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사고는 데이터로 막는다”… 항공 안전관리 ‘분석 경쟁’ 본격화
항공사 안전관리 방식이 조종사 경험과 정비 이력 중심에서 벗어나 운항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 체계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비행 과정에서 생성되는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위험 요인을 사전에 탐지하는 방식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과거 항공 안전관리는 사고 발생 이후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사후 대응 중심이었다. 조종사의 경험과 매뉴얼, 정비 이력에 의존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항공기 운항이 복잡해지고 기재 성능이 고도화되면서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리스크를 충분히 통제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드러났다.
이에 따라 최근 항공사들은 비행 중 생성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관리하는 체계로 전환하고 있다. 단순히 사고를 줄이는 수준을 넘어 운항 효율과 비용 관리까지 동시에 고려하는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항공기 운항 횟수 증가와 글로벌 노선 확대, 기재 운영 방식 변화 등이 맞물리면서 데이터 기반 안전관리 체계는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 역시 항공 안전 데이터 관리 체계 고도화에 나서며 이러한 흐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데이터 수집·분석 체계를 강화하고 항공사 시스템과의 연계를 확대하는 방향이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항공 안전 데이터의 표준화와 공유 범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항공사별로 축적된 데이터를 일정 기준에 따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산업 전반의 안전관리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이다.
항공 안전관리의 중심이 경험에서 데이터로 이동하면서 항공사별 대응 방식에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데이터 수집과 분석, 운영 반영 수준에 따라 안전관리 체계의 완성도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요 항공사들은 데이터 기반 안전관리 체계 구축과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한항공, 데이터 기반 운항 효율 관리… 연료·안전 관리 체계 고도화
대한항공은 운항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료 효율과 안전 관리를 동시에 강화하는 운영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항공기 운항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활용해 운항 방식과 연료 사용을 정밀하게 관리하는 구조다. 이는 운항 효율과 비용 관리까지 연결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대한항공은 전사 차원의 연료관리체계를 운영하며 운항 관련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매 분기 연료관리위원회를 통해 운항 현황과 효율 개선 방안을 검토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항공기 운항 전반에 걸친 관리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운항 효율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식도 데이터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제 운항 속도를 적용하고 최단 비행 경로를 확보하는 등 비행 계획 단계에서부터 연료 소모를 줄이는 전략이 적용된다. 탑재 중량 예측과 항공기 무게 중심 관리 역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정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실제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2025년 운항 편수가 증가한 상황에서도 탄소 배출량을 약 3.3% 줄였다. 데이터 기반 연료 관리와 운항 효율화 전략이 배출 감소로 이어진 결과로 평가된다.
아울러 대한항공은 수기로 관리하던 운항 데이터를 디지털화하고 인공지능(AI) 기반 분석 기술을 도입해 관리 수준을 높이고 있다. 여객 수하물 중량 등 다양한 변수를 분석해 연료 사용을 최적화하는 방식이다. 데이터 기반 운항 관리가 안전과 효율을 동시에 고려하는 방향으로 확대되는 흐름이다.
◇제주항공, 운항 데이터 분석 고도화… 안전관리 체계 정비
제주항공은 항공안전 품질 데이터를 기반으로 데이터 중심의 안전운항 체계를 강화하고, 하반기 진행 예정인 위험기반 IOSA(국제항공안전평가) 인증 준비를 마쳤다.
제주항공은 2025년 한 해 동안 ▲운항 ▲정비 ▲객실 ▲운항통제 ▲운송 등 모든 사업 부문에서 수행한 총 779건의 품질심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데이터 기반의 위험 요인을 사전에 식별하고, 근본 원인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안전관리 체계를 고도화해 나가고 있다.
또 인적 오류 예방을 위한 데이터 기반의 인적요인 분석시스템인 HFACS(Hum an Factors Analysis and Classification System)를 적극 활용해 환경·조직·시스템적 요인을 점검하고 개선활동을 이어가며, 인적 오류 예방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새롭게 도입한 위험기반 IOSA 인증 준비를 완료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안전관리 체계도 구축했다. 위험기반 IOSA는 최근 IATA가 항공안전 관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항공사별로 안전 데이터를 분석하고, 핵심위험 요인을 점검하고자 도입한 차세대 심사 체계다. IOSA는 IATA가 실시하는 국제항공안전 평가 제도다. 제주항공은 2009년 인증을 획득한 이후 2년 주기로 재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제주항공은 데이터 분석 결과를 공유하고,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달 31일 서울지사에서 전사 품질심사자 및 실무담당자가 참석한 ‘2026년 전사 품질보증(Quality Assurance) 워크숍’을 개최하고 주요 개선 과제와 적용 사례를 점검했다.
◇티웨이항공, 보잉 안전 프로그램 참여… 외부 데이터 활용 확대
티웨이항공은 글로벌 항공기 제조사 보잉의 안전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운항 안전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마일스 브라운 보잉 글로벌 안전 관리국 총괄과 앤드류 굿살 보잉 아시아태평양 총괄 수석 기장이 티웨이항공 훈련센터를 방문해 운항본부 및 안전보안 부서와 프로그램 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실무 개선 사항을 논의했다.
