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우키시마호에서 떠내려온 주검들, 불태워 묻었다”

홍석재 기자 2026. 4. 6.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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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침 81년’ 새 증언 잇따라
일본 교토 북부 항구도시인 마이즈루시에 있는 우키시마호 사건 추모비 공원에 1945년 8월 사건 당시 찍은 사진과 희생자를 위로하는 ‘추모가\'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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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마섬 주변에 우키시마호에서 숨진 사람들이 떠내려왔었다. (여러 정황을 봤을 때) 거기서 주검을 10~20구를 태운 뒤 매장했던 것 같다.”

일본 교토 북부 항구도시 마이즈루시 주민 ㄱ씨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해군으로 근무했던 큰아버지가 해준 이야기를 이렇게 기억했다. ㄱ씨는 도야마와 인접한 시라스기 출신 주민에게도 “배에 타고 있다가 주검을 수습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마이즈루는 광복 직후였던 1945년 8월24일, 조선인 수천명을 태운 귀국선 ‘우키시마호’가 의문의 폭침을 일으키면서 참혹한 인명 사고를 낸 곳이다.

이전에도 인근 해상자위대 영내와 바닷가 인근 공터, 초등학교 주변 등이 희생자 집단 매장 추정지로 알려진 적이 있지만 도시마섬에서 주검을 불태운 뒤 매장됐다는 증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ㄱ씨 등의 새로운 증언은 지난해 12월 일본 시민단체 ‘우키시마호 순난자를 추모하는 모임’(추모 모임)이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모아 ‘우키시마호 폭침 80년 보고서’를 만들면서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학생이었던 ㄴ씨는 “매일 희생자 주검이 해병대 보트로 옮겨지는 걸 봤다”고 했고, 8살 ㄷ씨는 “어업 관련 일을 하던 아버지가 구조 작업에 나갔다가 ‘엄청난 주검이 바다에 떠 있고, 당시 비명 소리가 늘 귀에 박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주민 ㄹ씨는 “마이즈루 주민들이 당시 주검을 사바카 마을 두곳에 묻었다고 들었다”고 기억했다.

지난 4일 찾은 마이즈루는 동해와 맞닿은 해안 도시로, 과거 일본 해군과 현재 해상자위대가 활용해온 ‘일본 4대 군항’ 중 하나다. 해안은 바다가 육지 깊숙이 들어온 ‘만’ 형태로 돼있어, 한 눈에 보기에도 군사 요충지로 쓰일 만했다. 동시에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직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참사를 당한 조선인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특히 우키시마호 참사는 사건 발생 81년이 지나도록 사건 원인 뿐 아니라 조선인 탑승자와 희생자 규모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각종 ‘추측’이 난무하면서, 일본 정부의 피해자 유족에 대한 사죄나 배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 교토 북부 항구도시인 마이즈루시에 있는 우키시마호 추모비 공원에 사건 현장 방향으로 희생자들을 애타게 바라보는 이들을 형상화한 작품이 세워져 있다.

사건 당시 일본 정부는 전체 승선자 3735명 가운데 조선인 524명과 일본인 2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사건을 유야무야 묻으면서, 일부 증언을 바탕으로 전체 승선자가 7천여명에 이르고 조선인 사망자가 3천~7천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23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낸 ‘전후 일본의 우키시마호 진상조사 과정의 문제점' 보고서를 보면, 배의 폭파 원인과 관련해서도 “한국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의도적 폭침설’을 주장하는” 반면 일본 정부는 “연합군이 부설한 기뢰에 부딪혀 침몰했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조선인 귀국선의 출항 경위, 선박 침몰 직전 일본 해군의 탈출 여부, 구조 상황과 생존자 수, 선체 인양과 희생자 수습 과정에 대한 의문도 그대로 남아 있다. 주검이 수습된 희생자들 가운데서도 12구가 부산 영락공원 무연고자실에, 280구는 도쿄 사찰 유텐지에 보관된 상태다.

일본 정부의 모호한 태도도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24년 세차례에 걸쳐 우키시마호 승선자 관련 자료 75건을 우리 외교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이전까지 일본 정부는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존재 자체를 부인하다 같은해 5월에야 이를 인정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하시모토 에이지 추모 모임 사무국장은 한겨레에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배경에는 일본의 침략 전쟁과 식민지 노동자 유입 정책 등이 있었다”며 “진실 규명과 후속 과제를 해결할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다”고 꼬집었다.

‘우키시마호 순난자의 비 건립실행위원회’가 1978년 만든 추모공원에는 희생자들의 애절한 ‘추모가’가 적혀있다.

“마이즈루여/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리요/ 언젠가 그날에 돌아가리/ 죽어서라도 돌아가리.”

지난 4일 하시모토 에이지 ‘우키시마호 순난자를 추모하는 모임’ 사무국장이 우키시마호 사고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마이즈루(교토)/글·사진 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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