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약세의 구조적 이유…왜 오르냐가 아니라 왜 내리지 않냐를 보라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전쟁이 만든 공포가 환율을 밀어 올린 것은 맞다. 하지만 이번 급등을 단순한 '전쟁 프리미엄'으로만 보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지금 시장이 맞닥뜨린 문제는 일시적 급등보다 고환율의 장기화 가능성이다. 전쟁이 끝나도 환율이 예전 자리로 곧장 돌아가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변정규 다이와증권코리아 본부장은 현재의 1500원 환율을 분명히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IMF 외환위기 같은 특수 국면을 제외하면 이런 숫자는 흔치 않았다. 다만 그가 더 중요하게 본 것은 지금의 1500원이 아니라 이미 오래 지속돼 온 1300원대와 1400원대 흐름이다. 최근 전쟁으로 추가된 상승폭은 대략 50원에서 100원 수준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이전부터 원화 약세는 이미 구조화돼 있었다는 분석이다. 지금 시장이 놀라는 이유는 숫자 자체보다 그 숫자가 낯설지 않게 돼 가는 과정에 있다.
전쟁은 계기일 뿐이고 본질은 원화가 왜 이토록 오랫동안 약한 통화가 됐는지에 있다. 변 본부장의 첫 번째 축은 달러 강세다. 전쟁이 벌어지면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고 달러 수요가 늘어난다. 환율은 상대 가격이기 때문에 달러가 강해지면 원화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 금리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겹친다. 중동 리스크로 에너지 가격이 불안해지면 미국의 금리 인하가 늦어질 수 있고 이는 달러의 가격이 더 오래 높게 유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전쟁이 끝나더라도 달러 강세의 구조가 남아 있다면 환율 하락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축은 한국 내부의 금리와 유동성 흐름이다. 변 본부장은 2019년 말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모두 1.75%였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후 미국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5.5%까지 끌어올렸지만, 한국은 3.5% 수준까지 따라가는 데 그쳤다. 이후 한국은 비교적 빠르게 금리 인하 기대를 키웠는데 이런 흐름이 2024년 이후 1400원대 환율 고착화의 배경이 됐다. 금리와 유동성, 환율은 따로 놀지 않는다. 금리 차가 벌어지고 원화 유동성이 늘어나는 동안 달러가 상대적으로 더 희소해지면 원화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환율은 단순히 외환시장의 숫자가 아니라 한 나라 통화의 신뢰와 자금 흐름, 금리 정책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다. 그래서 고환율이 이어질 때 시장은 단지 달러 값이 비싸졌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외국인 자금 유출 가능성과 기업 자금 조달 비용 상승, 물가 압력까지 한꺼번에 고려한다. 원화 약세가 오래 가면 그 자체가 또 다른 원화 약세의 재료가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세 번째 축은 에너지다. 이번 전쟁이 민감한 이유는 장소 때문이다. 중동은 세계 에너지 공급의 핵심이며, 한국은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다. 호르무즈 해협 같은 요충지의 불안이 커지면 한국 경제는 단순 심리 충격을 넘어 실물 압박을 받는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중앙은행의 금리 판단을 더 어렵게 만든다. 경기는 둔화되는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가까운 압박이 시장 전반에 번지게 된다.
환율 문제는 기업 현장으로 바로 연결된다. 변 본부장은 고환율 국면에서 가장 취약한 곳으로 중소기업을 지목했다. 대기업은 납품 단가와 구매 단가를 조정할 협상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비싼 환율로 원재료를 들여오고도 이를 판매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금은 더 필요해지는데 금리는 높고 신용은 까다로워진다. 고환율이 수출기업에 무조건 유리하다는 통념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이유다.
네 번째 축은 글로벌 신용 환경이다. 변 본부장은 사모신용 시장과 연준 레포 잔액 증가를 언급하며 달러 유동성이 예전만큼 넉넉하지 않다고 봤다. 은행들이 시장에서 싸게 돈을 구하지 못하고 중앙은행에 손을 벌리는 흐름은 금융 시스템 내부의 긴장을 뜻한다. 하반기로 갈수록 이런 신용 이슈가 부각될 수 있으며, 이는 곧 '꼬리 위험(Tail Risk)'이 커졌다는 판단이다.

정부 대책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과 해외 투자자 자금 복귀 유도 등은 분명 의미 있는 제도적 시도다. 국채시장으로 외국 자금이 들어오면 금리 상승 압력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이런 대책은 충격을 완화하는 힘일 뿐, 구조적 달러 강세와 금리 차를 한꺼번에 뒤집을 정도의 수단은 아니다. 결국 원화 자산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회복이 병행되어야 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원화와 엔화의 동조화다. 과거 원화는 위안화와 함께 움직인다는 해석이 많았지만, 최근 1년 사이 엔화와 더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을 향한 대규모 투자 패키지 부담과 달러 강세 환경 속에서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원화 약세를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포보다 구조를 보는 시선이다. 1500원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숫자이지만, 그 숫자가 등장한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숫자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의 환율은 뉴스 한 줄이 만든 가격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쌓인 구조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이번 1500원은 순간의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맞이한 시대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