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놓은 칼잡이

나는 외과 전문의다. 나에겐 쌍둥이 동생이 있는데 그녀도 외과 의사이다. 똑같이 생긴 우리는 같은 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나란히 외과 전문의가 되어 지금도 같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생김새와 목소리뿐 아니라 하는 일까지 같았던 우리를 보며 환자도 동료도 늘 헷갈리면서도 흥미로워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살아가고 있다. 나의 쌍둥이 자매님(나는 병원에서 이렇게 부른다)은 대장항문외과 교수로서 대장암 환자들 수술을 주로 맡고 있고, 나는 외과 병동에서 수술 전후 환자를 돌보는 입원전담전문의로 일한다.
외과 의사는 흔히 '칼잡이'라고 부른다. 나는 평생을 칼잡이로 살 요량으로 외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두 번의 결심 끝에 더 이상 수술을 하지 않는 외과 의사가 되었다.
첫 번째 결심은 의학교육이라는 길로의 전환이었다. 수련 시절 나는 현대 의료가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전공의가 온전히 환자를 파악하고 전체를 보며 치료를 이끌고 갈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전문의를 거쳐 간담췌 외과 전임의(펠로)를 하면서부터는 '내 환자'와 '내 수술'이 생겼다. 그만큼 수술방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내 앞으로 입원한 환자를 볼 시간은 늘 부족했다. 수술과 회복, 처방과 설명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란 쉽지 않았다.
이렇게 지극히 파편화된 의료 시스템 속에서 한 사람이 모든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이런 경험 속에서 우리 의료시스템을 전체적으로 보는 힘을 기르고 싶어졌다. 의료 시스템을 작동하는 것은 결국 의료 인력이고, 이 인력을 기르는 것은 의학교육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전임의를 마치고 나는 조금은 낯선 의학교육학 펠로를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쥐고 있을 것이 당연할 것 같았던 칼을 내려놓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두 번째 결심은 입원전담전문의가 되는 것이었다. 의학교육학 펠로 과정을 마칠 즈음, 다시 수술방으로 돌아갈지 말지 생각이 깊어졌다. 임상가이자 교육자(Clinician-educator)로 일할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며 여러 가능성을 찾아보았다. 수술 중심의 생활 속에서 의학교육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때 입원전담전문의가 임상교육자가 되기에 적합하며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주임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칼을 내려놓기로 했다.
외과에서 입원전담전문의의 역할은 환자가 입원하는 시점부터 퇴원할 때까지, 수술을 제외한 전후를 책임지는 것이다. 여전히 칼잡이인 나의 자매님과 함께 일하는 입원전담전문의의 삶은 생각보다 역동적이다.
자매님이 집도한 환자가 수술방에서 나오면 입원의학과로 전과되어 나에게 넘어온다. 물론 자매님은 공동주치의 '신분'으로 함께 환자를 돌본다.
아침 회진 때 성함을 부르며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환자는 나를 보고 잠시 놀란다. 그리곤 금세 배를 부여잡고 웃음을 터뜨린다. 전날 수술해준 의사와 똑같은 얼굴과 목소리인데 전혀 다른 의사라니! 수술 후 첫날이라 배가 아직 많이 아플텐데, 힘들고 지친 병원 생활에서 그래도 3초간의 웃음은 꽤 위로가 되는 모양이다.
외과의사들이 수술장에서 하루 종일 수술하는 날, 그리고 빡빡한 외래일정이 있는 날이면 입원환자들은 집도의 회진을 기다리며 목이 빠진다. 그럴 때 입원전담전문의가 일정한 시간에 환자를 만나 경과를 설명하고 그때그때 발생하는 문제를 신속히 해결한다. 이는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 파편화된 의료를 환자 중심으로 다시 연결하는 과정이다.
병동에는 다양한 환자들이 있다. 예정된 수술을 위해 입원한 환자들은 수술을 견딜 수 있는 정도로 몸 상태가 받쳐주는 분들이어서 수술 후 회복이 쉽다.
그러나 응급상황에서 수술을 받고 긴 회복 과정을 견뎌야 하는 환자들도 있다.
특히 중증 감염이나 장기 기능 저하를 겪은 환자들은 퇴원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은 체력이 버틸 수 있을지 평가할 여유도 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수술을 받는다. 단기적인 회복 뿐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을 함께 세워야 하는, 긴 호흡의 싸움이 이어진다.
또 어떤 환자들은 수술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입원한다.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다가 적절한 시점에 수술을 결정하거나, 때로는 수술 없이 회복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 수술 타이밍을 제대로 잡아내는 것, 그 판단의 균형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병동에서 무엇보다도 힘을 쏟는 것, 바로 교육이다. 병동은 단순한 치료 공간이 아니라, 임상 추론과 책임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다. 이번 학기에는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이 2주마다 입원의학과 실습을 나오고 있다. 나는 그들이 환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를 함께 상의하며 지도한다. 처음 병동에 던져져 환자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막막한 1년차 전공의들에게는 병동 진료의 A부터 Z까지 밀착 교육하고 있다. 이전에는 누군가 이렇게 일일이 가르쳐 주는 일이 많지 않다 보니, 전공의들은 귀에서 딱지가 생길 것 같다고 귀여운 투정을 하지만, 그래도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다.
외과의사인데 수술을 안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애써 달려왔던 멀쩡한 길을 버리고 왜 낯선 갓길로 나왔냐며.
난 더이상 칼을 쥐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환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만의 또 다른 방식으로 환자를 살리고 있다.
이은혜 교수

<편집자주>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이은혜 교수 (elee531@yuhs.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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