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형편없는 감독이었다”… 아니, GS칼텍스의 6전 전승 무결점 우승은 이영택 감독·각본, 실바 주연의 ‘명장 비긴즈’ 영화 한 편이었다 [남정훈의 오버 더 네트]

남정훈 2026. 4. 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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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남정훈 기자] 사령탑 본인조차 목표를 우승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봄 배구 진출 정도? 그러나 우주의 온 기운이 그들의 우승을 위해 몰렸나보다. 감독 본인은 스스로를 “형편없는 감독”이라고 낮추지만, 아니다. 6위에 머물렀던 직전 시즌과 비교해 선수단 구성이 달라진 게 거의 없는데,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건 감독의 역량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2025~2026 V리그 여자부 봄 배구는 ‘명장 비긴즈’ 영화 한편을 봤다고 해야 할까. 오로지 승리를 위해, 팀 전력을 극대화했고, 결국 여자부 사상 첫 준플레이오프를 거친 팀의 우승을 만들어냈다. GS칼텍스의 2년차 사령탑 이영택 감독 이야기다.

GS칼텍스는 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도로공사를 세트 스코어 3-1로 제압하며 3전 전승의 완전무결한 우승을 거머쥐었다.

챔프전만 전승이 아니다. 2021~2022시즌에 페퍼저축은행이 7구단으로 가세하면서 여자부에도 준플레이오프가 신설됐지만, 올 시즌에야 처음으로 열렸다. GS칼텍스는 3위로 봄 배구에 진출해 4위 흥국생명과 준플레이오프 단판 승부를, 2위 현대건설과 플레이오프 2경기도 모두 잡아냈다. 봄 배구 6전 전승. 최근 이렇게나 완벽하고도 단계 단계를 밟아온 우승이 있었던가.
시상식 뒤 벌개진 눈으로 인터뷰실에 들어온 이영택 감독은 “꿈만 같다. 지도자를 시작하고 항상 꿈꿔왔던 자리인데, 선수들 덕분에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선수들에게 너무너무 고맙다”라고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어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자꾸 눈물이 납니다. 우리 선수들만 보면 자꾸 눈물이 나고 그러네요”라고 운 이유를 설명했다.

챔프전 3경기 도합 104득점.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까지 6경기를 합치면 218점. 경기당 36.3점을 해준 실바가 없었다면 절대 이뤄내지 못했을 쾌거다. 실바를 향해 이 감독은 “정말 대단하다. 어떤 말로도 표현이안 된다”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3세트에 무릎 통증이 올라와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그럼에도 빼주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했다. 근데 또 실바 본인이 이겨내더라. 정말 대단한 선수”라고 다시 한 번 쿠바에서 건너온 에이스의 투혼에 진심 어린 존경심을 드러냈다.

4라운드까지 진행된 전반기를 11승13패, 5위로 마쳤을 때만 해도 GS칼텍스의 봄 배구 진출 가능성은 어두웠다. 그때만 해도 우승이라는 결과는 이 감독 본인조차 상상도 못했던 미래였다. “일단 봄 배구만 가보자, 이게 첫 목표였죠. 시즌을 준비하는 훈련 과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시즌 초반 레이나(일본), 안혜진의 부상 이탈 등으로 고비가 많았죠. 우여곡절 끝에 봄 배구를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확정하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죠. 저는 물론 주변에서도 단기전에는 폭발적인 에이스 한 명이 ‘하드캐리’할 수 있으니까. 우리에겐 실바라는 선수가 있으니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실바가 해줬어요. 선수들 체력이 고갈된 상태라 한 경기라도 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는데, 단 한 경기도 지지 않고 해냈다”

GS칼텍스의 우승은 이영택 감독의 지휘 아래 코트 위에서 모든 선수들이 실바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만들어낸 게 첫 번째 원동력이지만, 상대인 도로공사의 헛발질도 큰 몫을 했다. 정규리그 1위로 챔프전에 직행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한 도로공사는 정작 챔프전을 앞두고 김종민 감독을 내치는 결정을 내렸다. 김종민 감독과 이영택 감독은 대한항공 시절 선수와 선수로, 선수와 코치로, 선수와 감독으로까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그랬기에 이영택 감독은 김종민 감독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드러낸 뒤 “저도 과거에 정관장에서 대행을 맡아 시즌 중 팀을 지휘해본 적이 었는데, 굉장히 정신없고 어렵다. 김영래 감독대행도 대한항공 시절 후배인데, 그 자리를 챔프전을 앞두고 맡아서 그랬을 것이다. 이게 우리에겐 기회가 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GS칼텍스를 맡아 지휘한 지난 두 시즌을 평가해달라는 말에 이 감독은 “제 평가를 스스로 하기가 좀 그렇다. 지난 시즌이야 뭐 평가할 게 있겠습니까? 14연패에 겨우 꼴찌를 벗어난 ‘형편없는 감독’이었다”라고 한껏 몸을 낮추는 모습이었다. 이어 “지난 시즌과 비교해 올 시즌은 레이나가 새로 온 것 빼고는 달라진 게 없는 선수 구성이었다. 그럼에도 봄에 가장 많은 경기를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선수들은 훌쩍 성장했지만, 저는 아직 그대로 인 것 같습니다”라고 다시 한 번 선수들의 공을 치하했다.

봄 배구를 쉼없이 달려온 이 감독은 이제 차기 시즌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간다. “우리 팀 내부 FA 선수들과 챔프전까지 치르느라 일절 FA 관련 대화를 하지 못했다. 그들부터 붙잡을 수 있게 노력해야죠. 그리고 실바와 많은 대화를 해야할 것 같다. 실바가 은퇴하지 않는다면, 우리랑 계속해서 함께 할 수 있게 대화를 해보려 한다. 지난 시즌엔 후반기부터 같이 하자고 얘길 나눴고, 일찌감치 재계약이 결정됐는데, 올 시즌엔 그렇지 못했다. 이제부터 부지런히 해보고자 합니다. 외부 FA요? 생각은 굴뚝 같은데, 안 와서 말이죠. FA 시장이 열리면 필요한 선수들이 있다면 직접 뛰어다니며 만나보려고요”

에필로그
 
우승 뒷풀이 축하연에서 이영택 감독의 우승을 위한 갖가지 노력을 더 들을 수 있었다. 이영택 감독은 시즌 막판, 승리를 위해 많은 것을 바꿨다. 선수단 숙소도 바꿔보고, 자신만의 징크스를 만들고 그 징크스대로 했다가 승리하면 그것을 또 반복했다. 예를 들면 장충체육관 홈 경기 때 선수단이 묵는 숙소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명동 성당에 가서 촛불에 불도 붙이고, 기도도 했다. 그리곤 명동 근처에 화상이 운영하는 중국집의 중화요리를 먹고 경기에 임했는데 이겼다. 이후엔 코칭스태프들과 함께 명동까지 걸어갔다가 중국집까지 들르는 게 징크스가 됐다. 승리한 날의 속옷도 세탁해서 계속 입었다. 경기력 준비 외에도 팀이 이길 수만 있다면 뭐든 했던 이영택 감독이다. 그만큼 간절하게 2025~2026시즌을 치렀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장충의 봄’은 어느 해보다 화려하게 빛났고, GS칼텍스는 봄의 전설을 써내려갔다.

장충=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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