티웨이항공은 보잉의 안전지원 프로그램 중 ▲필드 서비스 지원(FSR) ▲운항 안전 자문(FOR) ▲보잉 글로벌 서비스 훈련 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국내 항공사 중 가장 폭넓게 참여하며, 사전 예방 활동을 고도화하고 전사 안전관리 수준을 지속 높이고 있다.
정비 분야에서는 보잉 FSR 프로그램을 통해 현장 대응 역량과 정비 품질 표준을 강화하고 있다. 운항 분야에서는 FOR 프로그램을 통해 보잉과의 협력을 한층 강화하고, 보잉으로부터 맞춤형 자문을 지속 제공받아 실무 개선에 반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데이터 기반 성과 모니터링과 규정 준수, 일관된 운항 수준을 높이고 있다. 또 FOR 프로그램은 티웨이항공이 운항 관련 이슈를 보잉에 공유하고 피드백을 전달할 수 있는 추가 채널로도 활용되고 있다.
조종사 훈련 분야에서는 역량 기반 훈련 및 평가(CBTA)를 도입해 운항·훈련 데이터를 기반으로 커리큘럼 개발에 반영하고,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훈련 효과를 지속 개선하고 있다.
티웨이항공은 운항·정비·훈련 전 과정에서 안전관리시스템(SMS)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보잉 안전지원 프로그램을 통한 지속적 피드백을 바탕으로 안전 성과와 운항 신뢰도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스타항공, 통합안전관리시스템 구축… 운영 데이터 연계 확대
이스타항공은 통합안전관리시스템(ESMS)을 구축해 운항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안전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ESMS를 통해 비행 분석, FOQA(비행 경향성 분석), 인적자원 시스템과 연동된 위험 분석 기능을 운용 중이다.
또 항공기 제작사의 기술 자문도 받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국적 항공사 최초로 보잉의 운항·안전 전문 조직 FOR(Flight Operations Representative)와 ‘안전 운항 서비스 지원 협약’을 체결했다. 보잉 운항 전문가는 주 1회 이스타항공 본사에 상주하며 실시간 기술 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양사는 운항 기술 지원, 조종사 훈련, 안전 데이터 공유 등 다각적인 협력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노력은 외부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항공평가 기관 스카이트랙스는 2025년 세계 항공 어워드에서 이스타항공을 ‘대한민국 최고 저비용항공사(LCC)’로 선정했다. B737-8 신기재 도입을 통한 안전성과 쾌적성 기반의 운항, 정보기술(IT) 기반 서비스, 합리적 운임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실제 이스타항공은 안전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항공안전 투자 공시제도’에 따라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LCC의 2025년도 항공 안전 투자 금액은 약 2조4000억원이다. 이중 이스타항공은 6200억원을 투자한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이스타항공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안전운항, 고객편리, 고객의 즐거움”이라며 “모든 비즈니스 판단의 가치를 이 3가지에 두고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에어부산, 조종사별 비행 데이터 분석… 개인 맞춤형 안전관리 도입
에어부산은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최초로 운항승무원 개별 맞춤형 비행경향분석시스템(BFRAS)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비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항 과정에서 발생하는 요소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비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BFRAS는 에어부산의 비행자료분석시스템(FOQA)을 통해 연동 받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행자료 분석 데이터 ▲운항승무원 개별 비행 경향성 ▲비행 경향 통계 자료 등을 자동으로 분석·관리하며 운항승무원에게 이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비행 종료 후 비행 전반에 관련된 분석 자료를 운항승무원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하다.

특히 운항 중 발생하는 각종 이벤트에 대한 분석 자료와 딥러닝 기반의 비행 패턴 탐지 결과 등을 지원해 운항승무원의 비행 경향성을 파악·관리한다. 개인별 비행 기록 영상도 제공함으로써 운항승무원의 효율적인 자가 학습 환경을 구현했다.
에어부산 관계자는 “BFRAS 구축을 통해 비행의 불완전 요소를 사전에 예측·분석함으로써 예방적으로 안전 관리를 할 수 있는 체계를 확보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철저한 안전 관리를 통해 최상의 안전 품질 수준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데이터 기반 안전관리, ‘분석 역량’이 경쟁력으로 부상
항공업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안전관리 방식 자체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경험 중심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데이터 분석 역량에 따라 위험 탐지 수준과 대응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항공사 간 경쟁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이를 얼마나 정밀하게 해석하고 운영에 반영하느냐가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데이터를 활용한 안전관리 체계는 사고 예방뿐만 아니라. 운항 효율 개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료 사용를 비롯해 운항 경로, 기재 운영 방식 등 다양한 요소를 데이터 기반으로 최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 예방 중심 관리가 강화될수록 비용 절감과 정비 효율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정부의 데이터 기반 안전관리 정책 강화와 국제 기준 변화까지 맞물리면서 항공사들의 데이터 투자 확대는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데이터 활용 수준이 규제 대응 능력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항공 안전관리의 중심이 경험에서 데이터로 이동하면서 항공사 경쟁력 역시 데이터 분석 역량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향후 항공산업 전반의 운영 방식과 경쟁 구도를 바꾸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염재인 기자 yji@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