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 비용·책임 부담에 ‘공공형 계절근로자’ 외면

광주일보 2026. 4. 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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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침해·착취 악순환 계절 근로자들의 눈물] <4> 수협·지자체의 무관심
법무부, 육상 업무로 한정
어선·양식 어민들 ‘속앓이’
인권 침해·환경 개선 요원
해남 수협, 제도 적극 이용
사용자·근로자 모두 만족
해남군 화산면 만호해역 인근에 있는 김가공 공장에서 공공형 계절근로자들이 김 포장 작업을 하고있다.
지난 4일 오전 10시께 찾은 해남군 화산면 만호해역 인근 김 가공공장. 평소라면 바다에서 건져 올린 김을 세척·절단하는 작업으로 분주해야 할 공간이지만, 이날은 조용했다. 이곳은 수협이 제공하는 공공형 계절근로자 제도가 적용돼 조업을 못 나가도 인건비 등 부담을 고용주에게 지우지 않다 보니, 초조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김 가공공장 대표 소재근(67)씨는 “일손이 부족할 때 하루 12만~14만원 수준으로 인력을 활용할 수 있어 인력난 해소에 유익하다”며 “수협 중심으로 공공형 계절근로자가 확대된다면 어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라오스 몰리캄사이 출신 캄판 웨아(31)씨는 “숙소도 깨끗하고 임금이 안정적인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솜폰 포사왕(34)씨도 “공공형 계절근로자로 선발됐다고 주변 친구들과 가족에게 말하니 다들 ‘돈 많이 벌겠네’라고 말하며 축하해줬다”며 “쉬는 날에는 시내에 나가고 가족과 영상통화도 하며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조업을 못 하는 날에도 걱정이 없는 차분한 어가의 모습은, 해남을 제외한 전남 어가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전남은 전국 최대 수산업 도시다. 어항만 1095개로 전국(2299개)의 47.6%에 달하고 어가 수(1만 5611어가)도 전국(4만 890어가)의 38.2%를 차지하고 있다. 어가 인구(3만 2268명)도 전국(8만 3963명)의 38.4%에 이른다.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지난해 바다에서 거둬들인 수산물 생산량(213만t)과 생산액( 3조 6219억원)도 전국 생산량(355만t)의 60%, 생산액(9조 170억 원)의 40%로 전국 1위다. 이런데도, 고령화와 ‘탈 전남’으로 빠져나간 전남 수산업을 도울 일손 확보에는 인색하기만 하다.

당장, 해남(50명)을 제외한 전국 시·도 지자체와 수협은 책임과 비용 부담을 이유로 ‘공공형 계절근로자’ 제도를 외면하고 있다. 농촌형 계절근로자만 올해 전남지역 11개 시·군 21개 농협에서 645명을 확보, 농촌 일손난 해결에 나서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공공형 계절근로자 제도는 농협·수협 등 공공기관이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 필요한 농가·어가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비자 발급부터 숙소 제공, 임금 지급까지 공공이 맡아 불법 브로커 개입과 인권 침해를 줄일 수 있는 구조로 평가된다.

농·어가는 필요한 시기에만 인력을 활용하고 근로자가 일한만큼의 일당만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고정적인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근로자도 공공기관이 임금을 관리하다 보니 안정적인 고용과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 어민 부담을 줄이면서 열악한 환경 개선과 인권침해 등의 요인도 해소할 수 있는 만큼 공공형 도입·확산이 절실하지만 수협은 외면하는 모양새다.

전국적으로도 어업형 계절근로자의 경우 2022년 1876명에서 올해 5880명으로 3배 가량 늘었지만 공공형은 해남수협이 지난해 50명 규모로 시범 운영 한 게 전부다. 수협 관계자들은 비용 부담, 책임 소재 등을 이유로 들어 제도를 도입할 생각이 없다고 못박았다.

장유명 고흥군 수협 지도과 주임은 “공공형 계절근로자를 운영하면 숙식 제공부터 작업반장 선발, 인력 관리까지 수협이 사실상 인력사무소처럼 운영해야 한다”며 “사고나 이탈이 발생할경우 책임이 모두 조합에 있어 사업 추진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신지용 강진군 수협 지도과 대리도 “숙소 제공, 이동 지원, 인력 관리까지 전반을 맡아야 해 부담이 크다”며 “해상 작업 중 외국인 근로자 이탈 사례도 있어 관리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 조대영 완도 금일수협 지도과 계장도 “비수기에는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는데도 월급은 지급해야 해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어민들 사이에서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이중고 속에서 수협이 지나치게 몸을 사린다는 목소리가 많다. ‘어업인의 꿈과 희망이 가득한 어촌’, ‘살기 좋은 희망찬 어촌’을 내세운 수협중앙회의 비전이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법무부의 미온적 움직임도 어민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문제로 꼽힌다.

어민들이 일손 부족을 이유로 수년 간 어선·어업 분야에 계절근로자를 도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도, 법무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법무부는 계절근로자 ‘업종별 허용 기준’에 따라 어업형 계절근로자의 경우 해조류·어패류 등 일부 품목, 그것도 육상 가공 중심으로 제한하고 있다. 정작 인력이 가장 필요한 어선 어업에는 근로자를 투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남 지역은 고용노동부 집계상 20t 이상 어선, 양식업 관련 외국인 근로자가 5572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요를 보이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는 시설원예·과수·채소·곡물·가공 등 대부분 분야에서 계절근로자를 활용할 수 있는 농업형과는 대조되는 상황이다.

이상준 수협중앙회 어업인력지원부 팀장은 “어업인들 사이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를 어선에까지 투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많아 지난달에도 두 차례에 걸쳐 법무부에 계절근로자 활용 범위 완화를 건의했지만 법무부와 해양수산부가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제한을 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하성민 기자 hs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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