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 비만약 전쟁’…K바이오, 위고비·마운자로에 도전
주사·가격 장벽 낮아지자 국내 제약·바이오 신약 경쟁 가세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비만약 등장에 항공 업계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승객이 가벼워지는 만큼 항공유 소비량도 줄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규모가 상당하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비만약 복용으로 탑승객의 평균 체중이 10%(약 8kg) 감소하면 미국 내 주요 항공사들은 연간 5억8000만 달러(약 8500억원)의 연료비를 아낄 수 있다고 예상했다. 클로이 르마리 골드만삭스 제약 부문 애널리스트는 비만약에 대해 "보험·피트니스·의류·노동 시장 전반의 연쇄적인 밸류에이션 재조정을 유발하는 역사적 메가트렌드"라고 진단했다.
비만약은 제약·바이오 산업의 혁신을 넘어 전 세계의 경제와 사회를 뒤흔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그런 비만약 시장에 지각변동이 생겼다. 올해 초 '먹는 위고비'가 출시되며 비만약 대중화의 문을 연 데 이어, 최근 오젬픽·위고비의 핵심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의 특허가 일부 국가에서 만료되며 복제약 시장 진입이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위고비)와 미국 일라이 릴리(마운자로)가 양분해온 글로벌 비만약 시장의 권력 구도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한국인 맞춤형, 추가 기전, 투약 편의성 등 차별화 전략을 무기로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황금알 낳는 거위' 된 비만약
비만 치료제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의 블랙홀이다. 전 세계 자금과 인력을 모두 빨아들이고 있다. 비만약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폭발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체적인 지표로도 확인된다.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세계 비만약 시장 규모는 2024년 300억 달러(약 44조6500억원)를 넘어섰다. 2020년 대비 10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주요 조사기관들은 2030년 비만약 시장이 2000억 달러(약 297조6800억원)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연평균 7%대 성장률을 기록하며, 2030년 7000억원대 규모까지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만약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부상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은 치열한 시장 선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 세계에서 임상 등 상업화 개발이 진행 중인 비만 치료제 파이프라인은 총 193개에 달한다. 경쟁은 한층 과열될 전망이다. 노보 노디스크의 핵심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의 물질 특허가 중국과 인도 등 일부 국가에서 만료되기 시작하고 있어서다. 누구나 동일 성분의 약을 만들어 팔 수 있다는 의미다.
제약시장 조사업체 파마락은 올해 인도에서만 약 50개 이상의 복제약 브랜드를 출시할 것으로 분석했다. 예상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과 로이터 등에 따르면, 인도 제약사 에리스 라이프사이언스와 닥터레디스래버러토리스는 지난 3월 위고비 복제약 주사제인 '선데이'와 '오베다'를 각각 출시했다. 선데이의 경우 최저 용량(2mg) 기준 월 1290루피(약 2만원)로, 위고비의 약 12%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비만약 개발 및 상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저가 복제약과의 출혈경쟁을 피하기 위해 '혁신 제형' 도입에 승부수를 띄웠다. 국내 비만약 시장에서는 한미약품이 선두에 있다.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 HM15275, HM17321 등 3개 파이프라인을 개발 중이며, 2027년부터 차례로 상용화할 계획이다. 각 비만약은 기존 제품과의 차별화에 중점을 뒀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한국인 맞춤형'을, HM17321은 '근 손실 회복'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특히 HM15275는 1세대(위고비)와 2세대(마운자로)에 이은 3세대 비만약이다. 1세대는 단일 호르몬인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에 작용해 뇌의 포만감 중추를 자극함으로써 식욕을 억제하고, 2세대는 GLP-1과 대사 호르몬인 위억제펩타이드(GIP) 수용체를 동시에 타깃해 식욕 억제와 대사 촉진이라는 이중 기전을 가진다. 한미약품의 HM15275는 2세대의 기전에 글루카곤 수용체도 공략해 혈당까지 관리할 수 있다.
K비만약, '혁신 제형'으로 승부수
셀트리온은 3세대를 넘어 4세대 비만약 'CT-G32' 개발로 직행했다. CT-G32는 3세대의 3중 기전에 아밀린을 추가로 겨냥해 근 손실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셀트리온은 오는 5월 CT-G32의 허가용 동물임상에 나설 예정이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2027년 임상 1상에 돌입할 계획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복부에 바늘을 찔러야 하는 피하주사(SC) 제제의 불편함에 주목해 투약 편의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제약사도 있다. 먹는 비만약이 대표적이다. 일동제약은 저분자 화합물 기반의 경구용 비만약 'ID110521156'의 초기 임상에서 유의미한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삼천당제약과 디앤디파마텍도 경구용 비만약 개발을 진행 중이다.
대웅제약은 마이크로니들 패치 형태의 '붙이는 비만약'을 개발하고 있다. 피부에 반창고처럼 붙이면 체온에 의해 미세한 바늘(마이크로니들)이 녹으면서 약물이 체내로 서서히 흡수되는 원리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10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 1상 시험계획(IND) 승인을 획득했다. 대원제약도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을 마이크로니들 패치제로 전환하는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임상 단계로 패치제 중에서는 속도가 가장 빠르다.
펩트론과 인벤티지랩은 약효 지속 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린 '장기 지속형 비만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 1회 투여해야 하는 기존 비만약과 달리 한 번 주사하면 약효가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분기 단위까지 유지되는 기술이다. 잦은 투약으로 인한 피로도를 낮추고 혈중 약물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부작용을 줄이는 게 목표다.
향후 K비만약은 '가격'과 '공급 안정성'을 바탕으로 국내 비만약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설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국산 비만약이 출시될 경우 수입산 대비 약 30~50% 저렴한 가격 책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차별화된 비만 개선 효과와 복용법을 입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비만 시장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국내 비만약이 글로벌에서 성공하려면 높은 체중 감량 효과는 물론 복용 편의성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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