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초제 마신 노인’ 수용할 응급실 없나요”…응급실 뺑뺑이’ 길목 선 환자들 살려낸 방법은

이혜인 기자 2026. 4. 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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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광주광역시 한 사무실에서 광주시응급의료지원단 소속 응급의료진, 지자체 공무원, 구급대원들이 참여한 광주응급의료지원단 회의가 열리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제초제를 마신 80대 노인입니다. 지금 가도 되나요?”

깜깜한 밤, 전화기를 움켜쥔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거절이 돌아오자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번이 네 번째, 큰 병원에서도 받지 못한다는 이 환자를 다른 병원들이 받아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119 구급대는 자다가 갑자기 구토를 한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현관 문 앞에 앉아있던 환자는 “2시간 전에 제초제와 살충제를 섞어서 마셨다”고 말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중요한 건 살리는 일이다. 제초제 음독은 마신 양에 따라 상태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어 빠르게 응급실을 찾아야 하는 ‘매우 긴급’(KTAS 2등급) 수준의 환자다.

환자가 사는 지역은 광주광역시다. 제초제 환자의 해독과 투석 치료까지 가능한 3차 병원은 조선대·전남대병원 응급실 두 곳 뿐이다. 서둘러 연락했으나 “수용이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2차병원 두 곳에도 문의를 했으나 “중증 환자 포화상태다” “치료가능한 전문인력이 없다”고 했다. 구급차는 ‘응급실 뺑뺑이’(응급실 미수용)의 길목에 서 있다. 구급대원이 상황실에 전화를 건다.

“FLT(지역 내 이송병원 결정위원회) 요청합니다.”

같은 시간 6개 병원 응급실. 당직자 컴퓨터 모니터에 알림창이 떴다. ‘**세 환자, PreKTAS 2급, *시경 제초제와 살충제 혼합해 마시고 일어나서 구토 시작, 헛구역질 중. 전남대, 조선대, A병원, B병원에서 수용 불가 응답 받았음.’

전남대·조선대병원 당직자의 메시지가 떴다. “현재 중증 화상 (환자) 봅니다. 여력이 없습니다. 타병원에서 일단 응급처치 후 의뢰주시면 여유 생기는대로 전원 받겠습니다.” 광주 지역 내 유일한 3차 병원 두 곳은 수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때 C병원(2차 병원) 의료진의 메시지가 떴다. “저희 병원에서 일단 받아보겠습니다.”

구급대원이 병원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 지 30여분 만에 상황이 종결됐다. C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고 상태를 관찰하던 환자는 이후 치료를 위해 조선대병원으로 다시 이송됐다. 환자는 살았다.

‘응급실 뺑뺑이’로 갈 뻔한 환자들, 어떻게 지켜냈나

일명 ‘응급실 뺑뺑이’, 응급실 미수용 사태는 한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다. 필수의료 인력 부족, 경증 환자의 쏠림, 구급대원과 의사의 직역 간 갈등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으나, 뚜렷한 해법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부터 보건복지부와 소방청은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풀기 위해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광주·전북·전남 등 3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지역에서 실시하는 이 사업의 핵심은 ‘지역별 이송지침’이다. 지역 내 병원과 구급대 등이 협업해 실제로 작동하는 시·도별 응급환자 이송지침을 정비하는 것이 목적이다.

시범사업 한 달 째에 접어든 지난달 30일 광주를 찾았다. 이날은 분기에 한 번 있는 지역응급의료협의체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는 병원 7곳 의료진을 비롯해 소방상황실, 구급대, 시청에서 온 응급의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3월 1~22일 사이에 있던 환자 이송 사례 총 27건을 하나씩 살펴보고 복기했다. 코피가 멈추지 않는 환자, 피를 토하는 환자, 자궁외임신이 추정되며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만취 상태에서 발기부전제를 복용해 쇼크가 온 남자 등 다양한 사례가 안건으로 올라왔다.

FLT는 ‘지역 내 이송병원 결정위원회’다. 제초제를 마신 80대 노인 환자 사례처럼 구급 대원이 수용 의뢰에 계속 실패할 경우 지속적으로 실패할 경우 지침에 따라 FLT를 요청할 수 있다. 현장 구급대원이 119구급상황관리센터(구상센터)에 요청하면 3차 병원 응급실 2곳, 2차 병원 응급실 4곳의 응급실 당직 근무자가 들어와있는 FLT 플랫폼에 환자 상황이 전달된다.

교통사고 환자의 이송이 지체된 FLT 케이스를 놓고 토론이 펼쳐졌다. 환자는 사고 후 의식이 저하된 상태에서 혈압까지 잡히지 않을 정도로 위급했지만,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대원이 20여 분간 전화를 돌린 뒤 FLT를 요청했다. 회의를 진행하는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광주응급의료지원단장)가 입을 뗐다.

“이건 레벨3(긴급)으로 분류됐지만, 혈압 측정이 되지 않았다는 걸로 봐서는 레벨 1,2(즉시 치료 또는 매우 긴급)까지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병원 선정까지 시간이 좀 많이 걸렸네요. 당시 기록 보시면 3중 추돌 사고가 나서 전남대에서 중증 환자를 여러 명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경우는 FLT를 더 빨리 요청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 참석한 의사가 말을 꺼냈다.

