 부합하는 제도 설계 등을 요구하며 '아프면 쉴 권리'의 제도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밝혔다. OECD 꼴찌인 'K-노동'. 이제 분발할 때다.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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