“방금 케이스는 제가 근무 때 왔던 환자인데요, 항상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환자가 여러 명 발생했을 때 구급대원들이 각자 병원을 선정하잖아요. 처음 연락 받았을 때 저희가 (다른 병원이 받을 수 없는) 정보를 알았더라면 FLT를 안 열고 환자를 바로 받았을 것 같습니다.”

참석자들의 의견을 다 들은 조 교수가 말했다. “지금은 FLT를 병원 선정이 안 될 때 여는데, 그 단계를 건너뛰고 환자가 다수일 땐 FLT를 바로 열어도 크게 문제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부적인 건 하면서 이렇게 조금씩 수정해 나가시죠.”

김동기 교수(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가 지난달 30일 응급실 내 모니터를 보면서 응급 환자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회의에 참석한 의료진과 구급대원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업무현장에 대한 이해를 쌓아갔다. 지병이 있는 고령의 환자가 고열로 인해 응급실을 찾은 사례가 있었다. 증상만 놓고 평가하면 KTAS 레벨1(즉시 치료 필요)의 위급한 환자였지만, 알고 보니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 상황이었다.

“레벨1이지만, 만성질환과 상황을 고려해 평가하면 레벨5(비응급, 대기가능)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환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지 않으면 어느 병원에든 수용이 가능했을텐데, 이런 환자에 대해서는 구급대원 분들이 환자나 보호자의 뜻을 한 번 확인해주시면 어떨까요.”(2차병원 응급실 의사)

“아이고, 선생님. 우리 대원들이 보호자 앞에서 ‘연명치료 하시겠습니까’ 말을 꺼내기는 어렵습니다. 교수님들이 말씀하시는 것과는 분위기가 다릅니다.”(박명호 119대응과 구급조정관)

환자와 보호자들은 의사의 말에는 조금 더 권위를 부여한다. 구급대원이 환자나 보호자에게 병원에서의 치료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는 어렵다. 이처럼 구급대원이 환자 상황을 파악하는 데 어떤 한계가 있는지 의사와 구급대원이 서로 잘 알고 있다면, 소통의 잡음을 줄일 수 있다.

자리에 모인 이들은 현장에서 겪는 고충도 나눴다. 행패가 예상되는 만취환자더라도 흉통을 호소하면 KTAS 2등급(매우 긴급)으로 분류돼 응급실에 오곤 한다. 지난달에도 환자가 가장 많은 일요일에 만취 환자가 구급대를 호출해 구급대원과 의료진 모두 고통을 겪었다. 참석자들은 “경찰도 어쩌지 못하는 걸 우리가 어쩌겠느냐”며 위로의 말을 주고받았다.

핵심은 모두가 리스크를 나눠지는 ‘시스템’

광주 지역에서는 시범 사업 약 1년 반전부터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할 지역 지침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했다. 광주응급의료지원단이 있는 전남대병원을 중심으로 소방과 시청, 지역 응급의료기관 21개 병원 전문의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 조 교수는 “지침이야 하루만에도 만들 수 있었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지 않은 지침을 만들어봤자 현장에서 작동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의견 수렴을 위해 공식 회의가 아니라 사적으로 만나서 술도 많이 마셨다”며 웃었다.

정부 시범사업안은 환자 이송이 늦어지면 중앙응급의료센터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사전에 지정해둔 ‘우선수용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도록 강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조 교수는 “우선수용병원은 우리 지역 내 의료진으로는 도저히 치료가 불가능한 극소수의 경우를 위한 백업 수단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한 달간 자칫 응급실 뺑뺑이로 이어질 수 있던 14건은 FLT에서 10~20분 내에 논의해 해결했다. 강제 지정은 한 건도 없었다.

지원단의 부단장을 맡고 있는 김동기 교수(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는 “학생이나 전공의 때는 무작정 환자를 보면서 응급실은 그저 ‘버티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을 계속하다 보니까 무언가 ‘비어있는 곳’이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병원에선 정부가 현장 상황을 이해못하는 지침을 내린다고 투덜대는데, 막상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나 119는 물어볼 곳이 없고 병원은 ‘장벽’을 세우고 있는 느낌이었다”며 “누군가 ‘다리’ 역할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해결이 안 되겠구나 했다”고 말했다.

“나 말고 후배들도 응급실에서 평생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누군가는 만들어줘야 하잖아요. 적어도 내가 사는 광주 지역만큼은 아파도 응급실에 잘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는 마음도 들었고요.”

FLT 회의에는 6개 병원이 참여하지만 플랫폼 상에서는 21개 병원의 상황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시범사업이 시작되면서 광주 지역 내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의료진 대부분이 들어와있는 단체 채팅방도 생겼다. 지역 내에서 응급의료 문제가 생기면 단체 채팅방에 공지를 해서 상황을 공유한다. 앞으로 FLT 회의에는 21개 병원 당직자 모두 참여하도록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조 교수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혼자 모든 걸 짊어져야 한다는 리스크를 줄이고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조금이라도 ‘모험’을 해볼 마음이 들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 기관들이 정보 소통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원래대로면 당직을 서는 개인이 혼자 결정해야 해요. 환자를 받으면 나 혼자 모든 책임을 온전히 떠안아야 하니 때로는 너무 무섭고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환자는 가장 최상의, 대학병원으로 쏠리게 되고요. 모두가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고 조금 더 해봐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저희의 목표에요.”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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